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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행차를 맞이하면서 태국 사신들을 보다
1801년 12월 29일, 이기헌(李基憲)은 사신단의 서장관 신분으로 청나라 수도에 와 있었다. 한 해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오늘, 조선의 사행단은 오문 밖 조방에서 황제의 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가 오늘 태묘에 행차하였다가 돌아와서 신하들의 조회를 받겠다고 하여서, 궁을 떠나는 황제를 전송하기 위해 명나라의 관료들과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모두 나와 기다리던 참이었다.

이윽고 황제가 나타났는데, 황색 지붕을 얹은 작은 가마를 타고 있어서 실제 황제의 용안을 보지는 못하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황제의 의장물은 매우 간단하였다.

황제의 어가는 오랫동안 머물면서 신료들을 돌아보다가, 태국에서 온 사신들을 지나쳐 갔다. 그는 아래 반열에 자리한 채로 어가를 맞이하고 서 있었다. 이기헌은 태국 사신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가 입은 조복(朝服)을 보니 얼룩얼룩한 무늬의 비단에 소매가 없는 긴 도포를 입었고, 쓰고 있는 관은 반자쯤 되는 길이에 동으로 만들고 그 위에 도금을 하여 그 형태가 마치 뿔과 같았다. 머리카락은 자르고 땋아 내리지 않았다. 조회를 마치고 태국 사신들에게 가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사석에서는 의관이나 허리띠, 신발 모두 청나라의 제도를 따르지만, 조회를 하고 어가를 맞이할 때에는 본국의 의관을 따른다고 한다.

성명을 물어보니 공사(正貢使)는 비아소골립순가가팔라소돌(呸雅騷滑粒巡叚呵叭喇昭突), 삼공사(三貢使)는 랑발차나비문비돌(廊勃車哪鼻們卑突), 사공사(四貢使)는 곤제필고차(坤第匹哌遮)였다. 성명이 매우 길고, 모두 음차하여 쓴 것들이었다. 비록 고대의 예법에 맞는 복식은 아니었지만, 저들 나름의 조복을 갖추어 입은 것을 보니 그들의 문화 역시 마냥 오랑캐의 것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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