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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수령 김언의 미담을 듣다
1629년 12월 18일, 영천에 새 수령이 부임하였다. 조명욱이란 자가 새로운 수령이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온 군의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전임 수령인 김언의 다스림이 무척 훌륭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예안현감 김전이 이 사람과 사촌형제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목민관이었다.
이 김언이라는 사람이 일찍이 부안현감을 역임했을 때였다. 부임한지 3개월이 못 되어 초상을 당했다. 당시 전라감사가 부안현의 화약 15근이 장부에 허위로 기록되어 있고 실물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질책하는 장계를 올렸다. 부임한지 3개월 만에 초상을 당했으니, 해당 실무는 아마 모두 향소의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었을 것이다. 김언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무죄를 변명하였으나, 다시 조사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졌다고 한다. 그리고 관직을 사직하려는데 당시 부안 사람들이 모두 그가 관직을 그만두는 것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언이 “장부의 잘못은 내가 실제로 간여한 것은 아닌데 그 죄가 나한테 오게 된 것이다. 내가 벌을 받으면 기껏해야 파직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만일 죄가 향소에 미치게 되면 도형과 유형을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것은 내가 차마 보지 못할 노릇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의연히 파직 처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일은 진실로 과거 송나라의 전약수가 녹사의 죄를 거론하지 않은 일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양심을 지키는 일이 진실하고 측은한 마음에서 나왔다면 마땅히 주변의 사람들의 본이 되지 않겠는가.
또 그는 백성 돌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오직 폐단을 제거하는데 마음을 기울이는 정치로 백성들의 민심을 얻었다. 관아 아전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털끝만큼도 군민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 체납된 환자 곡식은 감관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타일러 수납하게 하고, 옥에 잡아 가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의 종형인 김전이 예안의 수령으로 와서 환곡을 가혹하게 거두니 이를 책망하면서 “형이 이처럼 읍민을 학대하면 우리 자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이 내리리란 것은 왜 생각하지 않소?” 라고 하였단다. 이에 예안 현의 수령이 독촉을 다소 중지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훌륭한 수령이 이제 영천을 떠난다고 하니 군민들의 상심이 클 터였다. 뒤에 오는 조명욱이란 자는 이조판서 정경세의 지인과 절친한 사이라 그 인연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한다. 몇 년간 어진 수령 밑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던 영천현 사람들에게 큰 시련이 닥친 듯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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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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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629-12-18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조명옥, 김언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52호
조선왕조실록
◆ 백성들의 원통함을 헤아린 재판관, 전약수
이 이야기는 전임 영천수령인 김언의 일화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글중에서 김언의 행실을 전약수의 고사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전약수는 중국 송나라의 관료였다. 이에 대한 고사는 『동문선』안의 휼형교서에서 나오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송(宋)나라 때 전약수(錢若水)가 동주(同州)의 추관(推官)이 되었는데, 어떤 부잣집의 어린 여종이 도망하여 간 곳을 알지 못하므로 여종의 부모가 고을에 하소하였다. 그래서 녹사(錄事)에게 명하여 국문하게 하였는데, 녹사는 일찍이 그 부자에게 돈을 빌리려다가 빌리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에 녹사가 탄핵하기를 “부민(富民) 부자(父子) 몇 사람이 함께 여종을 죽이고 시체를 물속에 버려서 그 시체를 잃어버린 것이다.”고 하니, 부민이 모진 매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무복(誣服)하였다. 고을 관원이 자세히 심사하여 보고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전약수만이 홀로 의심하여 그 옥사를 며칠 동안 머물러 두고 결단하지 않았다. 그러자 녹사가 약수에게 욕하기를 “네가 부자 놈의 돈을 받고 죽을 죄인을 석방하려 하느냐?” 하였다. 전약수가 웃으며 사정하기를 “지금 두어 사람이 죽을 판이니 조금 더 두고서 그 옥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그리고는 열흘 동안을 보류하였다. 그 고을 원이 여러 번 재촉했으나 결제하지 않으니, 아래위 사람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겼다. 전약수가 어느 날 아침에 고을 원에게 나가서 사람을 물리치고 말하기를 “내가 그 옥사를 보류한 것은 비밀스럽게 사람을 시켜서 그 여종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야 찾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비밀히 사람을 시켜 여종을 원에게 보냈다. 원이 발을 치고 여종의 부모를 불러다가 묻기를 “네가 이제 네 딸을 보면 알겠느냐?” 하니, 그의 대답이 “모를 리가 있습니까?” 하므로, 발 안에서 여종을 끌어내어 보이니, 여종의 부모가 울며 “제 딸입니다.”고 하였다. 이에 부민 부자를 모두 석방하니, 그들이 울면서 말하기를 “사또가 아니었다면 제가 멸족을 당할 뻔하였습니다.”고 하였고, 원은 말하기를 “이것은 추관(推官)의 은덕이다.”고 하였으며, 송 태종(宋太宗)이 그 사실을 듣고 곧바로 표창하고 발탁하였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기사년(1629, 인조 7) 12월 18일 추위가 심했다. 영천 수령 김언金琂은 일찍이 부안 현감을 역임했었다. 부임한 지 3개월이 채 못 되어 초상을 당했는데, 그때 화약 15근을 장부에 허위로 기록한 일로 전라 감사가 장계狀啓를 올려 추고와 힐문을 당하게 되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상을 당했으니 장부에 잘못 기록한 것은 그 잘못이 오로지 향소에 있을 것이다. 김언이 처음에 이런 이유로 무죄를 변명하였으나 다시 추고를 당함에 이르러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게 되자, 영천 사람들이 모두 그가 관직을 그만두는 것을 만류했다. 김언이 “장부의 잘못은 내가 실제로 간여한 것이 아닌데, 그 죄가 나한테 오게 된 것이다. 기껏해야 파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죄가 향소에 미치게 되면 장차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을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것은 내가 차마 보지 못할 노릇이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파직되었으니 이 사건은 전약수錢若水가 녹사錄事의 죄를 거론하지 않은 일과 암암리에 부합된다. 혹시 이처럼 양심을 지키는 것이 진실하고 측은한 마음에서 나왔다면 사람들을 흥기시키지 않겠는가! 김언은 백성 돌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오직 폐단을 제거하는 데 마음을 기울여 자상한 정치로 깊게 인심을 얻었다. 관아의 아전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털끝만큼도 군민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 체납된 환자[還上] 곡식은 그때의 감관監官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타일러 수납하게 하였고, 옥에는 잡아 가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민성징은 밀린 환자 곡식을 일족에게 전가시켜 매번 공문을 보내어 수색하고 체포하였는데, 저항하고 따르지 않게 되면 성징이 크게 성을 내었다. 김언은 또 그의 종형인 우리 현의 수령이 오래 전부터 밀린 환자 곡식을 가혹하게 독촉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기를, “형이 이처럼 읍민을 학대하면서 어찌 자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이 내리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소.”라고 하자, 우리 현의 수령이 독촉을 다소 중지하였다고 한다. 조명욱이 영천 수령이 된 것은 이조 판서 정경세의 문객인 조희인曺希仁과 동성이고 서로 절친한 사이여서 조희인이 정 판서에게 힘껏 청하여 수망首望에 올라서 된 것이었다. 조명욱은 모두 그가 염치가 없는 자들 중에 심한 자라는 것을 안다. 이조 판서의 처사가 엉성하고 우활한 것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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