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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하다
1519년 3월 4일, 상산. 조정에서 경상도에
황산곡(黃山谷)
문집을 반질(頒帙) 간행하게 하였다. 도호부인 상주·대구·안동·진주 네 곳을 선정하고, 아울러 차사원을 정해 친히 교정하게 하였다. 관할 각 관청의 각수들에게 맡겨 시행하도록 하였다.
1519년 8월 30일, 상주. 전 감사 한세환에게 편지를 써서 예방을 통해 부치고 『태평통재』 1건(件) 41책을 보냈다. 또 최경앙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주례(周禮)
1건 6책을 보냈다. 역시 예방을 통해 부쳤으니, 답장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책 상자와 띠 상자는 감영에 남겨두었다. 책 건수는 『자경편』·『연주시』·『무원록』이었다.
1519년 9월 1일, 상주. 좌의정 집에 『명신언행록』을 보냈다. 화산에 종이를 보냈다. 『성리대전』을 인쇄하려고 해서인데, 권수가 227권이었다.
1519년 11월 15일, 사천. 진주에서 귀성의 손(孫)이 보내온 책지 118묶음 중에서 86묶음은 『문선』, 30묶음은 『고문진보』, 3묶음은 『연명집』이었는데, 인쇄용으로 공방에게 주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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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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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재영남일기(在嶺南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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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황사우(黃士祐)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519-03-04 ~ 1519-11-1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상주군, 경상남도 사천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황사우, 한세환, 최경앙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서적 인쇄와 간행
조선시대의 서적 인쇄는 중앙의 교서관(校書館, 옛 성현들이 유교 사상과 교리를 써 놓은 경서를 인쇄하거나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인신(印信, 도장)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에서 많은 부분 담당하였으나 보급에 있어 개개인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어 지방의 경우 서적의 간행과 유통을 각 지방의 감영에서 관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히 서적간행은 감사가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감영에서는 왕의 지시나 관찰사의 의지에 따라 서적이 간행되었다.
이 시기 영남에서 간행한 책은 『성리대전』, 『문선』, 『고문진보』, 『여녕집』, 『산곡집』등이었다. 이 책 중에서 『산곡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존의 책판을 활용해 새로 책을 인쇄했다. 송 대의 문인 산곡 황정견의 문집인 『산곡집』은 중앙에서 명령을 내려 새로 간행하도록 한 책이었다.
3월 4일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내용을 교정하는 일, 새로이 목판을 만드는 일, 종이를 가지고 인쇄하는 일 등 간행에 필요한 모든 공정이 감사의 지휘 하에 추진되었다.
그리고 9월 1일자 일기를 보면 군현에서 인쇄에 필요한 종이를 공급하고 책판이 있는 군현에서 이를 활용해 책을 찍어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경상도에서 도서 간행을 맡은 지역은 상주·대구·안동·진주 등의 도호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지역은 역사가 오래되고 읍세가 좋은 곳으로, 새로운 책을 간행할 일이 있으면 이를 전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시대 활자본을 교정 할 때는 보통 세 번의 교정과정을 거쳤다. 처음 보는 교정을 초견(初見)이라 하고, 두 번째로 보는 교정을 재견(再見), 세 번째로 보는 교정을 삼견(參見)이라 하였다. 교정을 볼 때는 붉은색이나 먹물로 표시하였다. 주된 교정 내용은 글자 획의 굵기를 조절하거나, 글자 위치를 서로 바꾸는 상환(相換), 그림의 크기를 교정하는 것, 오자를 고치는 것, 글자의 빠진 부분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교정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교정지에 교정을 본 사람과 균자장(조선시대 교서관에 소속되어 활자 조판 업무를 맡았던 장인)의 이름을 실명으로 표기하였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519년 3월 4일. 날씨 흐림. 상산(商山)에 머물며 병을 조리(調理)하였다. ◎ 아침에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감사(監司)께 문안을 드리고, 방에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하다 물러났다. 식사 뒤 감사(監司)는 함녕(咸寧)으로 가고, 나는 병 때문에 머물며 조리하였다. 심약(審藥)이 함께 머물렀다. 병사(兵使)가 보낸 심약은 돌아갔다. 감사(監司)의 행차는 홍충순(洪忠順) 댁으로 들어갔다. 이방(吏房)을 보내와서 조리(調理)에 힘쓰라고 하였다. 참판(參判) 이항(李沆)의 아내가 행차하여 서상방(西上房)으로 들어갔다. 강조(姜祚)와 이홍(利弘)이 내방하였다. 심약(審藥)이 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물러갔다. 경상도(慶尙道)에 황산곡(黃山谷) 문집을 반질(頒帙)하여 간행하게 하였다. 도호부(都護府)인 상주(尙州)·대구(大丘)·안동(安東)·진주(晉州) 네 곳을 선정하고, 아울러 차사원(差使員)을 정해 친히 교정(校正)하게 하였으며, 관할 각 관청의 각수(刻手)들에게 맡겨 시행하도록 하였다. 오후에 권돈지(權惇之) 형이 예천(醴泉)에서 내방하였다. 저물 무렵 권돈지(權惇之)·이홍(利弘)과 방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강조(姜祚)가 내방하여 이야기하다가 갔다. 권돈지(權惇之)는 함께 자면서 이야기하였다. 지동(祗同)이 풍기(豊基)에서 왔다. 1519년 8월 30일. 날씨 맑음. 감사(監司)가 용궁(龍宮)에서 왔다. 나는 상주(尙州)에 머물렀다. ◎ 아침에 포쇄별감(曝洒別監)의 방으로 갔다가 동헌(東軒)에서 집무를 시작하였다. 상주목사(尙州牧使)와 광언(光彦)이 함께 들어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채세영(蔡世英) 공은 출발하여 개령(開寧)으로 향하였다. 정오에 광언(光彦)과 이야기하였다. 전 감사(監司)께 편지를 서서 예방(禮房)을 통해 부치고 《태평통재(太平通載)》 1건(件) 41책을 보냈다. 또 최경앙(崔景仰)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주례(周禮) 1건(件) 6책을 보냈다. 역시 예방(禮房)을 통해 부쳤으니, 답장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책 상자와 띠 상자는 감영(監營)에 남겨두었다. 책 건수는 《자경편(自警篇)》·《연주시(聯珠詩)》·《무원록(無寃錄)》 이었다. 용궁현(龍宮縣) 대은역(大恩驛) 역졸에게 부탁하여 백동(白洞)에 편지를 전달하게 하고, 답장은 받아 오지 말라 하였다. 김자신(金子信)이 돌아갔다. 저녁에 감사(監司)가 용궁(龍宮)에서 횃불을 밝혀 들고 들어왔다. 공무가 적체(積滯)되었기 때문이었다. 동헌에서 집무를 시작하며 말씀하시기를 “도중에 재상어사(災祥御史) 정사룡(鄭士龍)을 만났는데, 진산(晉山)·분성(盆城)·봉산(蓬山)·월성(月城)·곡강(曲江)·영해(寧海)·청송(靑松)·웅천(熊川)·지례(知禮) 등지를 맡아 그 곳의 학교와 재상(災傷)과 군기(軍器) 등의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한다.”라고 하였다. 한림(翰林) 이구(李構)가 휴가를 얻어 왔는데, 그도 또한 재상어사(災祥御史)를 만났다고 하였다. 박언성(朴彦誠)이 내방하였다가 바로 돌아갔다. 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별시(別試)를 알리고, 명지(名紙)를 보내주었다. 유곡역(幽谷驛) 역졸로 하여금 백동(白洞)에 전달하도록 하고, 답장은 방칠(方七)이가 돌아오는 편에 부처 보내라고 하였다. 1519년 9월 1일. 날씨가 맑고 날이 따뜻함. 아침에 감사(監司)가 동헌(東軒)에서 집무를 시작하였다. 좌의정(左議政) 집에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을 보냈다. 화산(花山)에 종이를 보냈다.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인쇄하려고 해서이니, 권수가 227권이었다. 식사 후 출발하여 김산(金山)에 도착하였다. 감사(監司)는 동헌(東軒)에서 집무를 시작하였다. 저물 무렵 김산군수(金山郡守)가 들어와 인사하였다. 최세연(崔世演)·곽자전(郭子筌)·이혼(李渾)·유곡찰방(幽谷察訪)·전(前) 참봉(參奉) 이수영(李岫榮)은 돌아가고, 곽자전(郭子筌)도 돌아갔으며, 이혼(李渾)과 함께 잤다. 1519년 11월 15일. 날씨가 맑고 날이 따뜻함. 바람이 붐. 감사(監司)는 산음(山陰)에서 자고, 나는 사천(泗川)에서 잤다. ◎ 아침에 제주관(題主官) 박광필(朴光弼), 훈도(訓導) 전헌(全憲)과 함께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다. 방으로 돌아오니 하석범(河錫範), 하영(河瀛), 노적(盧績)이 또한 왔다. 일찍 식사를 한 후 제주관(題主官) 박광필(朴光弼)의 숙소로 갔다. 명천현감(明川縣監) 하석범(河錫範), 감역(監役) 노적(盧績), 훈도(訓導) 전헌(全憲)이 모두 들어와서 술자리를 열고 마주앉아 식사를 하였다. 그 후 출발하여 사천(泗川) 지경에 이르니, 동년(同年) 정장견(鄭長堅) 견지(堅之) <그의 집이 길 가에 있었다.> 가 초청하여 함께 이야기하였다. 사천에 도착하니 <이때 사천현감(泗川縣監) 박승필(朴承㻶)은 상중(喪中)에 있었고, 이유(李裕)가 새로 임명되었으나 아직 부임하지 않았다.> 겸임(兼任) 고성현령(固城縣令) 윤중임(尹重任)과 신임 훈도(訓導) 이숭(李崇)이 와서 문안하였다. 진주(晉州)에서 귀성(龜城)의 손(孫)이 보내 온 책지(冊紙) 118묶음 중에서 86묶음은 《문선(文選)》, 30묶음은 《고문진보(古文眞寶)》, 3묶음은 《연명집(淵明集)》 인쇄용으로 공방(工房)에게 주었다. 사천(泗川)에 도착하니, 겸임(兼任) 윤중임(尹重任)이 들어와 이야기하였다. 저녁에 정견지(鄭堅之)가 내방하여 함께 잤다. 진주반자(晉州半刺) 임준(林畯)이 흥선(興善)의 병사(兵使)와 수사(水使)가 계시는 곳으로부터 저녁에 와서 서로 만난 후 바로 진주(晉州)로 향하였다. 제주관(題主官)이 기다리며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나도 또한 돌아가기를 권하였다. 훈도(訓導)가 강태수(姜台壽)의 편지를 전하였다 영리(營吏) 조상(趙翔)이 진주에 있다가 왔기에 정보은(鄭報恩)과 함께 거느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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