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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를 기리는 만사를 짓다
1582년 10월 20일,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아내를 묘소에 안치시키는 일을 마쳤다. 상여꾼이 부족하여 우여곡절 끝에 용궁에 있는 집안 묘소에 어렵사리 안장시킬 수 있었다. 권문해는 상여가 떠나기 전, 아내를 위한 만사를 지었다. 지난 30여 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함께 했던 시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간간이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배어 나오기도 하였다. 한평생을 권문해와 더불어 권씨 집안의 사람으로 묵묵히 살다간 아내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도 밀려들었다.
이내 마음을 고쳐잡고 촛불에 의지하여 붓을 들었다. 권문해가 지었던 어느 만사보다 오늘의 만사는 길고 애통하였다.

“하늘과 땅이 정해져 부부가 나왔는데, 인륜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차례로는 첫 번째라네. 생명의 시작이요 복의 근원이니 사람 도리의 지극함이라네. 내 나이 스물, 그대 나이 스물넷에 하늘이 그대를 배필로 정해주시니, 때는 계축년이었다네. 부드럽고 순한 용모, 곧고도 아름다운 덕으로 온 집안을 화목하게 하여 아내의 법도를 잃지 않았다네. 다투는 소리, 투기하는 말 삼십 년 이래로 한 번도 귀에 들리지 않았네. 아! 나는 맏이이고 그대는 하나뿐인 딸이라 아들 두고 딸을 두어 대를 이으리라 생각했더니, 나이는 쉰에 가까워 양쪽 귀밑머리 솜처럼 변하였는데, 한 아이도 보지 못하니, 사람일 가엾구나. 묵묵히 천도를 생각하니 낳아주는 이치가 극진하지 못하였네. 나무는 꽃과 열매가 있고 풀에는 풀뿌리와 껍질이 있으며, 물고기는 알이 배에 가득하고 메뚜기는 새끼가 아흔이나 되는데, 하늘은 어찌 그리 은혜롭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유독 인색하신가. 죽은 뒤의 탄식이, 그대와 나 어찌 차이가 있겠는가. 아! 자식 없는 자 장수한다는 것은 속언에서 늘 하는 말이고, 함께 늙자는 약속으로 장수하기를 바랐더니, 어찌하여 한 번 병들어 갑자기 죽기에 이르렀나. 나이는 50을 넘었으니 요절은 아니라지만 집에는 노모가 계시어 이미 100세가 가까웠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먼저 가 벼려, 버리듯 남겨두었는가. 아침저녁 봉양과 맛난 음식 대접은 누가 드릴거나. 돌아가신 뒤에 장사 지낼 일 누가 받들어 할까나. 생각이 이에 이르니 슬픈 눈물 샘솟 듯하네. 무심한 목석이 오래 남고, 가죽과 상수리나무가 가장 장수하네. 백성들은 저렇듯 많은데, 그대 홀로 무슨 허물을 지었나. 오호라! 아우에게 두 아들 있어 하나를 취하여 후사로 삼았네. 그대는 많이도 어루만지고 길러, 자신이 낳은 자식과 다름없이 하였네. 이제는 글 읽을 줄도 알아 나이 이미 열둘이라. 상복을 입혀 그대의 상여를 모시게 하니 쓸쓸하다 말하지 말게, 자식이 없다 하나 자식을 두었다네. 날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며느리 보고 손자 두어, 그대 향불 받들고 후손을 남기기를 기약하네. 아! 저 용문을 보시게. 선고의 유택이라 그대 무덤으로 점지하여 그 곁으로 하였다네. 골 깊고 그윽하며 소나무 회나무 울창하여 그대는 곁에 모시면서 편안하고 편안하시게. 멀리 선산과 떨어졌다고 애달파 하지는 말게나. 삼종의 의리가 저승에 갔다고 다를손가. 상상과 양양 그리 멀지 않아 혼은 반드시 오고 가리니. 마치 물이 있어 아래위로 흘러 통하듯 하리. 그대 몸 차디찰까 염려하여 옷을 지어 보내셨네. 시어머니 손수 바느질하시면서 피눈물을 적시셨다네. 천추만세토록 그 옷 입어 싫어하지 마시게. 오호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 마치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 같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길던 짧던 죽는 것은 한 가지네. 상여가 벌써 출발하였으니, 저승과 통하는 길 영영 막혔네. 한 곡조 해로곡에 길이 아파하며 말을 잊지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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