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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싸움에서 이종인의 최후에 대해 듣다
1593년 8월 30일, 오늘 오희문은 진주성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한 장수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충청병사 황진, 거제현령 김준민, 이종인 등이 모두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적과 교전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고 한다.

황진은 자신이 몸소 군졸들 앞에 나서서 죽기를 무릅쓰고 힘써 싸우다가 서쪽 성이 허물어지자 즉시 의관을 벗어버리고 친히 돌을 지고 군졸보다 앞장서서 밤새 성을 보수하였다고 한다. 그걸 본 성 안의 남녀들이 감격하여 하루 밤사이에 성벽을 다시 보완하자 적이 주춤하여 물러났다고 한다. 성의 보수를 마치고 황진이 성 벽에 올라 ‘어젯밤 싸움에서 죽은 적의 수가 거의 천여 명이라 한다’ 고 하면서 조선 군사들을 독려하였는데, 이때 성 밑에 숨어있던 왜적이 총을 쏘아 목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또 김준민은 성이 함락되던 날 힘껏 싸우다가 탄환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종인은 성이 함락되던 날 그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 큰 화살을 쏘아 일곱 명의 적을 죽였는데, 결국 탄환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종인은 진주성 싸움에서 상당한 용맹함을 보여주었다고 하던데, 중국 장수들 역시 이종인의 용맹이 삼군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진주 사람이 와서 싸움을 도와 달라 청하자 이종인이 계속해서 다섯 명의 적을 쏘니 다섯 명이 모두 달아났고, 적이 큰 구를 만들어 성으로 들어가자, 이종인은 먼저 수 십 개의 화살을 쏘아 궤를 맞히고 계속해서 기름과 나무를 내려보내니 적들은 불을 끄느라 아우성이었다. 적들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 화살로 여덟 명의 적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아울러 성이 무너지던 날 북문 싸움이 급해지자 사람들이 또 이종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수하의 궁수들을 데리고 가서 물리쳤다. 그날 밤 적이 성의 돌을 빼내고 날이 밝자 적들이 돌을 빼놓은 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러자 이종인은 활과 화살을 버리고 창을 들어 이들을 찌르기 시작하였는데, 죽은 적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니 적들이 다소 물러갔다고 한다. 그러나 형세가 어려워지자 촉석루 위로 갔는데, 적이 성을 넘어 들어와서 종인을 탄환으로 쏘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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