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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현감이 소도둑을 풀어주다
1630년 4월 14일, 예안의 향소에서 향교와 서원을 통해 통지를 하여 예안 유림들이 비암에서 모였다. 현 내의 여러 병폐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예안의 병폐가 백가지 천가지나 되는데, 그 많은 것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예안현감은 다만 전세와 양전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토의하도록 하고, 다른 논의는 꺼내려 조차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이 만든 병폐를 성토하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듣자 하니, 근래에는 현감이 저지르고 숨긴 일도 있다 하던데, 혹 드러날까 두려워 다른 말들은 아예 못하게 한 듯도 하였다.
그 일이란, 지난 11일 시장에서 소도둑이 잡혀서 관아에 고발되어 왔다. 이 전에도 이미 너덧 군데에서 소를 훔쳤던 적이 있던 도둑이었다. 그런데 이 도둑이 와서 범행을 진술하면서 자신을 이조 판서 정경세의 종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 예안 현감은 곧 표정이 굳어지면서 잠깐 곤장을 쳐서 바로 옥에 가두었다. 아마 이조 판서의 권세를 두려워한 듯하였다. 그러고는 경상도 감사에게는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닷새 뒤, 예안현감이 소도둑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소도둑이 예안 현감에게 귀한 보도를 뇌물로 쓴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도둑이 이전에 소를 훔쳐서 어떤 민가에 맡겨 두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발각되었다. 그런데 예안현감은 발견된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류영립에게서 베 15필을 받아 그 소를 사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 몰래 그 도둑을 놓아주면서 말하기를 “빨리 가라! 빨리 가라! 비록 훔쳤다고 하더라도 우리 현의 경내에서 훔쳤다고는 말하지 마라!” 라고 하였다 한다. 정말 놀랍고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예안 현감의 사람됨이 이처럼 비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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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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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630-04-14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정경세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 조선시대 범죄자에 대한 신문과 형벌
이 이야기는 예안현감이 소도둑을 잡고서도 그가 이조판서의 종이란 점 때문에 몰라 놔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래 지방에서 범죄자가 체포되면 소속 관아의 수령이 이를 조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용의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고문을 할 수 있었는데, 고문할 때는 매를 때리도록 하였다. 『경국대전』 에 의하면 신문할 때 쓰는 매는 길이가 3자 3치인데 위는 1자 3치이고 둘레의 직경이 7푼, 아래는 2자로서 너비가 8푼이고 두께가 2푼이었다. 매를 칠 때는 아래 끝으로 무릎 아래를 치되 정강이에 이르지 않도록 하여야 했다. 한 번에 매를 30대 이상 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한편 사극 등에서 자주 나오는 주리틀기, 즉 압슬은 조선 후기에 도입된 고문이고, 16-17세기 초반까지는 아직 사용되지 않던 고문방법이었다.
본래 고문을 하기 위해서는 임금, 혹은 지방의 경우 관찰사에게 보고를 하여야 했다. 그리고 죄질에 따라 유형 이하의 죄수는 관찰사 급에서, 태형 이하의 죄는 각 관아의 수령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를 넘어서는 죄질의 경우에는 서울의 형조로 범죄자를 이관하여야 했다. 또 대상자가 2품 이상의 고위 관료일 경우, 범인이 자복하지 않아 끝까지 신문을 진행할 경우에도 임금의 지시를 받아 수행해야 했다. 또한 3일 이내에는 고문을 두 번 하지 못하고, 고문한 지 10일이 지난 후에 형벌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특히 고문 결과 해당 범죄인의 처벌이 태형으로 결정된 경우, 신문과정에서 때린 매의 수는 형 집행에서는 감해주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죄목이 결정되고 형량이 결정되는데, 보통 가벼운 죄는 태형을 받았고 그 보다 무거운 죄는 장형을 받았다. 보통 조선의 형을 5형이라하여 다섯 가지 처벌 방식을 말하는데, 실제로 궁형이나 월형 등 신체 기관의 일부를 제거하는 형률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단근이라 하여 다리의 힘줄을 자르는 형벌을 시행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강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었다. 그러나 태형이나 장형 등 매를 때리는 처벌 이외에 신체를 손상시키는 형률은 아주 드물게 간헐적으로 시행되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경오년(1630, 인조 8) 4월 14일 맑음. 이실이 들렀다. 이는 방백方伯이 전에 정문呈文 때문에 쫓겨난 일로 인해 향소鄕所가 향교와 서원에 통지를 보내어 향교의 상재上齋 김군金君이 이실을 초청하여 비암鼻岩에 모이기로 했던 것이다. 우리 현縣의 병폐는 백 가지 천 가지나 되니 그 많은 것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그런데 예안 현감은 다만 전세田稅와 양전量田 두 가지 일만을 거론토록 하고 다른 논의는 하고자 하지 않았으니, 이는 자신이 범하고 숨긴 것이 혹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시장에서 소도둑이 잡혀서 관아에 고발되었는데, 전에도 이미 너덧 군데에서 소를 훔치고 이조 판서 정경세의 종이라고 사칭하였다. 예안 현감은 그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잠깐 곤장을 쳐서 가두고는 또한 감사에게는 보고도 하지 않았다. 4월 19일 맑음. 예안 현감이 소도둑으로부터 보도寶刀를 받아 취하였다. 또 연전에 도둑이 소를 훔쳐서 인가에 맡겨 두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역시 발각되었다. 예안 현감은 류영립에게서 베 15필을 받아 그 소를 샀다. 그리고 그 도둑을 놓아주면서 말하기를, “빨리 가라! 빨리 가라! 비록 훔쳤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경내에서 훔쳤다고는 하지 말라.”라고 했다니, 놀랍고도 또한 비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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