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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의 제사를 위해 절을 찾다 - 아끼던 노비의 죽음, 슬퍼하는 양반 주인
1616년 12월은 전염병으로 인근이 흉흉하던 때였다. 그런데 12월 5일 세복(世卜)이의 병이 중하다고 그의 자녀들이 김택룡에게 찾아 와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세복이의 약을 구해보려 하였으나 구하지 못해 택룡은 마음이 영 불편하였다. 다음 날, 택룡은 세복이의 병이 더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소합원(蘇合元) 한 알을 애써 구해 보냈다. 그러나 약을 구해 보낸 보람도 없이 세복이 저녁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택룡은 세복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참담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택룡 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매우 상심하고 애통해하였다. 택룡은 슬퍼하며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날이 밝자 김기룡이 와서 세복의 사망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택룡은 의욕이 없고 만사가 귀찮은 나머지 김기룡을 직접 만나지 않고 생질 정득이를 시켜 대신 만나게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심선달·황유문·심학해·심룡해·심만해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 노비를 잃은 것에 대해 위로하였다. 택룡은 동네의 아랫사람들에게 세복이의 죽음을 알리며 그를 매장하라고 지시하였다. 다음 날 8일에 택룡은 덕현(德峴)의 세복이 집에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고 그를 매장하는 일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관판[棺板 : 관을 만들 때 쓰는 넓고 긴 널빤지]을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였더니, 이미 그 곳에서 구입하였다고 회답이 왔다. 동네 하인배들이 세복이 묏자리를 정했다고 알려왔다.
다음 날 운산(雲山) 아래 세복이를 장사지냈다. 이틀 뒤 11일에 택룡은 어음사(漁陰寺)에 갔는데 세복의 초재(初齋)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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