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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고 물놀이를 하던 승려, 벌에 이마를 쏘이다
1618년 윤4월 20일 무인 맑음. 남도 유람 중이던 양경우는 다리에 종기가 생겨 산을 오르지 못하였다. 쓸쓸하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늙은 승려가 양경우를 찾아와,
“절 뒤에 맑은 여울과 무성한 숲이 있어 더위를 식힐 만합니다.”
라고 하고 앞에서 인도하여 북쪽 담장을 나와 나를 작은 대(臺)의 위에 앉혔다. 녹음은 자리에 가득하고 한 줄기 흐르는 샘은 콸콸 소리를 내면서 대를 따라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단애(斷崖)를 만나 폭포를 이루며 하얗게 물방울을 튀기며 내려가는 것이 이층을 이룬다. 그 높이를 통틀어 계산해보니 4, 5길 정도 된다.
그 아래는 물이 고여 깊은 연못을 이룬다. 연못은 두 개의 이름이 있는데, 폭포연(瀑布淵)이라고도 하고 북지당(北池塘)이라고도 한다. 곁에 있던 종이 양경우에게 말하기를,
“이곳의 승려들은 물장난을 잘하는데 볼만합니다.”
라고 하였다. 양경우가 늙은 승려에게 명하여 해보라고 하였다. 이에 젊은 중 7, 8명이 발가벗고 연못 위에 서서 두 손으로 음낭을 가리고 다리를 모아 우뚝 섰다.
연못 가운데로 뛰어들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자는 잘하는 축인데, 뛰어드는 처음에는 그가 간 곳을 모르다가 한참 지난 뒤에 머리를 솟구쳐서 밖으로 나온다. 이윽고 나왔다가 다시 그렇게 하여 앞에 하는 자와 뒤에 하는 자가 서로 쉬지 않고 한다. 그 가운데 한 중이 물속에서 나왔다숨었다 하는 것이 매우 빨랐다. 바야흐로 연못 위에 서 있는데 큰 벌이 숲에서 나와 그 이마를 쏘니 승려가 땅에 넘어져 울부짖었다. 잠깐 사이에 눈과 눈썹을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즐겁지 않은 상태에서 파하였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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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역진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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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경우(梁慶遇)
주제 : 놀이와 유람, 산책과 나들이
시기 : 1618-04-20 (윤)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전라남도 영암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양경우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2호
조선왕조실록
◆ 조상들의 피서와 물놀이
냉방시설, 변변한 교통수단도 없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쫓았을까. 정월대보름날부터 여름날의 무더위를 미리 팔아치우는 것을 보면 여름무더위가 우리 조상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한겨울에 더위를 팔아 미리 피서하는 우리 조상들의 무더위 탈출 지혜를 소개해 본다.
- 탁족(濯足)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피서법은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는, 이른바 ‘탁족’(濯足)이었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질 뿐 아니라 흐르는 물이 발바닥을 자극해 건강에 좋다고 해서 더욱 성행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남산과 북한산 계곡에서의 탁족놀이를 여름철 피서법으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 탁족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서울 세검정 일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조(六月條)에도“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씻기 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가 당시의 풍속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탁족놀이가 일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탁족 풍속은 그림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부분의 탁족도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물에 담근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풍속은 옛 선비들이 지은 시들이 많이 남아있는 강가의 정자에서 흔히 엿볼 수 있다.
〈송도기행첩〉은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여름날 송도 유람을 하고 송도의 명승지를 그림으로 담아낸 화첩이다. 전통적으로 최고의 피서지는 녹음이 우거지고 맑으면서도 찬물이 넘쳐흐르는 계곡일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여름철에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더위를 잊었다. 이 화첩에는 그림 오른쪽 위에 '태종대(太宗臺)'라고 적혀 있다. 태종대는 개성 북쪽 성거산(聖居山)에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로 조선 태종이 이곳에 놀러 온 후 그 이름을 따서 태종대가 되었다고 한다. 화면 중앙 아래쪽에는 넓적한 바위 위에 갓을 쓴 선비가 종이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맞은편 바위에는 웃옷을 벗고 있는 사람, 바지만 걷어 올린 채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 이들을 서서 지켜보는 시종들이 보인다. 그림 속의 녹음이 우거지고 개울에는 물이 가득하고 인물들은 웃옷을 벗고 탁족을 하는 풍경이 음력 7월과 어울린다.
우리 조상들이 실제로 즐겼던 피서 방법에는‘탁족’외에도 ‘물맞이’나 ‘목물하기’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 강수욕(江水浴)… 옛 서민 피서법
강수욕은 과거 서민의 피서법이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강가의 논밭에서 일을 하던 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다고 한다.
국문학자인 강동욱(姜東郁·경상대 강사)씨는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은 함부로 강물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벗지 않았다”며 “선비들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거나 강가의 정자에서 강바람에 더위를 씻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민들의 문화다 보니 강수욕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 물맞이
'유두'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란 말에서 온 것이며 풍속은 신라시대에서 온 것이다. 고려시대에 쓴 〈동도유속집〉에 “6월 보름을 유두일이라 하고 맑은 개울에서 멱을 감고, 궂은 것을 털어버리고 선비들은 유두 음식을 차려 물가에서 풍월을 읊는 유두연(流頭宴)을 베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유두날 전후로 나온 햇과일인 참외, 오이, 수박과 떡을 빚고 국수를 말아 사당에 제를 올리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한다. 삼복이 끼어 있는 무더운 한여름이니 부인들은 약수를 찾아 머리를 감고 ‘물맞이’를 하며 놋솥에 밥을 지어 제를 드린다.
민속에 동류(東流)에 가서 머리를 감는데 그 까닭은 동방(東方)이 청(靑)이요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인들의 ‘물맞이’장소로는 서울에서는 정릉(貞陵) 계곡과 광주(光州)에서는 무등산(無等山)의 물통폭포, 제주도에서는 한라산(漢拏山)의 성판봉(城坂峰) 폭포가 적합하다고 전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조선상식)〉 풍속편에 의하면, 서울은 정릉 계곡 외에도 송림(松林)과 물이 좋은 악박골과, 사직단(社稷壇)이 있는 황학정[黃鶴亭, 활터]근방과, 낙산 밑이 물맞이하기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이런 곳에 아낙네와 기생들이 패를 지어 모여들고, 여염집 부녀자들은 흰 포장(布帳)의 차일 막을 치고는 머리를 감고 몸에 물을 묻히면서 하루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는 경주 풍속에 6월 보름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을 씻어 버린다. 그리고 액막이로 모여서 술을 마신다.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 한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20일 무인 맑음. 다리에 종기가 생겨 산을 오르지 못하였다. 쓸쓸하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늙은 승려가 나를 찾아와,
“절 뒤에 맑은 여울과 무성한 숲이 있어 더위를 식힐 만합니다.”
라고 하고 앞에서 인도하여 북쪽 담장을 나와 나를 작은 대(臺)의 위에 앉혔다. 녹음은 자리에 가득하고 한 줄기 흐르는 샘은 콸콸 소리를 내면서 대를 따라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단애(斷崖)를 만나 폭포를 이루며 하얗게 물방울을 튀기며 내려가는 것이 이층을 이룬다. 그 높이를 통틀어 계산해보니 4, 5길 정도 된다.
그 아래는 물이 고여 깊은 연못을 이룬다. 연못은 두 개의 이름이 있는데, 폭포연(瀑布淵)이라고도 하고 북지당(北池塘)이라고도 한다. 곁에 있던 종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곳의 승려들은 물장난을 잘하는데 볼만합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늙은 승려에게 명하여 해보라고 하였다. 이에 젊은 중 7, 8명이 발가벗고 연못 위에 서서 두 손으로 음낭을 가리고 다리를 모아 우뚝 섰다. 연못 가운데로 뛰어들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자는 잘하는 축인데, 뛰어드는 처음에는 그가 간 곳을 모르다가 한참 지난 뒤에 머리를 솟구쳐서 밖으로 나온다. 이윽고 나왔다가 다시 그렇게 하여 앞에 하는 자와 뒤에 하는 자가 서로 쉬지 않고 한다. 그 가운데 한 중이 물속에서 나왔다숨었다 하는 것이 매우 빨랐다. 바야흐로 연못 위에 서 있는데 큰 벌이 숲에서 나와 그 이마를 쏘니 승려가 땅에 넘어져 울부짖었다. 잠깐 사이에 눈과 눈썹을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즐겁지 않은 상태에서 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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