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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전해진 부부의 지혜,
〈노부탄〉과 〈답부사〉로 들여다 본 조선시대 부부의 삶

늙은 아내의 탄식에 남편이 답하다



우리ᄂᆞᆫ 이럴만졍우리는 이럴망정
結髮夫婦 아니론가처녀와 총각으로 만나 초혼한 부부가 아니던가
궂즌 일 됴ᄒᆞᆫ 일을궂은 일 좋은 일을
마조 안자 지나 잇고마주 앉아 지내왔고
今年의 님재 回甲올해에는 당신의 회갑
明年이 내 나ᄃᆞᆫ ᄒᆡ내년이면 내가 났던 해
이 일도 쉽지 아녀……이 일도 쉽지가 않아 ……
婦人도 내 말 듯고부인도 내 말을 듣고
싱그시 웃노매라싱긋이 웃는구나
어우와 浮世人生이니어우와 덧없는 인생이니
이렁구러 즐기리라이렇게 저렇게 즐기리라

- 〈답부사〉, 현대역: 필자

여기 총각과 처녀로 만나 궂은 일 좋은 일을 함께 하며 한평생을 해로한 한 쌍의 부부가 마주 앉아 있다. 내년에 회갑을 맞는 남편은 올해 회갑을 맞은 아내에게 남은 생도 지금처럼 살아보자는 말을 건네고, 그런 남편의 말에 아내는 싱긋이 웃어 화답한다. 총각과 처녀로 만나 초혼하여 40여 년을 지나 함께 회갑을 맞는 것이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해로연(偕老宴)을 차려 벌일 상상에 젖은 이들 부부의 모습에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행복이 읽힌다.

이들 부부는 가사(歌辭) 작품 〈노부탄(老婦歎)〉과 〈답부사(答婦詞)〉를 지은 김약련(斗庵 金若鍊, 1730~1802)과 그의 아내 순천김씨(1729~1799)이다. 지금의 경북 영주지역에서 활동한 재지사족인 김약련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45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유배생활과 해배, 칩거와 귀향이 잇따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순천김씨와는 그의 나이 19세 되던 해에 혼인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회갑을 맞은 아내가 부부의 삶을 반추하며 ‘늙은 아내의 탄식(노부탄)’이라는 이름의 가사 작품을 지어 남편에게 건네고, 이에 남편이 ‘아내에게 화답하는 글(답부사)’을 지어 돌려주었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은 아내와 남편의 가사 작품은 그가 남긴 문집 『두암제영(斗庵題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혼례도(回婚禮圖)〉(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가사란 두 마디씩 짝을 이루어 길이와 주제에 제한 없이 엮어내는 문학 양식이다. 형식적 요건이 단순하고 짓기가 비교적 쉬워 다양하고 폭넓은 작가층이 창작하고 향유하였다. 가사는 고된 삶의 자족적 위안을 위해 짓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창작하기도 하였다. 마치 편지글처럼 주고받은 가사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렇듯 주고받은 대상이 부부인 경우는 현재까지 이 두 작품이 유일하다.

함께 기거하는 부부가 가사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작품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두 작품이 갖는 가치와 의의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약련은 두 작품을 기록해 남겨두는 까닭을 “적적한 중에 부부가 장난삼아 나눈 말을 적었으니 한 번 웃음거리로 삼고는 자손에게 보이려 한다”고 밝혔다. 부부가 서로의 자리를 지켜내며 찾아내 자손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삶의 지혜, 우리는 2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 그 삶의 지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차이의 존중, 그리고 조율


명망 있던 김약련의 가문은 누대에 걸쳐 가세가 기울어 순천김씨가 시집올 즈음에는 넉넉하게 과거를 준비할 살림살이가 아니었다. 베를 팔고 소를 팔아 아내는 남편의 과거 뒷바라지를 시작하였다.

문방의 넷 벗님ᄂᆡ글방의 옛 벗님네
나를 밋고 부ᄅᆞ시며나를 믿고 부르시며
머리예 갓과 망건머리에 갓과 망건
발 알애 신ᄂᆞᆫ 신을발 아래 신는 신을
둇토록 니어 드려좋도록 이어 드려
ᄯᅳᆺ대로 가ᄋᆞᆸ쇼셔……뜻대로 가옵소서……
뵈ᄑᆞ라 명지 사고베를 팔아 시험에 사용할 종이를 사고
쇼 ᄑᆞ라 ᄌᆞ쟝 ᄒᆞ니소를 팔아 필요한 준비를 하니
아ᄒᆡᆺ젹 유념ᄒᆞᆫ 것아이 적에 유념했던 것은
다 ᄡᅳ러 업시 ᄒᆞ고다 쓸어 없게 하고
혼잣쏜 삿던 뎐답내 힘으로 샀던 전답
앗길 줄 모ᄅᆞ고셔아낄 줄을 모르는구나

- 〈노부탄〉, 현대역: 필자

공부방에 갖출 도구부터, 갓과 망건, 신발에 이르기까지 아내는 베를 팔고 소를 팔고 전답을 팔아가며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의 뒷바라지에 매진한다. 청춘을 다 지난 45세에 드디어 남편은 소과와 대과를 동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모든 영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환로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남편을 향해 아내는 환로 진출의 덧없음을 내세우며, 현실적인 치산에 힘쓸 것을 설득한다.


홍패(紅牌, 조선 시대 과거 합격증)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광히 메고 홈의 쥐여괭이 메고 호미 쥐어
논 ᄆᆡ고 밧츨 갓과논 매고 밭을 가꾸어
녀ᄅᆞᆷ의 슈고ᄒᆞ여여름에 수고하여
ᄀᆞ을의 두ᄃᆞ리니가을에 두드리니
쳐ᄌᆞ관속 ᄇᆡ 불키고가족들의 배를 불리고
환자 구실 걱졍 업ᄂᆡ빌린 돈 갚을 걱정 없네
이 아니 신션인가이것이 신선의 삶이 아니던가
과거ᄒᆞ여 무ᄉᆞᆷ 하리과거시험 쳐서 무엇 하리

- 〈노부탄〉, 현대역: 필자

아내는 농사짓고 사는 일이 바로 신선의 삶과 다를 바 없으며 과거에 급제한 삶보다도 낫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뜻을 존중하여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는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남편이 자신의 뜻에 따라주기를 바라며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경직도(耕織圖)〉(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중세사회에서 남편과 아내가 대등한 관계를 맺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차이를 이해받고 관계를 조율하고 바꾸어갈 힘이 없을 때, 보통 문학 작품에서는 상대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표출한다. 그러나 〈노부탄〉에는 ‘늙은 아내의 탄식’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하게도 자탄과 원망의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남편과의 다름과 차이를 보여주면서 아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남편을 마땅히 따르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의사를 조율하고 부부관계를 새롭게 구성해나가는 방식, 이것이 〈노부탄〉에서 보여준 부부관계에서의 아내의 지혜이다. 그러나 끝내 아내가 남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나도 이말 듯고나도 이 말을 듣고
말ᄒᆞ여 무익ᄒᆞ외말하여 무슨 이익이 있으랴
문 닷고 돌쳐 혜니문을 닫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냐 어이ᄒᆞ리오냐 어찌 하겠느냐
셰샹의 굼고 벗고 글 ᄒᆞ다가세상에 헐벗고 굶주리며 글공부 하면서도
과거도 못 ᄒᆞᆫ 사ᄅᆞᆷ 만ᄒᆞ니라과거 합격 못 한 사람 많으니라

- 〈노부탄〉, 현대역: 필자

〈노부탄〉의 마지막 구절이다. 늙은 남편은 농사에 힘쓰자는 아내의 설득에도 그저 웃기만 하고 이리저리 자리를 피할 생각만 한다. 그러나 설득하지 못했다는 결과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아내 또한 남편의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권력적 상하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 설득하고, 또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율하여 부부관계를 얽어 이루어가는 것, 부부에게 그 과정은 자손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삶의 지혜였다.

사실 아내의 탄식(노부탄)에 남편이 글(답부사)로써 화답하였으니, 남편이 마냥 등 돌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를 대하는 이들 부부의 자세는 꼭 닮았다. 〈답부사〉가 모두 97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30구가 아내를 설득하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치산에 힘쓰자는 아내의 실리적 요구에 설득 당하지는 않았지만, 또 남편은 남편대로 입신양명의 삶이 그것대로 갖는 가치에 대해 끈질기게 설명한다.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내 생각을 올곧게 표현하고 끝까지 설득하는 의지, 그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면서 다시 만들어가는 부부간의 관계, 우리는 200여 년 전에 지어진 두 부부의 글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지혜를 되새겨 본다.



‘자기’를 지키며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가족이 된다


ᄌᆞ식들 갓 ᄡᅳ이니자식들에게 갓을 씌우니
며ᄂᆞ리 손ᄌᆞ 잇ᄂᆡ며느리 손자를 잇네
다 각각 제 구실을다 각각 제 구실을
가듕ᄇᆡᆨ관 ᄎᆞ리오니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차리니
글 ᄒᆞᆯ 것 글 ᄲᅵ기고글 할 것은 글 시키고
농ᄉᆞᄒᆞ리 농ᄉᆞᄒᆞ며농사할 사람은 농사 지으며
부려들네 ᄒᆞᆯ 일이부녀자들이 할 일이
방뎍딕임 직분이라길쌈이 그 책임이라
물의 가 고기 낫고물에 가서 고기를 낚고
원두의 ᄂᆞ믈 ᄏᆡ야밭에 가서는 나물을 캐어
ᄒᆡᆺ조밥 졍히 지어햇조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우리 둘 드리거든우리 두 사람에게 주면
맛나게 먹고 안자맛나게 먹고 앉아
근심 업시 됴히 잇새근심 없이 좋게 살도록 하자

- 〈답부사〉, 현대역: 필자

김약련은 위의 〈답부사〉의 일부분처럼 가족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였다. 글을 할 사람은 글을 하고 농사를 지을 사람은 농사를 짓고 길쌈할 사람은 길쌈을 할 때, 즉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할 때 그 가족은 근심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에 종속되어 그 관계에 억눌려 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비단 부부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개인이 각자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기’를 유지할 때, 진정한 의미의 가족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생도(平生圖)〉(출처: 국립중앙박물관)


40년을 함께 살며 늙은 부부가 두 작품을 기록하여 후손에게까지 전달하고자 했던 삶의 지혜는 ‘자기’를 잃지 않고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할 때, 부부도 가족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진리이다.




집필자 소개

박지애
경북대학교에서 20세기 이후의 고전시가문학을 연구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고전시가와 구비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여성가사문학과 여성민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 『근대 대중매체와 잡가』, 『작가로 읽는 고전시가』(공저), 「내방가사를 통한 여성의 자기표현과 부부관계의 구성」,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내방가사의 특징과 의미」 등이 있다.
“방석과 병풍을 빌려주시오 - 혼례 용품을 돌아가며 사용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2-01-11 ~ 1617-02-27

1612년 1월 11일, 김택룡이 듣자니 좌수(座首) 권담(權湛)이 자신의 아들 김숙에게 편지를 보내 방석을 얻고자 했다고 한다. 그의 집안에 결혼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택룡은 아들에게 이르길, “권덕성(權德成)의 집에서 직접 가져다 쓰라고 권담에게 전하거라. 권덕성이 예전에 가지고 갔었는데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2월 13일, 박성백(朴成栢)이 김택룡의 집을 방문하였다. 택룡은 아들 김숙을 시켜 음식접대를 하도록 했다. 택룡이 직접 만나지 못했기에 아들에게 전해 들으니, 박성백의 아재인 박흡(朴洽)의 아들이 권응명(權應明)의 사위가 되기 때문에 혼구용품을 빌리러 왔다고 하였다.

1617년 2월 17일, 심인 아재와 남민경(南敏卿)이 김택룡의 집을 방문하였다. 남민경이 24일 사위를 맞이한다고 병풍과 방석을 구하기 위해 함께 온 것이었다. 2월 20일, 남민경이 택룡의 집에 와서 병풍과 방석을 빌려서 갔다.

2월 27일, 이전승이 그믐날에 사위를 맞이하므로 택룡에게 사람을 보내 병풍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택룡이 이전승에게 답장을 보냈다.

“현구고례 - 딸의 혼례식 다음날, 새 사위에게 인사를 받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6-03-28 ~ 1616-03-29

1616년 3월 28일, 김택룡의 둘째 딸이 혼례식을 올린 다음 날이었다. 아침 식사 후에 새 사위 권근오가 현구고례(現舅姑禮)를 행했다. 첨지의 정실(正室)과 소실(小室), 구고(九臯)의 대평 어미, 박진사(朴進士)의 소실(小室)도 함께 뵈었다. 술 한 잔을 나누고 끝냈다.

다음 날 29일, 비가 세차게 내려 사위 권근오가 돌아가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에 권근오가 침실로 들어가 택룡의 소실 신위(神位)에 절했다. 잠시 뒤 생원 권준신이 택룡의 집으로 하인을 보내 아들 권근오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그가 내일 아침 일찍 아들을 보고 나서 대룡산(大龍山)에서 있을 황언주(黃彦柱)의 생신 잔치에 갈 것이라고 했다. 택룡은 사위가 내일 아침 갈 것이라고 하인에게 전하도록 했다.

“김지의 딸은 초례를 치르고, 김기의 아들은 장가를 가고”

김광계, 매원일기,
1608-01-24 ~ 1608-01-25

1608년 1월 24일, 이 날은 잔치가 겹친 날이다. 김지(金址) 재종숙의 딸이 혼례를 치르는 날이고, 몇 년 전 돌아가신 김기(金圻) 재종숙의 아들인 광업(光業) 형이 장가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덕유형은 봉화의 류씨 댁으로 장가를 가는데, 김광계는 김령 재종숙 등 집안 어른들과 함께 송석대까지 가서 전송해주었다. 송석대에서 돌아와서 밥을 먹은 뒤에 이번엔 곧바로 김지 재종숙 댁으로 갔다. 김령 재종숙은 오시쯤에 홀기(笏記)를 썼고, 이율은 찬자(贊者)를 맡았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 덧 저녁이 되어 신랑과 요객이 도착했다.

신랑은 월천 조목 선생과 학봉 김성일선생의 문인인 권익창(權益昌)의 아들 권규(權圭)이다. 요객(繞客)으로는 이의흥(李義興), 류덕기(柳德驥), 권인보(權仁甫)가 왔다. 김지 재종숙네 숙모는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 다음 날에도 동네 친족들을 불러 연일 잔치를 열었다. 김광계도 이틀 내내 가서 친족들과 흥겹게 먹고 마셨다

며칠 후에는 덕유 형이 봉화 처가에서 돌아오면서 술과 안주를 잔뜩 싣고 왔다. 동네 친족들이 또 모여 함께 먹었다.

“초간정(草澗亭) 연못에 하늘로 간 아내를 담다”

권문해, 초간일기,
1582-02-24 ~ 1582-08-24

1582년 7월 15일, 가묘(家廟)에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었다. 그러나 권문해는 지난 6월 21일 아내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상(喪)중이었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고 조문객을 받고 장례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권문해는 가족들이 가묘에서 차례를 지내는 동안 홀로 초간정을 찾았다.

초간정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연못을 보는데, 물고기 중 큰 놈들은 수통(水桶)을 통하여 다 나가고 작은 물고기들만 조금 남아 있었다. 어찌하여 작은 물구멍을 따라 큰 물고기들은 연못을 떠나고 작은 물고기들은 남게 된 것일까?

초간정을 지을 때도 연못 만드는데 많은 공을 많이 들였던 권문해였다. 지난 2월(1582년 2월 24일)에 초간정을 한참 지을 무렵 초간정의 동쪽 바위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연못을 만들게 하고 사람 어깨 높이만큼 물을 채웠다.

그런데 연못이 잘 못 쌓아져 물이 새는 곳이 보이자 2월 25일 다시 사람들을 모아 돌을 넓고 튼튼하게 쌓고 물이 새지 않도록 수통(水桶)을 두었을 만큼 연못을 정성껏 만들었었다. 그런데 권문해의 곁을 떠난 아내처럼 물고기들이 수통을 통해 연못을 떠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권문해는 텅 빈 연못을 못 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외관(外棺)을 만들어야 하고 상여도 준비해야 하는 등 할 일들이 많았기에 연못을 바로 고치지 못하였다. 텅 빈 연못을 보고 난 뒤 한 달이 지나서야 권문해는 연못을 더 넓고 깊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8월 22일 연못을 새로 만들어 물고기를 풀어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연못을 보고 무언가 모자란 듯 사람 50여 명을 얻어 밥을 먹이고 더 깊이 못을 파게 하였다. 그 깊이가 1장(丈)이나 되어 넓고 커다란 연못이 만들어져 큰 물고기도 답답하지 않게 노닐 수 있게 되었다. 해가 짧아져 연못을 다 만들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초간정에 나아가 연못 만들기를 하였고 드디어 작은 배를 띄울 만큼 큰 연못이 탄생했다.

“죽은 아내의 생일에 술을 올리다”

김광계, 매원일기,
1644-12-01 ~ 1644-12-16

1644년 8월 18일, 김광계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김광계는 빈소에서 문상객을 맞이하고, 발인과 하관 절차를 모두 마친 뒤 장례의 마지막 절차인 삼우제(三虞祭)를 지내야 했다. 12월 1일은 재우제(再虞祭)였고, 다음날 삼우제, 그리고 12월 4일에 더 이상 곡을 하지 않겠다고 망자에게 알리는 졸곡제(卒哭祭)를 지냈다. 삼우제가 끝나면 그간 장례를 함께 해 주었던 모든 친지, 지인들이 떠나가기 마련이었다. 김광계는 혼자 남았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12월 16일, 아내의 생일이 되었다. 김광계는 아내를 위해 술, 과일, 떡, 국수 등 아내가 좋아할만한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아내의 궤연에 올렸다. 모든 장례가 끝난 뒤, 아내의 생일을 맞아 다시금 아내의 부재를 떠올리니 더욱 비통하고 애달프기만 하였다. 하지만 이미 졸곡제에서 아내에게 더 이상 곡하지 않겠다고 알렸으니 이제는 망자와 자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더 이상 곡을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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