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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고을 수령들의 어진 정치를 듣다
1631년 11월 28일, 엄동설한의 추위가 매서웠다. 둘째 아이가 밖으로 출타했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요새 이웃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김령에게 들려주었다. 듣자하니 의성의 현령으로 부임한 정세규(鄭世規)는 자상하고 온화하여 백성을 보살피는 일에 온 마음을 쏟는다고 한다.

관아 창고에서 빌려 간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는데, 이웃 고을에서는 모두 매질을 하며 급박하게 다그쳐 원곡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세규는 “이러한 흉년을 당해 어찌 차마 백성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차라리 죄를 받아서 파직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일은 못하겠으니, 다그쳐 받아들이는 일을 그만두라.”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백성들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없는 곡식을 쥐어짜서 원곡을 갚은 것이 많았다고 한다. 혹시나 어진 수령이 파직되면 어쩌나 하는 백성들의 걱정이 이러한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경상 감사인 오숙(吳䎘)의 선정도 못지않았다. 오숙이란 사람은 매우 명민하게 다스렸는데, 온갖 폐단을 제거하는 데 힘을 쏟아 정사를 잘한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전임 감사 조희일(趙希逸)이란 자는 아주 형편이 없었는데, 후임 관찰사인 오숙이 조희일이 행한 정치를 모두 뒤집어 개혁하니, 우러러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조희일은 과거 문장에는 능하여 칭찬할 만했지만, 다스리는 재주는 형편이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진보현의 관비(官婢)를 마음에 두어 가는 곳마다 말을 태우고 다녀 선비들이 허물로 삼았고, 탐욕스럽고 비루한 짓을 헤아릴 수 없이 저질러서, 그의 병폐는 소나 말의 털과 같이 많았다. 그가 감사직에서 물러나 서울로 돌아갈 때 면포 500동을 공공연히 실어갔는데, 모두 대구에서 세를 거두어 쌓아둔 것이었다.
이러한 자 다음으로 오숙 같은 이가 와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니, 백성들은 모두 가뭄에 비가 내린 듯 반가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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