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금강산에 도배된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 혀를 차다
이동항(李東沆)은 한창 금강산 유람중이었다. 지리산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지간한 산은 눈에 차지 않는 그에게도 금강산은 정말로 천하제일 산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비로봉을 비롯한 1만 2천봉과 108개에 달한다는 사찰, 그리고 곳곳의 누대와 계곡 등을 둘러보느라 그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곳곳마다 새겨놓은 사람들 이름이었다. 어디 조금이라도 이름난 곳에 가면 항상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본래 명승지에 이름을 적는 것은 잘못된 습속인데, 여러 산중에서도 금강산이 가장 심한 듯하였다.

비록 깊숙한 골짜기라도 평평한 돌만 있으면 이름과 자를 새겨 넣어 거의 한 조각 빈틈도 없는 지경이었다. 이름들을 살펴보니 모두 최근 백 년 안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었다. 그럼 그 이전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이끼가 먹고 물이 깎아서 없어져 버린 것인가? 이동항은 이런 생각이 미치자 실소를 머금었다.

이동항의 생각에 옛사람들은 실천을 좋아하지 과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술잔을 잡고 흥을 일으킬 따름이었다. 혹 명산 가운데서 참다운 인연을 만나게 되면 판액이나 처마 등에 글을 썼지 절대 바위에다 글을 새기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풍속이 투박해지자 명예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호사하는 습관이 날로 커져 글씨가 돌 위에 새길 만한 명필이 아닌대로 새기고 또 새겨, 새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금강산의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 스님들 중에는 조각하는 재주를 지닌 자들도 꽤 많았다. 양반이란 자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아 본인을 따라다니면서 쇠를 달구어 글씨를 새기게 하면서도 조금도 보답하지 않고 있으니, 아 요새 풍속이란 것이 얼마나 비천한 것인가.

그나마 새겨진 이름들 면면도 모두 하찮은 인물들뿐이었다. 그나마 김장생(金長生), 김천일(金千鎰), 유정대사(惟政大師) 정도의 이름은 모래 속에서 금 찾듯이 간간이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볼 품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녕 이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길 때 후세의 누가 본인들의 이름을 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스스로 예상이나 했겠는가 하며 이동항은 혀를 끌끌 찼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