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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을 문안케 하다
1592년 12월 29일, 왕세자 광해군은 임진년 마지막 날 평안남도 용강(龍岡)에서 평안북도 영변(寧邊)으로 왔다. 왕세자가 오늘 길에는 이미 명나라 군대가 주둔해 있었다. 왕세자는 오는 길에 명나라 군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지금 현재 왕세자가 비록 모든 군무(軍務)를 임시로 맡고 있지만, 아직 명나라로부터 왕세자의 품봉(稟封)을 받지 못하여 명나라 장수와의 접견이 관례상 어색하고도 예에 합당하지 않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1593년 1월 3일 평안남도 안주(安州)에 왔다. 일국의 왕세자이자 군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조선을 돕기 위해서 온 제독 이여송을 맞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세자는 할 수 없이 좌찬성 정탁(鄭琢)에게 제독 이여송을 문안하라고 하였다. 이날 정탁은 왕세자의 명을 받고 안주로 곧장 출발하였다. 이 길에는 정탁의 아들 정윤목(鄭允穆)이 함께 하였다. 그리고 이날 한밤중에 안주에 도착하였다.
1월 4일 아침 정탁은 역관 진효남(秦孝男)을 통해 이여송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제독께서는 명나라 조정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위하여 적을 토벌하러 오시니 우리 신하들과 백성들이 감읍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왕세자께서는 군사의 일을 임시로 총괄하시며 여기에서 60리 정도 떨어진 영변에 와 머무르시고 계십니다. 지금 제독께서 우리 경내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간절히 제독이 오시는 길가에서 영접을 하려 하셨지만, 지금은 명나라 황제로부터 아직 조선의 세자로서 품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의 사정이 합당하지 않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소신(小臣)을 보내시어 문안을 드립니다.”
그러자 제독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중신(重臣)을 보내시어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정탁은 이날 유성룡(柳成龍)과 이여송이 평양 탈환 작전을 계획하는 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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