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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가가 나지 않아 애태우다
1933년 3월 19일,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1855~1931)의 문집을 판각하기 위해 공론을 모으고, 각수를 선발하는 등 준비를 다 하고 있으나, 경성(京城)에서 『소눌선생문집』의 판각에 대한 허가가 내려오지 않아 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허가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3월 23일, 3월 27일에 경성에 거주하는 박순병(朴淳炳), 박순기(朴淳紀) 등에게 편지를 보내 알아보도록 하였고, 허가가 내려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해당 주재소(駐在所)로 사람을 보내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

계속 허가가 나오지 않자 4월 17일에는 경성에 전보를 쳐서 허가 여부를 알아보았으나 답이 없어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4월 21일, 이처럼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일본 총독부의 허가를 얻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이미 불러 모은 각수들을 놀릴 수 없어서 이미 출판 허가를 받은 『성리절요(性理節要)』를 우선 판각을 시작하였으나, 정작 『소눌선생문집』의 판각 허가를 얻지 못하여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일기에 보인다. 주재소에서는 허가 없이 판각을 하는지 살피고 있는 도중에(4월 8일), 판각 허가가 아직도 나지 않았다는 박순병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4월 24일, 경성의 박순병에게 전보가 도착하였는데, 마침내 기다리던 문집 판각 허가가 났다는 전보였다. 다음 날 개를 잡고 술을 사와서 각수들에게 대접하였다. 4월 29일에는 판각의 허가가 났다는 일을 주재소에 알리면서 본격적이 판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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