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보소. 인궤(印櫃) 잃고, 과줄 들고, 병부(兵符)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나니 북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생쥐 눈 뜨듯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어사출두에 놀란 관속과 수령들이 허둥대며 도망하는 모습을 박진감 넘치는 자진모리장단에 얹어 희화화한 『춘향가(春香歌)』의 「어사출두」 대목이다. 탐관오리(貪官汚吏) 변 사또 생일 잔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어사 이몽룡의 등장은 우리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변 사또의 수청(守廳)을 거역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 춘향에게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라는 어사의 한 마디는 ‘수청 강요’의 부당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제 이몽룡이 춘향을 향해 ‘어서 얼굴을 들어 나를 보라’ 이 한마디만 하면 모든 오해가 풀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출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이 이야기의 시작, 그러니까 이팔청춘 이몽룡이 오작교 다리 가의 광한루에 올라, 춘흥을 못 이기고 그네를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한 때가 딱 지금 같은 춘삼월이었다. 사랑에 빠지기 좋은 봄, 꽃놀이하러 가기 딱 좋은 오늘은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청렴(淸廉)이란
목자의 본무요, 갖가지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자가 될 수는 절대로 없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육조(律己六條)」의 ‘청심(淸心)’에서 목민관(牧民官)이 위민(爲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렴’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렴하고 올곧은 선비의 전형이자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모델인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 그의 사랑채 대청에 걸린 전백당(傳白堂)을 바라보며, 청렴과 청백리(淸白吏)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1647년 11월 8일, 암행어사가 된 성이성은 인조가 하사한 마패[馬牌: 관리나 암행어사 등이 공무로 지방을 갈 때 역마를 징발하는 증표로 쓰던 패]와 유척[鍮尺: 놋쇠로 만든 표준자. 지방 수령이나 암행어사 등이 검시(檢屍)할 때 쓰는 자]을 지니고 남관왕묘에 가서 봉서[封書, 겉봉을 봉한 편지. 암행어사로 임명된 자는 지정된 대문 밖에 나가 봉서를 열어보고 임무를 확인한 뒤 목적지로 향한다.]를 열어보고 하루에 100리 길을 달려 남원에 도착했다.
마패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여기서부터 성이성은 변복(變服)을 했다. 편자만 남은 헌 망건에 다 떨어져 깃만 남은 도포를 입고 뒤축 없는 허름한 버선에 살만 남은 헌 부채를 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걸인이었다.
민심을 살피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루는 성이성이 길가의 집에서 잠을 청하는데 주인이 화를 내며 뺨을 때렸다. 또 어떤 날은 밤에 불이 없어 멍석을 깔고 앉았는데 떠돌이 행상 네 명과 같이 자야 했다. 암행어사는 잠자리뿐 아니라 꼬박꼬박 끼니를 챙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떠돌이 행상의 도움으로 겨우 허기를 면했다.
성이성이 호남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 호남 열두 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열고 있었다. 걸인 행색을 한 그가 잔칫상을 바라보며 음식을 청하니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樽中美酒千人血 준중미주는 천인혈이요
술독 안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
盤上佳肴萬姓膏 반상가효는 만성고라
상 위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낙시에 민루락이요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이 높았더라
성이성은 한 장의 종이를 청해 곧 시를 써 주었다. 수령들이 시를 보고 의아해할 때, 서리가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쳤다. 여러 관원이 일시에 모두 흩어졌는데, 이때 봉고파직(封庫罷職) 된 자가 여섯이나 되었다.
마패를 보여주는 암행어사 (출처 : KBS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2020)
이 시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지은 ‘금준미주(金樽美酒)’로 시작하는 시와 몇 글자를 제외하고는 같다. 성이성의 4대손 교와(僑窩) 성섭(成涉, 1718∼1788)은 『교와문고(僑窩文稿)』에 성이성의 암행어사 행적에 대해 기록했다. 이야기 속 이몽룡과 비슷한 성이성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 1561~1629)는 성이성이 태어나기 4년 전인 1591년(선조 24) 식년 문과에 급제,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로서 창녕에서 의병을 모집해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 휘하에서 활약했다.
성안의 영정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유재란(丁酉再亂)이 한창이던 1598년(선조 31), 영남조도사(嶺南調度使)로 안동에 온 성안의는 『부용당일고(芙蓉堂逸稿)』의 「임진왜란시장계(壬辰倭亂時狀啓)」에 명나라 군사들의 군량 충당에 관한 것과 명나라 군사들의 횡포에 관한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그의 빈틈없는 공무 수행을 지켜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제세(濟世)의 재간이 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1607년(선조 40) 2월, 남원 부사(南原府使)가 된 성안의는 아들 성이성을 데리고 남원으로 향했다. 성안의 이전에 부임한 남원 부사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이직하거나 파직되어 쫓겨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달리 성안의는 남원 부사로 있었던 4년여 동안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부사 성안의 선정비’를 세웠는데 남원 광한루(廣寒樓)에 남아있다.
열세 살의 성이성은 남원 부사로서 선정을 베푼 아버지를 보며 목민관의 기본 덕목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그는 1627년(인조 5) 식년 문과의 병과로 급제, 1635년(인조 13)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부교리(副校理)를 거쳐 이듬해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1637년(인조 15),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이 된 성이성은 윤방(尹昉)·김류(金瑬)·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의 대신들이 나라를 망치고 불충(不忠)을 저지른다는 소(疏)를 올렸다. 그는 서슴지 않고 직언(直言)하는 사람이었다. 임금 앞에 나아가 “아! 직언하는 선비는 물러나고 아첨하는 사람은 진출하여 충심으로 간하는 길이 막히고 영합하는 것이 풍속이 된다면 전하의 욕망은 이룰 수 있지만, 전하의 나라는 끝내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하며 자신의 충간(忠諫)을 밝혔다. 직언하는 사람은 외롭다. 바른 소리는 부담스럽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주위의 시기를 받았고,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1645년(인조 23) 3월 18일 성이성은 사은 겸 진하사(謝恩兼進賀使)의 서장관[書狀官: 외국에 보내는 사신 중, 사행을 기록하고 외교 문서의 작성을 맡는 임시 직책]이 되어 인평대군(麟坪大君)을 모시고 연경(燕京)에 다녀오면서 『계서선생일고』의 「연행일기(燕行日記)」을 남겼다.
한창 사행 중이었던 5월 24일, 성이성은 군관·역관들과 함께 흑단령(黑團領)과 흑사모(黑紗帽)를 입고 청에 방물(方物)과 예물의 품목을 적은 단자를 올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용골타(龍骨打)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들은 세자의 죽음에 사신 일행은 통곡했다. 병자호란 이후에 떠난 굴욕적인 사행길, 그곳에서 돌아온 성이성의 짐보따리는 단출했다. 침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청심(淸心)은 사신일 때도 빛났다.
성이성은 세 번의 암행어사와 한 번의 진휼어사(賑恤御史)에 임명되어 지방 수령의 잘잘못과 백성의 고통, 어려움을 탐문하고 임금에게 보고하는 직무를 수행했다. 특히 피폐한 민중의 삶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극에 달했고, 임금은 지방 수령의 무능과 비리를 적발하기 위해 빈번히 암행어사를 파견했다. 1655년(효종 6), 진주 목사(晉州牧使)를 한 그 역시 암행어사의 감찰(監察) 대상이었다. 어사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은 조정에 돌아가 그가 목사로서 청렴하고 선정을 베푼다고 보고했다. 이에 임금은 성이성에게 표리[表裏: 옷의 겉감과 안감]를 하사하였다.
「江界淸白仁政銘(강계청백인정명)」
斯文我侯 天性剛明 사문에 우리 수령께서, 천성이 강직하고 밝았네
志存清儉 自奉儉約 청렴에 뜻을 두셨으니, 스스로 검소하셨다네
政平訟理 闔境蘇殘 정사 공평하고 송사 이치에 맞아, 온 고을 어려운 이 살렸네
省刑薄斂 吏民俱安 형벌 줄고 세금 가벼워져, 관리와 백성 모두 편안하네
政平訟理 闔境蘇殘 한 해 다스렸건만, 영원토록 잊을 수 없구나
성이성은 담양 부사, 강계 부사 등 다섯 고을을 다스렸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청백인정비가 4곳에 세워졌다. 위의 「강계청백인정명」은 1660년(현종 1), 그가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있을 때 백성들의 삼세[蔘稅: 산삼, 옹삼, 인삼에 부과한 세금]를 면제하고, 권문세가의 부정한 삼 거래를 막아 백성을 이롭게 한 일에 대한 것이다. 강계 사람들은 그를 ‘관서의 살아있는 부처[關西活佛]라고 칭송했다.
“신하 된 자로서 지켜야 할 도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충직으로 임금을 섬기고, 둘째, 자혜로움으로 백성을 대하고, 셋째, 벼슬에는 청백해야 한다. 성이성이 평생 동안 살아오면서 이 세 가지에 능했고, 명예와 지위를 취하는 데는 능하지 못했다.”
이는 성이성의 행장(行狀)이다. 성이성은 1695년(숙종 21) 청백리로 선출되었다. 공직 정신의 표상인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조선시대의 관리는 200명이 조금 넘는다. 청렴결백한 공직 생활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청렴 교육을 한다. 얼마 전,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에 관한 온라인 교육을 했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흘러들었다. 나는 내가 청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패(腐敗)하지도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포근한 햇살과는 달리 새초롬한 봄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3월,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를 찾았다. 그곳에는 성안의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춘우재(春雨齋)와 성이성이 살던 계서당(溪西堂) 종택이 있다. 후손들은 ‘봄비가 만물을 고요히 소생시킨다는 의미’의 춘우재에서 후손들을 가르치며 성이성의 청백리 정신을 이어갔다.
춘우재와 춘우재 편액
성안의가 살았던 계서당은 허름한 초가였다. 그러던 것이 그의 장남 성갑하가 충재(沖齋) 권벌(權橃, 1478~1548)의 후손인 권석충(權碩忠)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처가의 도움을 받아 지금 모습의 종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계서당 측면 대청에 ‘전백당’이 걸려 있다. 성이성의 5세손 전백당(傳白堂) 성언극(成彦極)의 당호이기도 한 전백당은 ‘성이성의 청백(淸白) 정신을 본받고 실천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계서당과 계서당 편액
전백당 편액
무심한 봄바람에 계서당 처마 밑의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어쩌면 청렴과 부패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탐욕의 유혹이 끊임없이 불어와 공직자를 흔든다. 흔들릴 수 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을 경계하며 이성의 눈을 감지 않는다면 맑은 소리가 온 산천에 울려 퍼질 것이다.
계서당 풍경
성이성이 청백리가 된 것은 오로지 그 혼자만이 청렴했기 때문일까? 그의 가족이 부정 청탁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전백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율기육조」의 ‘제가(齊家)’ 편에서 “한 지방을 다스리려는 이는 먼저 제 집안을 잘 단속해야 한다.”라고 했다. 드라마 《안나(ANNA)》의 주인공 이유미는 부정 청탁을 받게 된다. 서울시장 후배인 남편의 시장 당선이 유력해지자 국회의원 사모들이 그녀를 찾아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말하고 돈을 넣은 가방을 선물한다. 청탁을 처음 받았을 때 잠시 고민하던 주인공은 횟수가 반복되자 쉽게 뇌물을 받는다. 이 드라마를 보며 성이성이 청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 모두가 청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주인공 이유미가 받은 종이가방 속 돈다발 (출처 :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 2022)
‘내로남불’이란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혹 나는 청렴과 관련하여 ‘내로남불’하고 있지는 않나 되짚어 본다. 청렴에 대한 이중잣대가 부정부패를 불러오는 작은 불씨가 아닐까? 사무실의 믹스커피를 마시며 직장인 소확횡,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내가 하고 있지는 않았나 반문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23년도 국가청렴도(CPI ·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한국이 180국 가운데 3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도보다 순위는 한 계단 하락했으나, 점수는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역대 최고 점수를 유지했다. 70점을 넘어야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로 평가하는데 우리가 받은 63점은 ‘절대적인 부패에서 벗어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개개인의 청렴한 생활과 더불어 국민을 위해 일할 청렴한 공직자를 잘 뽑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가까운 선거구로 투표하러 가는 길, 라디오에서 하이포(HIGH4)와 아이유(IU)의 《봄 사랑 벚꽃 말고》가 흘러나온다. “꽃잎이 피어나 눈 앞에 살랑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 버릴 봄 사랑 벚꽃 말고, 투표하러 가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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