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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은 소나기 내릴 때 폭포를 봐야 제대로다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 내릴 때 폭포를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 오면, 사람들은 기꺼이 말을 적시면서까지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비가 갠 뒤에야 성문을 나서면 산수간에 물이 줄어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안의 사대부로서 이 정자의 좋은 경치를 제대로 즐긴 사람이 드문 것이다.
신해년(1791년) 어느 여름날 정약용과 한혜보(韓徯甫) 등 여러 사람들이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는데, 술기운이 이미 돌고 있을 무렵, 날씨가 뜨겁고 습해지더니 먹구름이 돌연 사방에서 일어나고, 공중에서 벼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정약용은 술병을 치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기를,
“이는 폭우가 쏟아질 징조인데, 제군들은 어찌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일 기꺼이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벌주 열병을 한 번에 마시게 하겠다.”
라고 하니, 모두들,
“그 말대로 합시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말잡이를 불러서 밖으로 나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는데, 이미 주먹만 한 빗방울이 서너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빠르게 말을 달려 정자 아래에 이르자, 수문 좌우 산골짜기에서는 고래가 물을 뿜듯이 물줄기가 솟구치고 옷소매도 점점이 젖기 시작했다.
정자에 올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난간 앞의 수목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데, 부러질 것 같아서 술기운이 싹 가시는 듯했다.
이때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산에서는 물이 사납게 쏟아져 내려와 숨 쉬는 잠깐 사이에 계곡을 채우더니 그 소리 또한 요란하였다. 모래가 쓸려 내려오고 돌이 구르면서 사나운 물이 솟구치면서 정자의 초석을 때리는데 그 기세나 사납고 소리가 맹렬하기 그지없었다. 정자의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두려워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에 정약용이 말하기를,
“어떠한가?”
라고 하니, 모두들 말하기를,
“이를 말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술과 안주를 내오도록 하고 익살스런 농담들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비가 그치고 구름도 걷히니, 산수도 점차 평온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치니 붉고 푸른빛이 주위에 가득하였다. 서로 베고 누워서 노래를 읊조렸다.
얼마 있다가 심화오(沈華五)가 이 사실을 듣고서 달려와 정자에 이르렀으나, 물은 이미 평온해진 뒤였다. 이에 우리들이 심화오를 맞이하였으나, 다가오지 않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놀려댔다. 더불어 다시 술 한 잔씩을 돌려 마신 후에 돌아왔다. 이때 홍약여(洪約汝), 이휘조(李輝祖), 윤무구(尹无咎)도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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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유세검정기(遊洗劍亭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정약용(丁若鏞)
주제 : 북한산 유산기
시기 : ( 미상 )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정약용, 한혜보, 심화오, 홍약여, 이휘조, 윤무구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5호 웹진 담談 5호

◆ 세검정(洗劍亭)

세검정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고 하며,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유흥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도 하는데 정확하게 지어진 목적은 알 수 없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 때 반정군인 이귀, 김유 등이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한데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평면상 T자형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영조 24년(1748)에 고쳐 지었으나 1941년에 불타 없어져서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세검정으로 그림과는 다르다.

◆ 원문 번역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 내릴 때 폭포를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 오면, 사람들은 기꺼이 말을 적시면서까지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비가 갠 뒤에야 성문을 나서면 산수간에 물이 줄어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안의 사대부로서 이 정자의 좋은 경치를 제대로 즐긴 사람이 드문 것이다. 신해년(1791년) 어느 여름날 나와 한혜보(韓徯甫) 등 여러 사람들이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는데, 술 기운이 이미 돌고 있을 무렵, 날씨가 뜨겁고 습해지더니 먹구름이 돌연 사방에서 일어나고, 공중에서 벼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나는 술병을 치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기를, “이는 폭우가 쏟아질 징조인데, 제군들은 어찌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일 기꺼이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벌주 열 병을 한 번에 마시게 하겠다” 라고 하니, 모두들, “그 말대로 합시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말잡이를 불러서 밖으로 나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는데, 이미 주먹만한 빗방울이 서너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빠르게 말을 달려 정자 아래에 이르자, 수문 좌우 산 골짜기에서는 고래가 물을 뿜듯이 물줄기가 솟구치고 옷소매도 점점이 젖기 시작했다. 정자에 올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난간 앞의 수목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데, 부러질 것 같아서 술기운이 싹 가시는 듯했다· 이때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산에서는 물이 사납게 쏟아져 내려와 숨쉬는 잠깐 사이에 계곡을 채우더니 그 소리 또한 요란하였다. 모래가 쓸려 내려오고 돌이 구르면서 사나운 물이 솟구치면서 정자의 초석을 때리는데 그 기세나 사납고 소리가 맹렬하기 그지없었다. 정자의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두려워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어떠 한가?" 라고 하니, 모두들 말하기를, “이를 말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술과 안주를 내오도록 하고 익살스런 농담들을 주고받았다· 잠시후 비가 그치고 구름도 걷히니, 산수도 점차 평온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치니 붉고 푸른 빛이 주위에 가득하였다. 서로 베고 누워서 노래를 읖조렸다. 얼마 있다가 심화오(沈華五)가 이 사실을 듣고서 달려와 정자에 이르렀으나, 물은 이미 평온해진 뒤였다. 이에 우리들이 시화오를 맞이하였으나, 다가오지 않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놀려댔다. 더불어 다시 술 한 잔씩을 돌려 마신 후에 돌아왔다· 이때 홍약여(洪約汝), 이휘조(李輝祖), 윤무구(尹无咎)도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