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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자 시를 노래하며 해질녘 길을 가노라
1622년 3월 9일, 김령은 아침상을 물리고 일찌감치 처가인
천성(川城)
에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인들이 잇달아 방문하여 길을 떠나려고 했을 즈음에는 해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아들 요형이 따라나섰는데, 천성에 도착했을 때 날이 완전히 저물지는 않았다. 찰방 삼 형제가 그를 맞이하였다.
천성으로 가는 길가의 봄 경치는 아주 아름다웠다. 산꽃이 피어난 것도 있었고, 향기로운 풀은 푸르고도 고왔다. 김령은 처가로 가는 그 길에서 입으로 오언율시 다섯 수를 읊조렸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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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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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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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시, 문학, 여행
시기 : 1622-03-09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령, 찰방 삼형제 , 요형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처가 방문
조선시대, 특히 16세기까지 혼인은 여자는 그대로 친정에 머물고 남자가 자신의 집과 처가를 오가거나 아니면 처가에서 사는 형태이었다.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신사임당도 혼인 후 20년 가까이 강원 강릉 친정에 머물며 율곡을 낳고 길렀다.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으로 불리는 이 같은 혼인 풍습은 18세기까지 이어진다. 남귀여가혼은 고려 이래 내려오던 혼인 풍속으로,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치른 뒤 부부가 일정 기간 신부 집에서 사는 전통이다. 혼인하면 처가에서 거주하고, 그 결과 자식은 외가(外家)에서 성장했다. 혼인 후에 친정에서 자식을 키우며 살던 딸들이 친정 제사를 지내고 외손자가 제사를 물려받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혼인해서 처가살이를 많이 했으며 첫아이의 출생과 성장을 지켜본 후 본가 주변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하는 등 각자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처가살이가 많이 있었고 100년손님과 같은 처가 방문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은 중기이후 변화되어 간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李植)의 시문집의 택당집에 보면 “남자가 장가들어서는 오직 처가(妻家)를 위해서 생색을 낼 뿐이요, 본가(本家)의 부모는 오래도록 신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된다면, 도대체 친영을 하는 뜻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심지어는 내외(內外)의 객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시장통처럼 북적대면서 소란스럽게 지내기만 한다면, 혼례를 치르는 의미가 어디에 있다고 하겠는가.” (『택당집(澤堂集)』 별집 제16권 잡저(雜著)) 하여 혼례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고 처가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된다.
안정복이 아들 학에게 써 준 글에 “금세에는 가정의 자제들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곁에서 자라 출입하는 것과 사물을 접하는 것을 모른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장가를 가면 경솔하고 나약한 부류는 대부분 예로 몸을 단속하지 못하여 말할 때나 행동할 때에 번갈아 잘못을 저질러 사람들에게 얕잡힘을 당하니,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처가(妻家)는 편안하여 안일에 빠지기 쉽다.” (『순암집(順菴集) 제9권 서(書)) 하여 처가에서의 안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후 18세기 『청대일기』에 보이는 모습을 보면 권상일 집안에서는 혼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신행하여 시댁으로 돌아가는 원칙이 지켜졌다. 한편, 초례를 마친 신랑은 신행할 때까지 처가에 여러 차례 재행(再行)을 하였는데, 그 횟수와 기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다만 신행 기간과 자녀의 출산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대부분 첫 자녀를 출산한 후에 조리를 마치고 시댁으로 돌아갔다. 또한 출산은 친정의 혼례·제례 등과 함께 친정에 근행(勤行)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근행은 일종의 신행으로 인한 상실감을 보상하는 조치였다고 생각되는데, 16세기 남귀여가혼에서는 신행을 하지 않았으므로 근행의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행이 보편화 되면서 여성들의 근행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권상일의 집안에서는 자부(子婦)·손부(孫婦)·여손(女孫)들의 친정 근행(勤行)이 엄격하게 금지되지 않았으며, 이는 18세기 영남지역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혼인 후 거주 방식과 함께 남편 사후의 생활이 친정과 보다 밀접하였던 환경도 18세기에는 변화하였다. 즉,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여성들은 친정에 돌아가지 않고 시댁에서 거주하였다. 권상일의 자부는 남편 사후 시댁 인근에 별도의 주거지를 마련하여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였고 시댁의 범위 내에서 남편의 제사와 자녀들의 혼인을 함께 지켜보며 시댁의 일원으로서 자리하였다. (「18세기 嶺南 士族의 일상과 생활의례(Ⅰ) - 『청대일기』에 나타난 혼례를 중심으로」)
혼인 풍속이 바뀌면서 처가에 대한 방문은 식구라는 개념에서 손님으로 변하였을 것이다.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하여 사위는 100 년이 지나도 손님일 뿐으로 사위는 장인·장모에게 언제나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처가방문 또한 하나의 의례적인 일로 되었을 것이다. 또한, “처가집과 뒷간(화장실;변소)은 멀수록 좋다”라고 하여 처가집이 가까우면 자주 가야하고 아내도 자주 들락거릴것이고 그래서 멀수록 좋다는 속담도 있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수록 사대부들의 처가 방문은 횟수도 적고 손님으로 방문하였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처가에 가는 일은 더욱 적었고 그래서, 시집간 딸을 마음대로 근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농한기인 추석을 전후하여 어머니와 딸이, 또는 안사돈끼리 제각기 음식과 토산물을 가지고 양편 집의 중간쯤되는 시냇가나 고개의 적당한 곳에 모여 하루를 음식과 이야기로 즐겼던 “반보기”가 여성들의 큰 낙이었다고 한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임술년(1622, 광해군14) 3월 9일 맑음. 밥을 먹은 뒤에 천성(川城)에 가려고 하는데, 당(塘)이 보러 왔다. 이실(而實)도 왔다. 길을 떠날 때쯤에는 해가 이미 기울었다. 요형(耀亨)이 따라 나섰는데, 도착하니 날은 아직 깜깜하지는 않았다. 찰방(察訪) 삼형제가 함께 있었다. 이날 길가의 봄 경치는 아주 아름다웠다. 산꽃은 혹 피어난 것도 있었고, 향기로운 풀은 푸르고도 고왔다. 입으로 오언율시 다섯 수를 읊조렸다. 九日. 晴. 食後將徃川城, 塘來見, 而實亦至. 比發程, 日當已也. 耀亨從, 至則日未黑矣. 察訪三昆弟俱在. 是日, 道中春景甚佳. 山花或有開者, 芳草靑嫩. 口占五言律五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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