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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草澗亭) 연못에 하늘로 간 아내를 담다
1582년 7월 15일, 가묘(家廟)에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었다. 그러나 권문해는 지난 6월 21일 아내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상(喪)중이었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고 조문객을 받고 장례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권문해는 가족들이 가묘에서 차례를 지내는 동안 홀로 초간정을 찾았다.
초간정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연못을 보는데, 물고기 중 큰 놈들은 수통(水桶)을 통하여 다 나가고 작은 물고기들만 조금 남아 있었다. 어찌하여 작은 물구멍을 따라 큰 물고기들은 연못을 떠나고 작은 물고기들은 남게 된 것일까?
초간정을 지을 때도 연못 만드는데 많은 공을 많이 들였던 권문해였다. 지난 2월(1582년 2월 24일)에 초간정을 한참 지을 무렵 초간정의 동쪽 바위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연못을 만들게 하고 사람 어깨 높이만큼 물을 채웠다.
그런데 연못이 잘 못 쌓아져 물이 새는 곳이 보이자 2월 25일 다시 사람들을 모아 돌을 넓고 튼튼하게 쌓고 물이 새지 않도록 수통(水桶)을 두었을 만큼 연못을 정성껏 만들었었다. 그런데 권문해의 곁을 떠난 아내처럼 물고기들이 수통을 통해 연못을 떠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권문해는 텅 빈 연못을 못 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외관(外棺)
을 만들어야 하고 상여도 준비해야 하는 등 할 일들이 많았기에 연못을 바로 고치지 못하였다. 텅 빈 연못을 보고 난 뒤 한 달이 지나서야 권문해는 연못을 더 넓고 깊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8월 22일 연못을 새로 만들어 물고기를 풀어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연못을 보고 무언가 모자란 듯 사람 50여 명을 얻어 밥을 먹이고 더 깊이 못을 파게 하였다. 그 깊이가 1
장(丈)
이나 되어 넓고 커다란 연못이 만들어져 큰 물고기도 답답하지 않게 노닐 수 있게 되었다. 해가 짧아져 연못을 다 만들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초간정에 나아가 연못 만들기를 하였고 드디어 작은 배를 띄울 만큼 큰 연못이 탄생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초간일기(草澗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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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문해(權文海)
주제 : 예천, 초간정
시기 : 1582-02-24 ~ 1582-08-24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예천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권문해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5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권문해
◆ 초간정 연못의 조경방식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정사(亭舍)를 짓고 다양한 조경요소를 배치하여 자신의 가치관 및 세계관을 표출하였다. 주요 조경요소는 물(水), 바위(石), 나무와 식물로 이루어진다. 물은 대체로 방지형(方池形)의 연못으로 조성 되었으며, 신선사상과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연못에는 섬이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끼고 있는 정자의 경우에도 별도의 연못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초간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시각적 정취를 위해 나무홈통으로 물이 흐르는 통로인 비구(飛球, 水桶)를 만들어 정원 내에 물을 끌어들이는 인위적 기법은 한국 별서정원의 독특한 특징으로 초간정에 잘 반영되어 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582년 2월 24일 구름이 끼어 흐렸다. 초간정(草澗亭)의 동쪽 가 바위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어 연못을 만들 만하였다. 노복(奴僕)들 수십 명에게 명을 하여 둑을 쌓고 물을 끌어오니 깊이는 어깨가 잠길 만하고, 맑기는 물고기를 기를 만하였다. 신경조(申敬祖)·박공직(朴公直)·권욱재(權勗哉) 제군(諸君)들이 모두 술을 가지고 와서 보았다. 밤에 비가 내렸다. 1582년 2월 25일 흐리다가 빛이 나다가 하였다. 쌓은 연못의 둑이 애초 견실하게 쌓여지지 않아 물이 새는 곳이 많았다. 노복(奴僕) 한석(漢石) 등에게 명하여 다시 돌을 넓게 쌓고 또 수통을 두어 물이 새지 못하게 하였다. 증산(憎山)의 홍역이 이때까지 증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막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1582년 7월 15일 구름이 끼어 흐렸다. 가묘(家廟)에서 차례를 지냈다. 나는 복(服)을 입고 있는 중이라 참여하지 않고 정원(靜元)이 홀로 지냈다. 내가 저녁때 초간정(草澗亭)에 가보니, 연못의 물고기 중 큰놈들은 수통(水桶)을 통하여 다 나가고 작은놈들만 조금 남아 있었다. 1582년 8월 22일 맑음. 저녁에 구름이 끼어 흐렸다. 초간(草澗)에 가서 소일하였다. 정자(正字) 이자수[李子修, 이희(李熹)]가 뒤이어 와서 해가 기울도록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1582년 8월 23일 맑음. 초간정(草澗亭) 아래에 전날 이미 못을 파서 물을 채우고 물고기를 풀어 놓았는데, 길이와 폭이 좁은 듯하여 또 사람 50여 명을 얻어 밥을 먹이고 다시 파게 하였다. 깊이는 1장(丈)이나 되었고 폭은 작은 배를 띄울 만하였다. 해가 짧아 일을 마치지는 못하였다. 1582년 8월 24일 맑음. 회(灰)를 태우는 일을 맡겼다. 지나는 길에 신경조(申敬祖)와 변중진(邊仲鎭)을 찾아보았다. 이어서 초간정(草澗亭)으로 가서 소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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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가는 길
초간정 입구
초간정 사주문
초간정 안내판
초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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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서까래
초간정 서까래와 보
초간정 내부
초간정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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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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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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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석조헌 현판
초간정에서 바라본 마당과...
초간정이 새겨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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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 전경
초간정 전경
초간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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