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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맹인 점쟁이 심군
1763년 1월 6일. 신미년 새해가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김용여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였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신년 운수를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맹인 점장이 심옥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그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나단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 한다. 엊그제 김용여가 사는 마을에 왔길래 자신도 점을 한 번 쳐보았는데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려다가 점을 한 번 쳐볼 만하니 최흥원에게도 한 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최흥원은 이 편지를 보고는 둘째 아우를 보내어 그 심옥이란 점쟁이를 데려오게 했다.
오늘 그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아주 불길하게 나왔다. 심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대뜸 아내 묘소의 이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최흥원은 예전에도 아내 묘의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심옥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또 그에게 아픈 아이의 사주를 적어주고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매우 길한 점괘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흥원은 내친김에 심옥에게 집안사람들의 운명을 두루두루 물어보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수를 점치기는 하나, 정확하게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막상 심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 특별히 용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자뿐 아니라 모두가 아내의 이장을 권하니, 그것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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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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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역중일기(曆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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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흥원(崔興遠)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63-01-06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최흥원, 김용여, 심옥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최흥원
◆ 조선시대 점과 점쟁이
예로부터 무당을 궐 안에 두고 나라의 길흉을 예언케 하였으나 점쟁이는 예언자로 전문적 직업인으로 민간에 생겼다. 점을 치는 종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사의 존망을 점치는 사주점과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는 운수점, 한 해의 운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신수점, 단시점(斷時占), 멸액점(滅厄占), 절초점(折草占)따위가 있다. 또한 점을 치는 것으로는 태주가 하는 신점(神占)과 주로 여자 점쟁이가 쌀을 뿌려 점치는 쌀점, 동전을 던져서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산통점(算筒占), 역점(易占), 오행점(五行占), 육효점(六爻占), 팔괘(八卦占), 구궁점(九宮)따위가 있다.
옛날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길흉을 물음)이요!” 하면서 점을 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 쓴 깃발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이름 짓기와 관상, 이름, 감정 따위를 보았으며 때때로 액운을 막기 위한 부적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中期) 때 민간에 보급된 대표적인 토정비결(土亭秘訣, 이지함 저술)은 생년월일시를 숫자로 풀이해서 그 해의 운수를 달마다 보는 정초의 풍습이 되었다.
◆ 조선시대 맹인의 교육과 활동
고려시대부터 맹인들의 점을 치는 기술이나 방법이나 불경을 암송하는 등의 일을 전문적으로 국가에서 교육시켰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성행하였고 맹인들이 복술(卜術)과 독경(讀經)으로 양재기복(禳災祈福, 신에게 빌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것)하는 일까지 겸하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이들의 복술은 당나라 때 원천강(袁天綱)의 육임과(六壬課, 골패 등을 가지고 길흉을 점치는 방법)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점술법에 의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이후의 명경수(明鏡數)를 최고로 일컬어 왔다고 여겨지나 실제로는 산통(산가지를 넣는 통)을 차고 다니며 청하는 집에 들어가 산가지(옛날에 수효를 셈할 때 쓰던 물건. 가는 대나 뼈 따위로 젓가락처럼 만듦.)로 괘를 만들어 길흉을 말해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이래로 맹인의 독경·주축을 관할하는 국가 관서로서 명통시(明通寺) 두고 이곳에 맹인을 불러 모아 기우(비 오기를 빔)행사를 집행시키고, 자주 사미(賜米, 나라에서 내리는 쌀)의 은전이 베풀어졌다. 명통시에서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5부(部)의 맹인들이 모여 한 차례씩 독경축수하는 행사가 거행되는데,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지위가 높은 자는 채청에 올라가고 낮은 자는 문을 지키며, 여러 겹의 문에 창을 든 수위자를 세워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명통시는 지금의 남산기슭 신당동 근처에 위치해 있었으며, 그 뒤 맹청(盲廳)으로 이름을 바꿨다.
명통시의 맹인은 처음에는 삭발을 해서 맹승(盲僧) 또는 선사(禪師)로 불리었으나 불승과는 다르고 불교·도교·민간 신앙을 혼유한 존재였으므로 가뭄이 들면 기우하고 질병이 들면 기양(祈禳)하게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에는 도교의 교단이나 도사가 없는 대신 맹인들이 잡술 행사의 집행을 담당해 내려 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맹인에게 점복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이수한 이들에게는 점복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은 우리 선조들의 천명사상을 믿었고, 맹인에게 독경, 예언, 치병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월 4일 맑음. 날이 샐 무렵에 숙부의 기제사에 나아가 참석하고, 곧바로 돌아와서 뵈니 어머니의 환후는 다행히 어제와 같았다. 김용여金用汝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와서 ‘맹인 심옥沈鈺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납니다. 어제 이곳에 왔기에 설날 아침에 점을 쳐 얻은 복괘로 풀이하게 하니, 모든 일이 통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데려가서 우환을 점칠 만합니다.’ 하였다. 둘째아우가 편지를 하여 부르니 내일 올 뜻이 있었다. 1월 6일 흐리고 눈발이 떨어지다가 가랑비가 내렸다. 오늘 내리는 비를 농가에서 가장 꺼리니 올 농사가 걱정이다. 어머니의 환후는 다행히 어제와 같다. 심군이 축시 경에 향을 피우고 돈점[擲錢]을 쳐서 쾌괘夬卦가 손괘巽卦로 변하는 점괘를 얻었는데 “불길하니 이장[遷改]을 권합니다.” 라고 풀이하였으며, 또 아이 주진의 사주四柱를 풀이하고, 산가지로 점을 치더니 크게 “길하다”라고 말하니, 괴이하다. 어제 밤중에 사호士豪가 갑자기 왔으니, 이는 산소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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