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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도배된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 혀를 차다
이동항(李東沆)은 한창 금강산 유람중이었다. 지리산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지간한 산은 눈에 차지 않는 그에게도 금강산은 정말로 천하제일 산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비로봉을 비롯한 1만 2천봉과 108개에 달한다는 사찰, 그리고 곳곳의 누대와 계곡 등을 둘러보느라 그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곳곳마다 새겨놓은 사람들 이름이었다. 어디 조금이라도 이름난 곳에 가면 항상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본래 명승지에 이름을 적는 것은 잘못된 습속인데, 여러 산중에서도 금강산이 가장 심한 듯하였다.
비록 깊숙한 골짜기라도 평평한 돌만 있으면 이름과 자를 새겨 넣어 거의 한 조각 빈틈도 없는 지경이었다. 이름들을 살펴보니 모두 최근 백 년 안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었다. 그럼 그 이전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이끼가 먹고 물이 깎아서 없어져 버린 것인가? 이동항은 이런 생각이 미치자 실소를 머금었다.
이동항의 생각에 옛사람들은 실천을 좋아하지 과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술잔을 잡고 흥을 일으킬 따름이었다. 혹 명산 가운데서 참다운 인연을 만나게 되면 판액이나 처마 등에 글을 썼지 절대 바위에다 글을 새기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풍속이 투박해지자 명예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호사하는 습관이 날로 커져 글씨가 돌 위에 새길 만한 명필이 아닌대로 새기고 또 새겨, 새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금강산의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 스님들 중에는 조각하는 재주를 지닌 자들도 꽤 많았다. 양반이란 자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아 본인을 따라다니면서 쇠를 달구어 글씨를 새기게 하면서도 조금도 보답하지 않고 있으니, 아 요새 풍속이란 것이 얼마나 비천한 것인가.
그나마 새겨진 이름들 면면도 모두 하찮은 인물들뿐이었다. 그나마 김장생(金長生), 김천일(金千鎰), 유정대사(惟政大師) 정도의 이름은 모래 속에서 금 찾듯이 간간이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볼 품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녕 이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길 때 후세의 누가 본인들의 이름을 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스스로 예상이나 했겠는가 하며 이동항은 혀를 끌끌 찼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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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풍악총론(楓嶽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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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동항(李東沆)
주제 : 금강산의 유람
시기 : ( 미상 )
장소 : 강원도 통천군, 경상남도 고성군, 강원도 회양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동항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평생 정자와 주자의 서적을 깊이 연구했던 학자 이동항(李東沆)
이 이야기는 이동항이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곳곳에 새겨놓은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한탄하는 내용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어 공감이 가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동항(1736~1804)은 본관이 광주(廣州)이고 자는 성재(聖哉), 호는 지암(遲菴)이다. 아버지는 이항중(李恒中)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 부인은 성산여씨이다.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그는 과거응시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평생 정호(程顥), 정이(程頤) 및 주희(朱熹)의 서적을 깊이 연구하고 원리를 파고들었으며 어진 선비의 문집을 즐겨 연구하였다. 글씨도 뛰어났다고 전하는데, 특히 상고시대의 글씨체인 전서(篆書)를 잘 썼다고 한다. 그는 문장도 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시에 화려한 미구를 즐겨 쓰지 아니하고 깨끗하면서도 담백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였다. 한편으로 경상도 지역의 유림들이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을 문묘에 배향하기 위하여 연명상소를 올릴 때, 해당 글을 집필한 적도 있었다. 또한 정자와 주자의 성리서 뿐 아니라 문장에서는 한유와 유종원의 글을 높이 평가하였다. 여러 편의 기행문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특히 금강산과 관련된 3~4편의 기행문이 있고, 이밖에도 속리산 여행기가 있다. 사후 후손들에 의해 『지암문집(遲菴文集)』 이 1928년 간행되었다.
◆ 원문 번역
명승지에 이름을 적는 것은 본시 잘못된 습속인데 이 산이 가장 심하다. 비록 깊숙한 골짜기라도 평평한 돌만 있으면 이름과 자(字)를 새겨 거의 한 조각의 빈틈도 없다. 모두 백년 뒤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옛사람의 이름은 모두 이끼가 먹고 물이 깎아 사라져서 없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옛사람은 실제로 실천하고 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술잔을 잡고 흥을 일으킬 따름이다. 혹 명산 가운데 머물러 참다운 인연을 맺게 되면 암혈의 판액이나 문미〔楣〕에 글을 쓴다. 《추강록(秋江錄)》 가운데 ‘송라암 문미 위에 옛사람 김대유(金大猷)가 제명하였다.(松蘿菴楣上有故人金大猷題名)’는 내용이 그것이다. 세월이 흘러 풍속이 투박해지자 명예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호사하는 습관이 이루어져 글씨가 돌 위에 새기지 못할 만한데도 새기고 또 새겨, 새기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러므로 장안, 표훈, 유점, 신계사의 스님 중에는 조각하는 재주를 지닌 자가 없지 않다. 또 대장간을 설치하여 쇠를 달구면서 유람하는 손님의 가마 뒤를 줄지어 따르게 하면서도 조금도 보답을 하지 않으니, 여기에서 고금의 다른 풍속과 습관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오직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김천일(金千鎰), 유정 대사(惟政大師)의 이름은 모래를 뒤져 금을 얻은 것 같으니, 옛 자취를 아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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