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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영남일보 '문화산책'-첩에게 바친 삼년상

파일다운로드아이콘[ 첨부파일 1 ] yeongnam_column_20140722.pdf (486.46484375 KB)

글쓴이 : 관리자 [ 2018-06-26 ]


[신문] 영남일보 문화칼럼 '문화산책'

2014년 7월부터 8월까지 주 1회 영남일보 '문화산책'에 스토리테마파크의 이야기 소재를 활용한 칼럼이 연재되었습니다.


[문화산책] 첩에게 바친 삼년상

398년 전인 1616년 이맘때, 안동 예안현에 살았던 김택룡은 둘째 첩의 삼년상 제사준비로 분주하다. 도산서원 원장을 지낼 정도로 지역의 명망있는 선비 김택룡이 본부인도 아닌, 둘째 첩의 삼년상 제사를 마련하느라 바쁜 것이다. 그런데 이 제사는 김택룡과 첩의 자식들에게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집안 전체의 제사로 준비된다. 멀리서 사위 권오근은 제사에 쓸 쌀과 채소를 보내왔고, 제삿날에는 평소 김택룡과 잘 알고 지내던 진사 박회무·이서·홍붕 등이 함께 제사에 참여할 정도였다. 비록 첩이었지만, 그들은 집안 전체의 일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던 것이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신분제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신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나 행동 양식의 범주가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신분에 따른 행동의 제약이 규범의 형식으로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것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로 세습된다. 비록 양반을 지아비로 섬겼다고 해도, 첩은 여전히 천한 신분이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양반의 전유물인 삼년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첩의 죽음에 대해서는 굳이 삼년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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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테마파크 참고스토리
- 김택룡(金澤龍),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1616-06-27 ~ 1616-07-01, 두 번째 첩의 삼년상 제사를 지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