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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용장이 세상을 떠나다
1741년 6월 21일, 맑은 날씨였다. 최근 가슴이 답답한 증세에 시달리시던 어머니의 환후는 그나마 좀 안정이 되었다. 그런데 근심은 아들 용장의 병이었다. 지난 16일경 갑자기 병에 걸린 용장은 풍을 맞은 듯한 조짐을 보이더니, 온몸에 열이 나고 설사를 하였다. 정신이 혼미해지지는 않아 혹시나 기대하였는데, 3일 전부터는 소생할 가망이 아예 없어진 듯 보였다.
결국 오늘 오후, 아들 용장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아이는 어미를 잃은 이후부터 근근이 지금까지 버텨오다가, 우연히 병을 얻어 끝내 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 무슨 참혹한 재앙이란 말인가?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 빨리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결국 지체하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최흥원은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아이가 죽자마자 최흥원은 자신도 모르게 목 놓아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어미 품을 잃고,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들이 너무나 측은하고 불쌍하였다. 아내는 죽기 직전까지 이 아이를 어찌 키우나 고민하였고 최흥원에게 이 방법, 저 방법을 일러주며 신신당부 하였는데, 이제 죽어서 아내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인가! 최흥원은 하늘이 무너지는듯하여 통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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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역중일기(曆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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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흥원(崔興遠)
주제 : 아들의 죽음
시기 : 1741-06-21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최흥원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75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최흥원
◆ 조선시대 어린이의 장례
전통적 유교 윤리관에서는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손을 불효자로 여겨 정상적인 장례절차 없이 화장이나 공동묘지에 지석도 비석도 표지도 없이 매장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경기도 양주군 양주읍 광사리 선산에서 이장작업을 하던 해평윤씨 문중에서 350년 전 조선의 꼬마무덤이 발굴 되었다. 이 무덤에는 작은 소나무 목관과 흰 광목에 싸인 주검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물에 젖어 얼어붙은 옷들을 손바닥 체온으로 녹이며 하나씩 조심조심 벗겨 나가니, 그 주검은 어른의 중치막(옆이 트인 포 종류의 겉옷)과 멱목(주검 얼굴을 덮는 천) 아래로 편안히 잠든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 얼굴이었고, 곧게 탄 가르마와 어제 땋은듯한 검은 머리채가 남아 있었다. 수백 년 전 어린이의 모습이었다. 해골의 치아 발달과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토양의 꽃가루 분석 등을 종합한 결과 아이는 300~350년 전(1650년대) 5월의 어느 따뜻한 봄날 5살의 나이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여기서 나온 옷가지들이다. 아이는 어머니 것으로 보이는 장옷을 요처럼 깔고 아버지의 중치막을 이불삼아 덮고 누워 있었다. 어린 자식을 차가운 땅 속에 묻으며 애통해하던 부모의 심정이 나타난 대목이다.
지석도 비석도 표지도 없는 무덤의 경우 여기서 나온 ‘출토복식’은 시대를 알려주는 가장 유력한 물증이다.
이 무덤은 각종 과학적 조사 자료가 되기도 할뿐더러 옛 사람들의 개인적 취향과 시대적 유행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요즘엔 장례 때 삼베로 ‘수의’를 따로 지어 입히지만 옛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평소 입은 생활복을 그대로 입혀 묻었기 때문이다.
이런 매장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품이 넉넉한 옷 대신 몸에 꼭 맞는 옷이 유행하면서 ‘수의용’ 옷들을 따로 만들면서부터다. 일제시대에는 각종 물자가 부족해 삼베 일색이 됐고, 오늘날엔 오히려 똑같은 모양의 삼베수의가 수백만원을 호가하며 팔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도 일찍이 자식을 잃었었는데, 그 때 가슴에 맺힌 한을 시에 담아 표출하였다.
哭子(곡자-자식 죽음에 슬피 울다)...許蘭雪軒(허난설헌)
去 年 喪 愛 女(거년상애녀)...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 年 喪 愛 子(금년상애자)...올해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哀 哀 廣 陵 土(애애광릉토)...슬프디 슬플 광릉땅이여
雙 墳 相 對 起(쌍분상대기)...두 무덤 마주하고 있구나
蕭 蕭 白 楊 風(소소백양풍)...쓸쓸한 바람 백양나무 사이로 불고
鬼 火 明 松 楸(귀화명송추)...무덤가에는 도깨비불 번쩍이는데
紙 錢 招 汝 魂 (지전초여혼)...지전으로 너희 혼을 부르고
玄 酒 存 汝 丘(현주존여구)...너희 무덤에 현주를 놓는다
應 知 第 兄 魂(응지제형혼)...응당 너희 남매의 혼은 서로를 알아
夜 夜 相 追 遊(야야상추유)...밤이면 밤마다 어울려 놀겠지
縱 有 服 中 孩(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지만
安 可 冀 長 成(안가기장성)...어찌 잘 자라기를 바라랴
浪 吟 黃 坮 詞(낭음황대사)...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으며
血 泣 悲 呑 聲(혈읍비탄성)...피눈물로 슬픈 울음소리 삼킨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6월 21일 맑음. 어머니의 환후는 다행히 어제와 같았으나 아이의 병은 이미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아이가 어미를 잃은 뒤로부터 근근이 지금까지 지탱하여 오다가 우연히 병을 얻어서 끝내 구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무슨 참혹한 재앙이란 말인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오후에 결국 요절하였다. 나도 모르게 목 놓아 통곡하였다. 이어서 최응문崔應文 집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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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치막(中致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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