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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 간의 대립,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다 - 계속되는 탄핵 상소
1581년 3월 12일, 권문해는 조보(朝報)를 펼쳤다. 이조좌랑 이경중(李敬中)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 당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과 지평(持平) 박광옥(朴光玉)이 단독으로 왕에게 다음과 같은 계를 올렸다.
“이경중은 본디 학식이 없는 데다 행실 또한 훌륭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무리들은 으레 남의 앞을 막아 가리고, 경망하고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습니다. 급진적인 그 무리들은 흔히 파당을 맺어 기세를 부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주위에서 분하고 억울해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용납하지 못할 바입니다. 결단코 하루라도 빨리 조치를 취하여 조정의 수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우경선(禹景善)이 수원부사로 있다가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했는데, 이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자 인심이 불안하고 두려워 선비들의 기상이 꺾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정인홍의 소행으로 벌어진 사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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