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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이 아닌 성을 안시성이라 하다니! - 봉황산 석성을 둘러싼 논박
사신단 일행이 새벽에 야영지를 떠나 봉황산(鳳凰山)[지금의 봉성현]을 넘는데, 산세가 아주 기이하고 빼어났다. 봉우리에는 석성을 둘렀는데, 두루 산세를 따라 지어놓아서 몹시 험했다. 수행하던 어떤 이는 이것이 안시성이라고 하였다. 이전에 사신의 임무를 맡아 이곳을 지났던 다른 이들의 기록에도 안시성(安市城)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지(地志)에 ‘봉황산(鳳凰山)은 요동도사성 동쪽 360리에 있다. 산 위에 돌로 된 성채가 있는데, 그 고성에는 10만인을 수용할 수 있다.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어가를 이곳에 머물렀었다[鳳凰山 在都司城東三百六十里 上有壘石 古城可容十萬衆 唐太宗征髙麗 駐蹕于此]’라 하였고, 또 ‘폐해진 안시현은 개주위 동북 70리에 있다. 당나라 태종이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했다[安市廢縣 在盖州東北七十里 唐太宗攻之 不下]’라 하였다. 지지에 기록된 것이 이와 같으니 봉황산(鳳凰山) 위에 있는 성이 안시성이 아님은 매우 분명한데 서로 구전하여 안시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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