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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의 난 (3) - 신립(申砬)의 활약과 승전보
1583년 2월 15일, 함경북도 경원진에서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해결하기 위해 최고의 무관과 장수들이 북방으로 향했다. 도순찰사로 임명된 정언신이 한양을 떠나 경원진을 향해 진격하는데, 경원진의 인근의 온성부사로 있던 신립(申砬)이 호인을 추격하여 흉노족들이 막사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50여 명의 목을 베었다는 승전보가 전해졌다.
경원진에 도착한 정언신은 신립 등 장수들과 함께 오랑캐의 격퇴에 나섰다. 2월 27일 북방으로부터 ‘300여 명의 오랑캐의 목을 베거나 사로잡았으며, 또한 10개의 마을을 불 질러 우리 군이 점점 승세를 떨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신립 등 장수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적지 깊숙이 들어가 불을 질러 전멸시켰다. 회군할 때 적들이 후미에서 갑자기 공격하여 패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으나 용맹한 신립은 오히려 방향을 틀어 적진으로 돌격했다.
신립은 몸을 빼어 말을 달려 적의 머리 40여
급(級)
을 베고 결국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군의 사망자는 25명에 이르렀고,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은 자가 부지기수였을 만큼 치열하였으나 승전하였다.
온성부사였던 신립의 활약에 선조는 신립에게 관직의 품계를 높여주고 교서(敎書)를 지어 하사하였다. 또한 금대와 의복 등을 하여 포상하였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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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초간일기(草澗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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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문해(權文海)
주제 : 한양, 정치, 외교, 번호의 난
시기 : 1583-02-15 ~ 1583-02-09 (윤)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함경북도 경원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권문해, 정언신, 신립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16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권문해
◆ 경원부사 김수를 대신하여 온성 부사 신립이 여진족을 격퇴하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도순찰사로 임명된 정언신은 이순신(李舜臣), 신립(申砬), 김시민(金時敏), 이억기(李億祺) 등 당대의 최고의 무관들과 함께 적을 격퇴하였다. 특히 이들은 훗날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키는 최고의 장수로 활약한다. 이 중 신립(申砬)은 함경북도 온성(穩城)부사로 재직 중이었으며, 전쟁이 나자 바로 출격하여 큰 공을 세운다.
오랑캐(여진족)의 반란이 발생하였을 초기에 경원부사(慶源府使) 김수(金璲)가 여진군에게 패하였다. 이에 오랑캐는 여세를 몰아 경원부 내의 모든 진(鎭)과 보(堡)를 점령하여 약탈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이웃 고을인 온성(穩城)의 부사 신립(申砬)과 첨사(僉使) 신상절(申尙節) 등이 일어나 경원부로 향했으며 오랑캐(여진군)을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두만강 너머로까지 추격하여 그 소굴을 소탕하였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583년 2월 15일 맑음. 도순찰사(都巡察使) 정언신(鄭彦信)이 이날 떠났는데, 전하께서 인견(引見)하시고, 수은갑(水銀甲)·보검(寶劍)·활·화살·의복 등을 하사하셨다. 온성 부사(穩城府使) 신립(申砬)이 호인(胡人)을 추격하여 궁려(穹廬)를 불태우고 50여 급(級)을 참수하였다. 이에 전하께서 등급을 뛰어넘어 가선(嘉善)을 제수하여 가자(加資)하시고 교서(敎書)를 지어 하사하셨다. 또한 금대(金帶)와 의복 등을 하사하여 포장(襃獎)하셨다. 합계(合啓)한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일은 윤허하지 않으셨다. 이경(二更, 21~23시)까지 유문(留門)하고 있다가 나왔다. 1583년 2월 27일 맑음. 사헌부[憲府]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예궐하였다. 집의(執義) 이산보(李山甫), 장령(掌令) 황섬(黃暹) 이하는 나란히 출사하도록 명을 내려 다 본직으로 나아갔다. 합계(合啓)한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일은 세 번이나 계(啓)를 올렸음에도 윤허하지 않으셨다. 북병사(北兵使)의 계본(啓本) 안에 ‘전후로 호인(胡人) 300여 급(級)을 베거나 사로잡았고, 또한 10부락을 불 질러 아군이 점점 승세를 떨치고 있다’고 하였다. 1583년 윤2월 9일 맑음. 양사(兩司)가 합계(合啓)한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일은 세 번이나 계를 올렸음에도 윤허하지 않으셨다. 어제 북병사(北兵使) 김우서(金禹瑞)의 계본(啓本)이 들어왔다. (그 계본에) “신립(申砬) 등을 (적진) 깊숙이 들여보내 부락을 불태우도록 하였습니다. 회군할 때 적호(賊胡)들이 후미에서 후군을 공격하고 막아 오시(午時, 11~13시)에서 신시(申時, 15~17)까지 서로 싸워 거의 패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신립이 몸을 빼어 말을 달려 (적진으로) 돌격해 적의 머리 40여 급을 베었습니다. 아군의 사망자는 25명에 이르렀고,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은 자는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렇게 겨우 군대를 온전히 하여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신임 정언(正言) 정창연(鄭昌衍)이 전에 예조 좌랑(禮曹佐郞)으로 있을 때 색낭청(色郎廳)으로서 정릉(貞陵) 봉식(封植, 봉분을 높이 쌓고 나무를 심는 것)의 일을 잘못 의론했다하여 인혐(引嫌)하고 물러났다가 마침내 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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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으로 유인하여 오랑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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