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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죽부터 개장국까지, 끼니도 되고 보신도 하다
1625년 1월 12일, 신유. 권별의 안색은 완전히 희게 되었고, 소변이 붉던 것도 맑아졌다. 조금씩 밥맛을 알게 되어 녹두죽과 백원미(흰쌀 죽)를 4~5차례 마셨다. 밤에도 3~4차례 마셨다. 주부의 기생이 각종 진미를 연이어 보내주셨다. 야간에 답답하고 괴로운 증상은 지난밤과 다름이 없었다. 달보가 병문안을 왔다.
1625년 1월 14일, 계해. 증세가 전과 마찬가지였다. 혹은 민물고기로, 혹은 새우젓갈로 반찬을 하여 연이어서 미음을 먹었는데, 다 뜨거운 물로 타서 넘겼다.
1625년 1월 26일, 을해. 흐리다 빛이 나다 하였다. 갑자기 상쾌해짐을 느꼈다. 청어 1마리를 구워서 먹었는데 해롭지 않았다. 밤에는 기장쌀밥을 물에 말아서 몇 숟가락 넘겼다.
1625년 2월 4일, 계미. 구름이 끼어 흐리다가 식후에 비를 잠시 뿌렸다. 유량의 집은 방이 비좁고 창문이 없는 데다가 또한 날씨마저도 점차 따뜻해져 권별은 기운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오늘 사랑으로 옮겨 들어갔더니 기운이 갑자기 깨어나고 밝아졌다. 이봉이 민물고기 여러 마리를 들여보냈다. 회를 쳐서 먹었는데, 또한 체하지 않았다.
1625년 2월 9일, 무자. 구름이 끼어 흐리다가 오후에 빛이 났다. 서비가 7일부터 앓아누웠는데, 증세가 수상하니 염려스러웠다. 안채 변소를 수리하였다. 주부 댁에서 민어 반 마리, 생강 6각을 보냈다.
1625년 2월 11일, 경인. 비를 뿌렸다. 종남이 우족 4개를 보냈다.
1625년 4월 11일, 무자. 맑음. 권별은 붕어를 구할 일로 임 별감의 집에 갔다. 지나는 길에 이술의 집에 들어가 조금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1625년 4월 24일, 신축. 우곡에 갔다. 지나는 길에 달보를 계정에서 보았다. 권별의 집사람은 술과 떡을 갖추어 보냈다.
1625년 5월 11일, 무오. 맑음. 의숙·사빈과 더불어 그물을 싣고 산양으로 내려가 누치 7마리를 잡아서 왔다.
1625년 6월 6일, 임오. 비가 내리다 개었다 하였다. 개장국을 갖추어서 우곡으로 보냈다. 오후에 우곡의 계집종이 와서 공산이 돌림병에 걸린 지 이미 5일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권별은 김맹준의 집에 내려가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고 왔다. 허진경이 상처하였다. 비통하고도 비통하였다.
1625년 7월 10일, 병진. 맑음. 권별은 금곡상리의 괴정으로 건너가서 여러 벗들과 닭을 삶아 먹었다. 그리고 검호에 가서 연꽃을 감상할 일로 여러 친구들과 길을 떠났다.
1626년 윤6월 7일, 정미. 맑음. 표숙은 풍성으로 갔다. 향교에서 가장(家獐, 개장국)을 마련하였는데, 김형·달보가 내려왔다. 저녁에 각자 돌아갔다.
1626년 7월 7일, 정축. 흐림. 차례를 지냈다. 밥을 먹은 후에 권별은 향교에 들어가서 개고기를 장만했다. 달보가 오후에 들어와서 묵었다.
1626년 11월 6일, 을해. 맑음. 볼기짝에 난 종기가 점점 심해져서 약을 조제할 일로 꼭두새벽에 마두를 춘천으로 보냈다. 종일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더니 저녁에는 고름이 나왔다. 상방의 방기들이 와서 알현하였다. 보안 찰방 윤유안이 와서 만나보았는데, 은어와 생복, 그리고 웅담과 오미자 등의 물건을 보냈다. 목사 홍우찬이 살아 있는 꿩 한 마리를 보내왔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죽소부군일기(竹所府君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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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별(權鼈)
주제 : 음식
시기 : 1625-01-12 ~ 1626-11-06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예천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권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식문화
조선정부는 유교를 국교로 했던 만큼 유교적 정치윤리가 강조하는 사례(四禮)를 중요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조상에 대한 봉제사(奉祭祀)와 가족제도에 따른 식생활이 크게 중요시되었다. 또한 중인(中人)계급의 대두로 인한 상하층의 식생활 교류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외래식품이 널리 전래 보급되어 식생활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전래된 고추는 고춧가루로 가공되어 그 이전까지 담백미(淡白味)였던 우리 음식을 조화미(調和味)로 바꿈에 따라 한식(韓食)의 특성을 배가시켰고, 대표적인 부식인 김치를 완성시켜주었다. 3첩·5첩·7첩·9첩·12첩 등으로 구분된 첩수 별 반상차림이 정착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한식 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음식에 빠지지 않는 것은 밥으로 대표되는 곡식류이다. 조선시대의 적전(籍田, 임금이 친히 경작하던 토지)에서는 벼·기장·피·당서·팥·콩·보리·수수·밀 등 9가지 품목의 곡식을 심었다. 이밖에 이 시대 중엽에 처음으로 옥수수가 옥촉(玉凊)이란 이름으로 전래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 등을 주로 먹었고, 개고기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행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말고기를 포로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후기로 오면 쇠고기 소비의 수요격증과 쇠고기 편식(偏食)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조선시대의 어류는 근 50여 종으로 현재 어획되고 있는 어류가 거의 망라되고 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오늘날 즐겨 먹는 명태가 조선조 중엽에 명천에서 태모(太某)라는 사람이 처음 잡아 그 이름을 명태라 했다는 것이다. 또한 멸치어업이 크게 성행하여 젓갈로 만들어져 새우젓과 함께 김치류에 들어간 것도 이때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625년 1월 12일. 신유 안색은 완전히 희게 되었고, 소변이 붉던 것도 맑아졌다. 조금씩 밥맛을 알게 되어 녹두죽(彔豆粥)과 백원미(白元米, 흰쌀 죽)를 4~5차례 마셨다. 밤에도 3~4차례 마셨다. 주부댁 형수님[主簿嫂主]이 각종 진미를 연이어 보내주셨다. 야간에 답답하고 괴로운 증상은 지난밤[去夜]과 다름이 없었다. 달보(達甫)가 병문안을 왔다. 1625년 1월 14일. 계해 (증세가) 전과 마찬가지였다. 혹은 민물고기로, 혹은 새우젓갈로 □을 만들어 연이어서 먹었는데, 다 뜨거운 물로 타서 넘겼다. 1625년 1월 26일. 을해 흐리다 빛이 나다 하였다. 갑자기 상쾌해짐을 느꼈다. 청어(靑魚) 1마리를 구워서 먹었는데 해롭지 않았다. 밤에는 기장쌀밥을 물에 말아서 몇 숟가락 넘겼다. 1625년 2월 4일. 계미 구름이 끼어 흐리다가 식후에 비를 잠시 뿌렸다. 유량(有良)의 집은 방이 비좁고 창문이 없는데다가 또한 날씨마저도 점차 따뜻해져 기운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오늘 사랑(舍廊)으로 옮겨 들어갔더니 기운이 갑자기 깨어나고 밝아졌다. 이봉(以奉)이 민물고기 여러 마리를 들여보냈다. 회를 쳐서 먹었는데, 또한 체하지 않았다. 1625년 2월 9일. 무자 구름이 끼어 흐리다가 오후에 빛이 났다. 서비(鋤婢)가 7일부터 앓아누웠는데, 증세가 수상하니 염려스러웠다. 안채 변소를 수리하였다. 주부(主簿) 댁에서 민어(民魚) 반 마리, 생강(生羗) 6각(角)을 보냈다. 1625년 2월 11일. 경인 비를 뿌렸다. 종남(從男)이 우족 4개를 보냈다. 1625년 4월 11일. 무자 맑음. 붕어를 구할 일로 임 별감(任別監)의 집에 갔다. 지나는 길에 이술(而述)의 집에 들어가 조금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1625년 4월 24일. 신축 우곡(愚谷)에 갔다. 지나는 길에 달보(達甫)를 계정(溪亭)에서 보았다. 실인(室人, 집사람)이 술과 떡을 갖추어 보냈다. 1625년 5월 11일. 무오 맑음. 의숙(義叔)·사빈(士彬)과 더불어 그물을 싣고 산양(山陽)으로 내려가 누치[訥魚] 7마리[尾]를 잡아서 왔다. 1625년 6월 6일. 임오 비가 내리다 개었다 하였다. 가장(家獐, 개장국)을 갖추어서 우곡(愚谷)으로 보냈다. 오후에 우곡(愚谷)의 계집종이 와서 공산(空山)이 돌림병에 걸린 지 이미 5일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김)맹준(孟俊)의 집에 내려가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고 왔다. (허)진경(晉卿)이 상처[喪室]하였다. 비통하고도 비통하였다. 1625년 7월 10일. 병진 맑음. 금곡상리(金谷上里)의 괴정(槐亭)으로 건너가서 여러 벗들과 닭을 삶아 먹었다. 그리고 검호(檢湖)에 가서 연꽃을 감상할 일로 여러 친구들과 길을 떠났다. 1626년 윤6월 7일. 정미 맑음. 표숙(表叔)은 풍성(豊城)으로 갔다. 향교에서 가장(家獐, 개장국)을 마련하였는데, 김 형(金兄)․달보(達甫)가 내려왔다. 저녁에 각자 돌아갔다. 1626년 7월 7일. 정축 흐림. 차례를 지냈다. 밥을 먹은 후에 향교에 들어가서 개고기[家獐]를 장만했다. 달보(達甫)가 오후에 들어와서 묵었다. 1626년 11월 6일. 을해 맑음. 볼기짝에 난 종기가 점점 심해져서 약을 조제할 일로 꼭두새벽에 마두(馬頭)를 춘천(春川)으로 보냈다. 종일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더니 저녁에는 고름[濃汁]이 나왔다. 상방(上房)의 방기(房妓)들이 와서 알현하였다[現]. 보안 찰방(保安察訪) 윤유안(尹幼安)이 와서 만나보았는데, 은어와 생복(生卜), 그리고 웅담과 오미자 등의 물건[等物]을 보냈다. 목사(牧使) 홍우찬(洪雨贊)이 살아 있는 꿩 한 마리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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