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가마 위에 오른 선비와 가마 멘 승려들, 험준한 산길을 가다
1618년 5월 11일 무술 아침엔 맑고 저녁엔 흐림. 남도 일대를 유람 중이던 양경우는 느즈막히 일어나 정돈한 다음에 늙은 승려 8, 9명과 함께 절 뒤의 험준한 절벽을 개미처럼 부여잡고 올랐다. 여러 승려들이 견여를 가지고 뒤따랐다. 양경우가,
“나는 젊어서부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튼튼한 몸을 갖추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 비록 늙었으나 어찌 너희들에게 수고를 끼치겠는가? 그것을 두고 와라.”
라고 하였다. 몇 리를 가니 자못 힘이 들어 젊은이로 하여금 등 뒤에서 밀게 하였다. 오래지나 더욱 힘이 들자 돌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그 이름은 잊어버린 한 늙은 승려가 있었는데, 자못 문자를 알아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만하였다. 그가 뒤에 있었는데 양경우가 불러오게 하여,
“심하구나. 내가 많이 늙었구나. 사람으로 하여금 밀게 하여야 갈 수 있으니 이것은 비록 가마는 면하였으나 오히려 기대는 바가 있으니 어찌 이렇게 하면서 튼튼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고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이곳부터 여러 승려들이 양경우를 가마에 태워 올라갔다. 점점 멀리가자 길은 더욱 험난해지고 승려들은 더욱 힘들어 하였다. 굽어보니 가마를 멘 승려들이 마치 소처럼 헐떡거리며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늙은 승려가 뒤에 따르면서 피곤한 이들은 재촉하면서,
“앞길이 멀지 않았다. 게으르지 마라, 게으르지 마라. 전년에 하동 군수가 산처럼 뚱뚱했어도 너희들이 능히 감당하였는데 이번 행차에 어찌 수고스럽다고 하느냐?”
라고 하자, 가마를 멘 자가 답하여,
“하필이면 하동군수를 이야기하십니까? 근래에 토포 영감은 복이 다하였을 것입니다.”
라 하니 양경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막고 조용히 웃었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