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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을 만나 서로 고생한 이야기를 하며 위로하다
1616년 5월 7일, 전염병을 피해 가족들을 천남(川南)으로 피신시켜 놓고 김광계는 며칠 전 능동재사에 와서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아픈 막내아우 이직(以直)이 설사 증세까지 생겼다고 해서 몹시 걱정을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로 가 보았다. 그러나 마을은 전염병 기운이 여전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노산(蘆山) 재종조부 집에 가서 약재를 얻어 들여보내기만 한 후 답답한 마음에 그길로 설월당(雪月堂)으로 향했다. 김령 재종숙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재종숙 김령은 지난 1월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만난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전염병 때문에 가족들을 챙기느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설월당에 도착해보니 덕여(德輿) 형 형제와 김참(金墋) 아재, 이일도(李逸道), 임지경(任之敬), 이의적(李義迪) 등 여러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수재 전치(全偫)도 있었다.

김광계는 김참과 함께 김령의 집에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령도 몸이 아파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승정원의 관직이 내려 서울로 올라가야 할 때도 몸이 아파 수차례 거절했으나 받아들여지질 않아서 억지로 올라간 것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몸이 계속 안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몸이 아픈 상태에서 지난번에 서울에서 만났을 때도 갑자기 평양으로 다녀오라는 명이 내려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하고 길을 나서는 걸 배웅해 주고 내려왔기 때문에 김광계와 김참은 김령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생이 컸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평양을 다녀온 후 김령은 거듭 사직을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지난 3월 22일에 휴가를 내려주어 감격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이곳저곳 친인척들을 만나며 쉬엄쉬엄 내려온 게 지난 달 13일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도 김광계는 식구들을 이끌고 천남과 침락정으로 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김령은 병세가 계속 좋지 않아 다시 휴가를 청했지만 그보다 먼저 보낸 소명을 받아 4월 25일 다시 서울로 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병을 무릅쓰고 길을 나선지 삼사일 만에 증세가 긴박해져 더 이상 길을 가지 못하고 풍기에서 병을 알리는 글을 올린 후에 며칠을 머물다가 돌아온 게 지난 3일이었다고 하니 김령의 고생도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김광계도 할머니와 식구들 그리고 아픈 광악을 데리고 전염병을 피해 이리저리 피신하던 이야기를 하였다. 서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고 위로하다 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 되어 머물러 잤다.

다음날 비가 계속 내려서 기다렸다가 천으로 가려고 했으나 노산(蘆山) 재종조부 부자가 자꾸 오라고 하여 노산 재종조부 집에 가서 잤는데 그 다음날엔 김평 재종숙이 또 사람을 보내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하여 김평의 집으로 갔다. 김평 재종숙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여러 재종수들이 와서 다 같이 제천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저물녘에 비를 맞으며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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