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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와 사행
> 사행길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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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과 합류하여 길 떠나는 이해응, 벗들의 이별의 말에 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다
1803년 10월 21일, 나(이해응)는 아침에 여행의 물건을 준비하고 복장을 하여
돈의문(敦義門)
으로 해서
영은문(迎恩門)
의
모화관(慕華館)
에 당도하였는데 세 사신은 표문(表文, 중국의 임금에게 보내던 외교 문서)을 받으러 가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곧장
홍제원(弘濟院)
의
점사(店舍)
로 향했다. 넷째 형과 생질(누나의 아들) 남군(南君)은 이미 작별하고 먼저 돌아갔으며, 장인 역시
반형(班荊)
의 정을 나눴다. 잠시 후에 사신 일행이 일제히 당도하여 차례에 따라 길을 떠났다. 이군(李君)이 나를 전송(예를 갖추어 떠나보냄)하러 여기까지 왔으나 역시 끝내 한번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몇몇 친구들과 위로하며 헤어지는데 서글프다느니 몸조심하라느니 하는 말로 만 가지 정서를 자아내게 하였다.
홍제원부터는 모두 처음 가는 곳들인데 모여 있는 산과 굽은 시냇물이 갖가지로 아름다워 호연(浩然)하게 만 리의 뜻이 생겨난다. 날이 어두울 무렵 달려서 고양에 당도했는데, 고양은 한 작은 읍이었다. 취민당(聚民堂)에 들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계산기정(薊山記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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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상
주제 : 사행, 학문
시기 : 1803-10-21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이해응, 넷째 형, 생질, 장인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14호
조선왕조실록
◆ 중국 사행단의 도성 출발과정
조선시대 사행단의 출발준비 절차는 대략 정사, 부사, 서장관 등 삼사(三使)의 결정, 그리고 이들 삼사의 모임이 있은 후에 사절단의 명칭을 제정한다. 이후 중국에 가지고 갈 세폐(歲幣:조공물)의 봉안, 각종 방물(중국에 바치던 우리나라의 토산물)의 포장, 그리고 임금을 알현하고 중국 황제에게 가지고 갈 표문(表文:태상황과 황제에게 올리는 문서) 또는 자문(咨文:청나라 예부에 올리는 문서)을 받는다. 이후에 모화관에 이르러 표문과 자문에 잘못된 곳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사대(査對)를 한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의하면 서울에서 3차례의 사대가 행해졌는데 승문원의 묵초사대(墨草査對), 방물을 꾸리는 날 행하는 정부사대(政府査對), 표를 봉하는 날에 행하는 모화관사대(慕華館査對)가 그것이고, 황주, 평양, 의주에 이르러 세 차례 사대를 또 행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꾸려진 연행사절단은 정사와 부사, 서장관, 그리고 역관 3인과 공물과 물자를 관리하는 압물관 24명 등 30명의 공식사절과 마부, 하인들을 합치면 대략 250여명에 말 200필 정도의 규모가 된다. 이들은 궁궐을 출발하여 숭례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나갔고, 모화관에 이르러 사대(査對)를 한 후에 홍제원에 이르러 호조가 마련한 공식 작별연에 참석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이때 삼사가 아닌 자제군관이나 비장들은 반드시 숭례문으로 나간 것은 아니었으며, 돈의문, 소의문, 창의문 등 자유롭게 연행길에 올랐는데, 이 『계산기정(薊山記程)』의 저자인 이해응(李海應:1775-1825)이 삼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숭례문으로 나가지 않고 돈화문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인 돈의문을 통해 모화관으로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원문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지
돈의문 사진
모화관 사진
모화관 사진
『서교전의도(西郊餞儀圖)...
소의문
그래픽
이해응의 사행 첫날 일정
3D
모화관,영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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