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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배신한 승려 성택의 이야기
1592년 8월 26일, 일전에 의병장 고경명이 전사할 당시 한 중이 의병으로 들어오고자 하여 그에게 물 긷고 밥 짓는 일을 책임 지웠다고 한다. 그런데 싸움에 나가는 날에 이르러서 이 중이 왜적과 내통하여 의병대장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의병들이 크게 패하였다. 또 용담, 금산 두 고을에 도망하여 숨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중이 적과 내통하여 적의 무리를 인도하여 여러 산을 수색하고 인민을 살해하며 재물을 노략질하였다고 한다. 또 보성군수가 9일 동안의 싸움을 할 당시, 이 중이 보성군수를 살해하고 그가 차고 있는 대장의 도장을 빼앗으려 계획하였다고 한다. 실로 그 흉악함이 왜적보다 몇 배 더 심하다고 할 만하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겨 그를 죽여 그 고기를 먹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성군수가 우연히 이 중을 사로잡아 문초하였는데, 앞의 일이 모두 탄로 나서 방어사에게 압송되었다고 한다. 이 중의 말에 의하면 금산에 주둔한 왜적은 먹을 것이 이미 다 떨어져서 날벼를 베어 먹고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의 이름은 성택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왜적 30명을 죽여도 이 중 하나를 죽인 공에 못 미친다고 하였다. 그런 배신자를 잡아들였으니 통쾌하고 또 통쾌한 일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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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쇄미록(𤨏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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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희문(吳希文)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592-08-26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전라북도 장수군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오희문, 성택, 고경명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오희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고경명
◆ 조선시대 불교의 지위
고려일대를 통해 왕실의 보호에 힘입어 번성하던 불교는 조선왕조의 출현과 함께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조선왕조의 척불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으로 무장된 양반관료들이 이념적 측면에서 배척한 데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볼 때 고려말기에 이르러 사원경제의 비대화와 승려의 타락 등이 새 왕조의 양반관료들로 하여금 불교를 배척케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선왕조는 처음부터 극렬한 배불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일과 불교재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흥복․흥왕․흥덕사의 창건, 법회의 개설과 인경(印經)사업 등을 국가재정으로 지원했을 정도다. 그러나 불교계 전체는 오랜 폐습 때문에 새 왕조의 출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3대 태종의 즉위와 함께 무서운 법난(法難)으로 나타났다. 태종은 각 종파의 소속사찰을 극히 제한하고 또 사찰소유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는 한편, 왕사․국사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승려의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켰다.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볼 때 불교사는 한마디로 수난의 연속이었다. 연산군 중종대를 거치는 동안 불교는 완전히 몰락하고 승려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별도의 하층신분 집단으로 전락된 상태였다. 국가는 승려를 동원, 축성과 제방공사의 노역에 투입했고 그 대가로 승려자격을 인정하는 도첩을 발급하기까지 했다. 명종대 문정왕후로 인해 승과가 부활되는 등 잠깐의 활기를 찾았으나 왕후의 죽음으로 다시 침체되었다. 조선시대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의승군의 궐기와 국난극복을 위한 전쟁 참여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발발로 일어났다. 휴정과 유정으로 대표되는 승군은 국난 극복을 위해 떨쳐 일어나 공을 세웠으나 조선왕조의 정책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교 내적으로 볼 때 승병활동은 불교의 사회적 위신 향상과 유능한 인재 흡수의 계기가 됐다. 조선 중기 이후 교학의 활기와 학승 문파의 활성화 등은 어려운 상황아래서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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