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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안이 병으로 신음하여 개를 잡아 보양하다
1912년 11월 14일, 김대락의 집안은 병마와 싸우느라 모두들 지쳐 있었다. 사촌 제수씨는 이전부터 지병이 있어 상당 기간을 앓고 있었고, 며느리는 최근 감기가 들어 며칠째 괴로워하고 있었다. 실은 온 집안을 통틀어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들 형식이는 잠잘 때 식은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있었고, 손자 창로는 음식을 먹지 않아 몸이 바짝 여위였다. 그나마 창로는 누워서 앓는 병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한창나이에 먹어야 제대로 자랄 터인데 음식을 마다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병과 싸우고 있지만, 집에는 먹을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김대락은 크게 마음을 먹고는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기로 하였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는 하나 오랜 기간을 같은 솥에서 나온 음식을 나누어 먹던 녀석이었다. 짐승의 목숨을 버려 사람의 식욕을 돋우려 하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개는 평소 잘 짖지도 않고 사람 말귀도 잘 알아듣지 못하여서, 잡아먹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장자가 말한 닭과 산 나무의 교훈은 제법 그럴듯한 가르침이었다. 개를 잡아 국을 끓이니, 오랜만에 식구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마다하던 창로도 오늘만큼은 제법 요기를 한 모양이었다.

한 끼 훌륭한 식사를 하고 나자, 다시 가혹한 현실이 돌아왔다. 상점 주인이 와서 외상값을 독촉하였다. 몇 번이나 기일을 미루어 놓았는데, 매번 믿음에 부응하지 못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오늘은 동짓날이었는데, 팥죽 끓일 재료도 없어 그냥 지나쳤다. 명색이 농사를 짓는다는 사람이 절기도 그냥 지나치니,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동지라고 사당에 찾아가 조상들에게 인사도 못하였으니, 팥죽 재료가 있다 한들 입맛이나 다실 수 있겠는가. 이래저래 탄식할 만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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