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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일기(1월) - “겨울나기”

한국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센터

춥고 긴 겨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경험하는 겨울이지만, 겨울은 언제나 낯설고 적응하기 힘든 계절입니다. 조선 시대의 겨울은 지금보다도 더 혹독했을 텐데요, 추운 겨울 선인들은 어떻게 겨울을 보냈을까요? 선인의 일기장에 남겨진 겨울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김령의 <계암일록>에는 힘겨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부터 매화를 감상하며 겨울을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까지 조선의 다양한 겨울나기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1623년, 혹독한 겨울 ”

첫 번째 일기는 김령의 <계암일록>으로 1623년 1월 23일의 기록입니다. 혹독한 겨울나기를 하는 백성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새삼 겨울이라는 계절의 무정함을 일기에 남겼습니다.

1623년 새해 첫 날, 경상북도 예안에 살던 김령은 유래 없는 추위에 깜짝 놀랐습니다. 방안에서도 온몸이 파르르 떨릴 만큼 매서운 추위였습니다. 김령은 화창하고 맑은 하늘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한파는 그 날 이후 더 심해졌고, 눈과 비가 그치질 않고 내리더니 급기야 1월 23일에는 산과 시내를 비롯해 마을 전체를 새하얗게 뒤덮었습니다. 김령은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폭설로 온갖 물건이 다 귀해졌고, 각종 해산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말린 미역까지도 먹기 어려워졌습니다. 김령은 새삼 겨울이라는 계절의 무정함을 느끼며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바닥나서 모든 것이 다 군색한데, 산과 바다에서 나는 물건들조차 이즈음에는 왜 나지 않는 것인가?”라고 한탄하며 봄이 어서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1900년대 초 조선의 겨울 풍경 <1900년대 초 조선의 겨울 풍경도>

관련스토리 서찬규 <임재일기>, 1845-03-26 ~ 1859-01-01 닭이 울 때까지 베껴쓰고, 추위와 더위에도 베껴쓴다. - 조선 선비들의 독서법

“ 해진 신발을 시린 손에 끼고 일하는 어린 일꾼 ”

두 번째는 1862년 9월 13일부터 10월 9일까지 27일간의 단산서원 수리 과정을 담은 이능연의 <단산서원 수리 일기>입니다. 이능연은 서원의 수리를 실질적으로 주관하면서 매일의 상황을 기록하던 중 어린 일꾼이 추위에 떨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가련하고 애처로워합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습니다. 이능연은 입동 전에 서원 수리를 마무리하고자 공사를 서둘러 진행했습니다. 큰 공사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낡은 기와를 새 기와로 교체만 하면 단산서원은 20년 만에 새 단장을 하게 됩니다. 1862년 10월 3일 이능연은 일꾼 17명을 데리고 단산서원의 기와 교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르고 매서워진 바람 탓에 일꾼들은 일에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능연은 서원 수리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팔짱을 끼고 서서 감독하는 것조차 참기 어려운 추위에 일꾼들을 차마 재촉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중단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꾼들을 바라보던 중 나이 어린 일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 해진 짚신을 손에 끼우고 물기에 젖어 얼음장 같은 진흙을 나르고 있는 어린 일꾼. 진흙 덩이를 나르는 손이 시려서 신었던 신발을 장갑 삼아 손에 끼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궐(蟨)처럼 보였습니다. 머리와 앞발은 쥐와 같고 꼬리와 뒷발은 토끼 같은 형상을 한 전설상의 동물. 궐은 앞 뒤 발의 길이가 다르고 짧아 잘 걷지 못해 혼자는 위험을 벗어나지 못하는 슬픈 짐승입니다. 이능연은 어린 일꾼이 가녀리고 짧은 손에 짚신을 끼우고 있는 모습이 엉뚱해 보이기도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 추위를 견뎌야만 하는 가련한 처지가 애처로웠습니다.

공공거허(蛩蛩距虛)에 업힌 궐(蟨)의 모습 <공공거허(蛩蛩距虛)에 업힌 궐(蟨)의 모습>

궐(蟨) : 전설상에 나오는 짐승으로 머리와 앞발은 쥐와 같고, 꼬리와 뒷발은 토끼와 같다. 궐은 앞뒤 발이 짧고 그 길이도 달라 잘 달리지 못하는 짐승이다. 다행히 쥐와 같이 예민함으로 감초(甘草)를 잘 찾아 궐은 잘 달리는 짐승 공공거허(蛩蛩距虛)에게 쉬지 않고 감초를 찾아 주고, 위급한 상황에 공공거허의 등에 업혀 위기를 탈출한다고 전해진다.

단산서원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었던 서원. 1608년(선조 41) 도내 유림의 공의로 우탁(禹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31년(인조 9) 이색(李穡)을 모셨으며, 1667년(현종 8) 봉황산(鳳凰山) 근처의 가사리(현재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로 이건하고, 이곡(李穀)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관련스토리 이능연 <단산서원 수리 일기(丹山書院修理日記)>, 1862-10-03 추운 겨울의 서원 보수 공사, 헤진 신발을 시린 손에 끼고 진흙을 나르는 일꾼

“ 한겨울 마을을 위협하는 역병(疫病) ”

세 번째 일기는 김령의 <계암일록>에 기록된 내용으로 1621년 1월 4일부터 2월 12일까지 도선서원 일대의 마을에 창궐한 돌림병으로 불안한 심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1621년 1월 4일 맑은 겨울날이었습니다. 김령은 도산서원에 큰 행사가 얼마 남지 않아 밤이 깊어졌지만 서원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와 있었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서원 아랫마을에서 며칠 전부터 돌림병 조짐이 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에 앓아눕는 사람들이 이어졌습니다. 돌림병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임진왜란 이후 나타난 새로운 역병 당독역(唐毒疫)이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한반도에는 새로운 역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는데, 증상은 홍역과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독하고 전염의 속도가 빨라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당독역을 앓게 되면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며 오한이나 벌벌 떨리고, 고열이 나며 온몸이 붉게 부어올라 심하게 아프고 부스럼이 번지다가 병이 깊어지면 숨쉬기조차 어려워지는 고약한 병이었습니다. 더욱이 마땅한 치료법조차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보리씨를 나누어주는 일도 향사도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1621년 1월과 2월 마을은 음산하고 적막한 겨울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독역(唐毒疫) : 당(唐)은 중국 또는 오랑캐를 뜻했으며, 독(毒)은 독하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당독역이란 중국이나 오랑캐 쪽에서 건너온 지독한 역병이라는 뜻

관련스토리 김령 <계암일록>, 1621-01-04 ~ 1621-02-12 한겨울 서원마을을 위협하는 병마의 입김

“ 겨울, 선비의 매화 사랑 ”

네 번째는 김령의 <계암일록> 중 1622년 1월 1일과 1월 3일 기록된 일기입니다. 선비들이 분매(盆梅)를 자랑하거나 감상하며 겨울을 보내는 선비들의 겨울나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1622년 정월 초하루가 밝았습니다. 김령은 이른 아침부터 가묘에 예를 올리고, 집안 어른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해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을 어귀에서 조카 이지(以志)를 만났습니다. 이지는 김령을 보자 지난해 겨울부터 정성스럽게 가꾼 분매(盆梅)를 보고 가라며 성화였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마신 세주(歲酒)로 취하여 매화 감상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김령은 이지가 키운 매화의 향과 그 자태가 궁금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매화를 보러 가려 마음먹었지만, 정월 초였으므로 친지들의 인사와 오감이 계속되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월 3일이 되어서야 분매를 감상하기 위해 이지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지는 김령에게 자신이 키운 두 그루의 매화가 지난 동짓날부터 꽃을 피웠다며 자랑을 했습니다. 옥색이 교교하여 참으로 사랑스러운 분매에 김령도 감탄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의 강인함과 은일함을 느끼며 한참을 매화에 취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상매(賞梅)
화분에 물을 주니 모래위에 매화가 피고
문을 여니 가지위에 달빛이 비끼었네
햇볕을 훔치는 솜씨가 뛰어나고
은칠에 응하지 않고 홀로 이름을 알았네
한매(寒梅)를 얻어 방안에 두었더니
꽃 피는 세밑에 봄 바람이 부네
이웃 노인도 또한 이 향기를 알고는
눈을 밟고 찾아와서 한없이 생각하네
- 김부륜, 설월당선생문집, 명일상매차주인형운(明日賞梅次主人兄韻) -상매(賞梅) : 이 시는 김령의 아버지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이 쓴 시이다. 원 제목은 명일상매차주인형운(明日賞梅次主人兄韻)으로 형 김부의(金富儀)의 분매와 분매시를 보고 차운한 것이다.

이유신,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 30.2×35.5cm, 개인소장 이유신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 30.2×35.5cm 개인소장

조희룡,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106.1×45.1cm, 간송미술관 소장 조희룡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106.1×45.1cm, 간송미술관 소장

관련스토리 김령 <계암일록>, 1622-01-01 사당 참배에서 매화 감상까지 - 1622년 정월 초하루, 선비 김령의 바쁜 일정 김령 <계암일록>, 1622-01-03 1622년의 정월 풍경 - 내수사 위차의 불호령과 꽃을 피운 겨울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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