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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강에 밝은 달빛이 비치는 밤, 잠결에 들려오는 스승의 깨우침
1601년 11월 11일, 청량산을 유람중이던 김중청 일행은 저녁때 모여앉았다. 이날 밤 온 강에 밝은 달빛이 비치고 빈 집엔 고요가 감도는데 선생님의 깨우치심은 밝고 안온하여 전날 밤보다 훨씬 좋았다. 김중청이 여쭙기를,
“물을 건너실 때 하필 위험한 다리로 건너신 것은 무엇 때문이신지요?”
라고 하니 말씀하시기를,
“평지처럼 디디고 서야 하는데 험하고 평탄한 길이라고 걷는 데 어찌 두 가지 방법이 있겠는가?”
라고 하셨다.
이야기가 한때의 사귐에 미치자 젊은 시절 믿음으로 맺고 의리로 따른 친구로 순거(舜擧)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순거는 바로 지산(芝山) 김팔원으로 불행히도 명이 짧아 지금은 죽고 없다.
선생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학자는 뜻을 크게 세워야 한다. 수붕 등이 요즘 몹시 풀어져서 조금도 애써 노력하는 마음이 없는데 너희들은 모름지기 서로 꾸짖고 격려를 하도록 해라.”
라고 하시기에,
“저희들도 그런 처지에 있어서 남을 꾸짖을 겨를이 있겠습니까마는, 어찌 감히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 김중청이 선생님께 여쭙기를,
“‘생업을 꾀하면 점점 재물을 논하는 마음이 생기고, 명예를 좋아하면 아첨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구절은 언제 지으신 것인지요?”
라고 하니,
“젊어서 지은 것인데 어느 해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네.”
라고 하시자 고산이,
“제가 압니다. 이는 열여덟 살에 지으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 여쭙기를,
“‘순욱론(荀彧論)’을 쓰시자 퇴계 선생께서 감탄하여 마지않으셨다 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라고 하니,
“과연 그런 적이 있었지. 내가 논을 쓴 것이 겨우 예닐곱 편인데 이것이 마지막에 쓴 것이다. 선생님께서 의론한 글이 매우 좋다고 하시고 끝내 고치지 않으셨다.”
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어릴 때 공부하던 순서를 여쭈었더니,
“무자년 여름에 《대학》을 읽었는데 이때는 다섯 살 때로 집에 있을 때였다. 조금 자라서 선생님께 《통감》을 배웠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온계에 계셨는데 내가 자주 집에 가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어찌 번거로운 것도 모르고 그리 자주 왔다 갔다 하느냐고 하셔서 그 뒤로는 감히 자주 가지 못했다.”
라고 하셨다. 또 여쭙기를,
“어려서 독서하실 때 몇 번 읽으시면 외우실 수 있었습니까?”
라고 하니,
“열서너 살 이전에는 열 번 읽으면 외우지 못하는 게 없었는데, 열다섯 살 이후부터는 숙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보통 책들도 거의 모두 백번 넘게 읽었다.”
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자리에 드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산과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잤다. 김중청이 아직 곤하게 자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코 고는 소리가 누구한테서 나는가?”
라고 물으시니 간이 사실대로 말하였다. 김중청이 잠결에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얼른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잠결에도 불러 깨우치게 한다는 것으로 이에 듣지 못했던 것을 더욱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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