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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를 관람하다
1760년 봄, 김상정은 일행들과 경주를 유람 중이었다. 오늘은 포석정을 둘러본 이후 북쪽으로 말을 다려 첨성대에 이르렀다. 첨성대는 마치 우물처럼 아래부터 돌을 쌓아올렸는데, 모두 36겁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첨성대의 높이는 포백을 재던 자로 18척에 이른다. 구멍 서쪽으로 조금 낭떠러지인데 사다리를 타고 아래에서 오를 수 있다’ 라고 되어 있었다.

비록 까마득히 높아 보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첨성대에 오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김상정과 일행 들은 방법을 생각하다가 좋은 수가 떠올랐다.

우선 따르는 하인 한 명에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첨성대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리곤 그 하인이 계단과 난간을 붙잡게 하고는 차례로 첨성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첨성대를 만든 것은 거의 이천 년 전인데, 옛 도읍의 온갖 기물은 이미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지만, 홀로 우뚝하게 남아 있으니 마치 옛 노나라의 영광전과 같았다.

김상정이 첨성대를 보고 난 후 일행에게 “이것은 신라시대 때에는 성 밖에 있었겠지요?” 라고 물으니, 일행 중 한 명이 “그렇지 않소. 필시 성안에 있었을 것이오” 라고 대답하였다. 김상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지금 이곳이 바로 신라의 수도인 금성의 옛 터일 것이고, 바로 저것은 반월성일 것이며, 그 북쪽에 둥글게 휘어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만월성이겠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곧장 서쪽으로 가서 수풀에 나무가 울창한 곳에 이르면 그곳이 바로 계림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일행과 함께 서쪽으로 말을 달렸는데, 과연 그곳에 수풀이 있었다. 일행의 말처럼, 첨성대는 성안에 있던 것이 확실하였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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