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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유가 서적을 팔다
1762년 8월 27일. 날이 흐리고 서늘한 날이었다. 요사이 아들 주진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난밤에는 편안하게 자면서 설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어머니의 환후 역시 평소와 같았다.
오늘은 동화사의 스님인 한총이 최흥원을 찾아왔다. 그는 양손에 가득 책 꾸러미를 들고 왔는데, 최흥원에게 여러 책을 보이면서 사시라 권하였다. 처음엔 불가의 책인 줄 알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팔고 있는 책은 대부분 유가의 서적이었다. 책 중에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책들도 꽤 많이 보였다. 최흥원이 관심을 보이자 한총은 여러 꾸러미를 풀어 보이며 최흥원에게 보였다.
한참을 고른 끝에 최흥원은 『경의기문록』 권과 『주자언론동이고』 3권의 책을 골랐다. 평소 한번 보고자 했던 책인데, 이렇게 뜻밖에 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한총이 책을 팔자, 최흥원은 그에게 다른 책도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한총은 흔쾌히 대답하며, 무슨 책을 구하는지 물었다. 최흥원은 그에게 『근사록』 장정된 것 2질을 부탁하였다.
한총이 책을 팔고 돌아가자 최흥원은 새로 산 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부처를 모시는 자가 공자를 찬양하는 책들을 팔고 있다니……. 최흥원은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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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역중일기(曆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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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흥원(崔興遠)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62-08-27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최흥원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116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최흥원
◆ 조선후기의 서적출판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로부터 많은 책이 수입되어 유통되었고, 조선 국내에서의 서적 간행도 매우 활발해졌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충만했던 시기였다. 책은 대개 인쇄를 통해 간행되었다. 이 시기 주목해야할 점은 지방의 관아나 개인들이 간행 열풍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인쇄에는 활자나 목판이 이용되었다. 목판의 비중이 절대적이었지만 개인이 금속활자를 주조하기도 했고 국가의 활자가 사적인 출판물에 사용되기도 했다. 서적의 종류로는 역시 가문과 학문적 계보를 과시하고자 하는 문집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점차 상업적 판매와 유통을 노린 방각본(坊刻本)도 늘어났다. 정국채의 제안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의 공급이나 이윤 확보라는 노선과는 선을 긋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성리학, 즉 주희와 송시열의 학문을 정리한 서적을 간행하여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데 있었다. 그는 조선의 출판이 도달한 발전상을 이용하면서도,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상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8월 27일 흐리고 서늘하였다. 어머니의 환후는 한결같다. 아이의 병은 지난밤에 편안하게 잠을 자면서 설사를 하지 않았으니 천행이다. 류생이 김용여와 함께 찾아와서 잤다. 동화사 중 한총漢摠이 와서 인사를 하고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 3책과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 3책을 바치면서 사라고 요구하기에 받아두게 하고, 그에게 『근사록』 장정할 것 2질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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