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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서원에 모인 자들, 앞날을 논의하고 풍류를 즐기다
1621년의 정월이 밝았다. 김령은 사당에
천례(薦禮)
를 올리고, 지인들의 방문을 받거나 친지들을 방문하였다. 1월 4일에는 느지막이 도산서원으로 갔다. 밤이 깊어진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서원에 이르렀는데, 열대여섯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서원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인 1월 5일에는
금언강(琴彦康)
영공 및 여러 유생들이 와서 사당에 참배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원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유생을 선발하자는 논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김령은 서원의 여러 가지 폐단을 막는 데에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그 논의를 주선하지는 못했다.
참배 후 밥을 먹고, 술잔이 돌아가자 모두가 흡족하게 되었다. 저물녘이 되어 일부는 흩어져 돌아가고 일부는 남았다.
남은 자들은 다시 밤술을 마시고, 조용히 아가(雅歌)를 읊었는데 이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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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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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정월, 서원, 교류
시기 : 1620-01-04 ~ 1620-01-0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언강 영공, 유생들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유생의 선발과 서원의 폐단
서원의 폐단
초기의 서원은 유교적 향촌 질서를 유지하고, 사림의 공론을 형성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증설됨에 따라 양반층의 이익 집단화 경향을 띠었다. 사액 서원의 경우 면세의 특권으로 양반의 경제적 기반을 확대시키는 반면 국고의 감퇴를 가져왔고, 군역 기피로 군정의 부족을 초래하였다. 유생들은 서원의 붕당에 가담하여 관학인 향교를 외면하였다. 이와 같이 서원은 향약, 유향소와 더불어 사림의 세력 기반과 붕당의 온상이 되었다.
서원의 폐단에 대한 논란은 인조 이후 꾸준히 있었으나 특권 계급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하고 1657년(효종 8) 서필원(徐必遠)은 서원의 폐단을 논하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효종·숙종 때는 사액(賜額)에 대한 통제를 가하고 누설자(累設者)를 처벌하는 규정까지 두었으나 잦은 정권 교체로 오히려 증설되었다. 1738년(영조 14) 안동 김상헌(金尙憲)의 원향(院享)을 철폐한 것을 시발로 대대적인 서원 정비에 들어가 200여 개소를 철폐하였으나 그래도 700여 개소나 남아 있었으며 이 중 송시열(宋時烈)의 원향이 36개소나 되어 가장 많았고, 유명한 것으로는 도산서원(陶山書院)·송악서원(松嶽書院)·화양서원(華陽書院)·만동묘(萬東廟) 등이 있었다.
1864년(고종 1)에 집권한 대원군(大院君)은 서원에 대한 일체의 특권을 철폐하여, 서원의 설치를 엄금하고 그 이듬해 5월에는 대표적인 서원인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폐쇄한 이후 적극적으로 서원의 정비를 단행하여, 사표(師表)가 될 만한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신유년(1621, 광해군13) 1월 1일 맑고 추웠다. 아침에 천례(薦禮)를 올렸다. 예를 마치자 서숙(庶叔) 및 당(塘)·참(墋), 광석(光碩)이 오고 또 여희(汝熙) 및 덕여(德輿) 3형제, 이실(而實) 형제 및 애철(愛鐵)·지남(智男) 등이 와서 술잔을 나누었다. 나도 서쪽으로 올라가 여러 사람들과 중부(仲父) 사당에 배알하고 애철의 집을 거쳐 이실의 집에 이르러 한참 동안 머물러 술을 마셨다. 다시 동쪽 아래로 내려가 참봉 형수를 뵙고 외가 신주를 배알한 뒤 탁청정(濯淸亭)에 이르러 조부(祖父) 사당에 배알하고 잠시 주인을 보았다. 이지(以志) 3형제도 왔다. 주인은 병이 나서 문밖으로 나오지 않고 문권(文券)을 보여주기에 다소간 이야기를 했다. 우리들은 일어나 나와서 이지의 집에 이르러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사당에 배알하고 안으로 들어가 숙모를 뵙고 세주(歲酒)를 마셨다. 나와 여희, 서숙이 모두 가지고 간 술로 숙모께 잔을 올렸다. 돌아올 때 서숙 집에 이르니 밤이 이미 깊었다. 몹시 피곤하여 술은 마시지 못하고 단지 잔만 들자 서숙이 자못 서운해 하여 내일 다시 마시기로 약속했다. 내가 돌아온 뒤 이도(以道)·이직(以直) 및 이실, 생질 치(偫), 아이 휘세(輝世) 등이 서숙 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날 아침에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함창(咸昌) 가묘에 천례를 올리게 하고, 또 아이 휘세를 시켜 방잠의 가묘에도 천례를 올리게 했다. 금호겸(琴好謙)과 김희(金熺)를 탁청정에서 만났다. 一日 晴而寒. 朝行薦禮. 事已, 叔及塘墋光碩來. 又有汝熙及德輿三昆弟而實昆弟及愛鐵智男至, 酌以酒. 余亦西上, 與諸公謁仲父祠堂, 歷愛鐵家, 至而實家, 留飮移時. 復東下, 拜參奉嫂氏, 謁外家神主, 至濯淸, 謁王父祠堂, 暫見主人. 以志伯仲叔亦至矣. 主人病, 不出門, 示以文券, 做多少說話. 余輩起出, 至以志家, 與諸君齊謁祠堂, 入拜叔母主, 飮歲酒. 余及汝熙老叔皆持壺獻酌. 來時至叔家, 夜已深矣. 困甚不能飮, 只持盃, 叔頗缺然, 更約以明日. 余歸後, 以道以直及而實偫甥世兒輩飮叔家. 是日朝, 一邊令人薦于咸廟, 又令世兒薦于岑廟. 琴好謙金熺遇于濯淸. 1월 4일 맑음. 느지막이 도산서원으로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밤길을 무릅쓰며 서원에 이르니 좌수 권산해權山海, 이치원李致遠·김일지金一之, 효숙孝叔 이하 열대여섯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서원 아래에 있는 인가人家가 설전부터 조금 불안한 징후가 있었는데, 그저께 비로소 들으니 자못 돌림병 조짐이 있는 듯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알묘謁廟의 큰 행사가 이미 임박하여 행사를 폐지할 수는 없었다. 1월 5일 맑음. 아침에 금언강琴彦康 영공 및 여러 유생들이 와서 사당에 참배했다. 이날 여러 사람들의 논의는 유생을 선발하자는 것이었지만, 나의 뜻은 폐단을 막는 데 있었기에 선뜻 주선할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밥이 들어오고 술잔을 돌리자 모두 흡족하게 되었다. 저물녘이 되어 흩어져 돌아가고 나는 일지·효숙·이실·시발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며 잤다. 여남은 사람이 함께 다시 밤술을 마시고 조용히 아가雅歌를 읊었는데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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