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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살린 아내의 간호
지난 연말부터 세 달 넘게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전염병은 금난수의 큰아들 금경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집안에서 그간 앓던 모든 사람이 다 나아가고 있어서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월란암(月瀾庵)에 가 있던 금경이 앓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시금 근심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금난수는 말을 보내 금경을 데리고 오게 하였고, 대신 집에 있던 둘째 아들 이하의 아들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전염을 조금이라도 막고자 하였다.
마찬가지로 피접을 가 있던 금경의 아내는 남편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 근처로 내려왔다. 하지만 정작 병을 피해 영지사(靈芝寺)로 나가 있던 아들 금개도 병이 났다고 하여 그에게도 말을 보내 집으로 데려오도록 하였다. 아들 둘이 집에서 와병을 하고 있자니 모든 사람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금개는 병에 차도가 있었지만 금경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며느리가 자신의 남편을 직접 간호하겠다며 들어가 살펴보려 하였지만 금난수는 며느리를 만류하였다.
하지만 하루 꼬박 와병 중인 남편의 방 앞에서 걱정하고 있던 며느리는 남편의 병에 차도가 없자 결국 남편을 직접 간호하겠다며 들어가 버렸다. 비록 혼인을 한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그 마음과 정성이 너무나 지극하였는지 간호를 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나자 금경의 병세가 덜하였다. 이에 금난수는 며느리를 곧바로 자신의 서얼 아우인 금무생의 집에 나가서 거처하도록 하였다. 비록 병자의 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며느리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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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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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579-03-02 ~ 1579-04-0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금경, 금개, 금무생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74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개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경
◆ 조선시대 전염병과 대책
전염병은 병독(病毒)이 전염되는 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고 불러 왔다. 이 중 역(疫)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癘)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오늘날의 처지에서 볼 때 역려란 좋지 않은 전염병이라고 해석되며 악성유행병을 의미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자 전염병 발생에 관한 기록은 더욱 자세하게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에 크게 발생해서 문제되었던 질병을 보면 두창(痘瘡)·홍역·콜레라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질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중국대륙은 물론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유행되어왔다. 실제로 두창은 4~5세기경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각국에 크게 퍼졌으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되어 아시아 전체에 공통된 질병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점차 역병을 두창이나 홍역 같은 발진을 수반하는 전염병과 말라리아 및 콜레라를 구별해서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개별적인 전염병의 기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즉 조선시대 사람들은 발진을 일으키는 질병을 두창·수두(水痘)·마진·풍진·홍역으로 구별할 수 있었으며,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를 의미하는 온역과 해병(咳病) 등이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병명만으로 과거의 전염병 유행을 구체적으로 감별하기는 어려우며 사관(史官)에 따라서는 혼동해서 기록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점차 전염병이 구체화되고 세분화되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개국 후 처음으로 발생한 역병은 1396년(태조 5) 3월에 발생한 전염병이다. 특히 “경축성 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소집한 인부들에게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1525년(중종 20)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기 위하여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지어 반포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수록해서 알리도록 힘썼다. 1550년(명종 5)에 이르자 말라리아가 크게 돌고 황달이 심해져 조선정부는 『황달학질치료방(黃疸瘧疾治療方)』을 만들어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계속 전염병이 돌자 광해군 때에 이르러 새로운 『벽온방(辟瘟方)』과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발행되었으며, 효종 때에 이르자 또다시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전염병의 발생에 즈음해서 많은 사람들은 우선 역귀 때문에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불교에 의한 인과응보설이나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운기불화설(運氣不和說)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유행은 귀신의 조화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드렸다. 실제로 여제에 쓰였던 제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의서를 보면 계절이나 기후의 변화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 원문 번역
3월 2일 월란암月瀾庵에 있는 아이 경憬이 어제부터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보내어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아이 업(𢢜) 등이 피신하여 강 상류로 돌아갔다. 저녁에 경憬의 아내가 내려와 친구 만구萬仇 집에서 임시로 기거하고 있다. 3월 7일 아이 경憬이 땀을 흘린 뒤에 열이 내리고 병이 덜하였다. 3월 8일 영지사靈芝寺에 있는 계윤季胤이 어제부터 병이 낫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보내어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3월 9일 계윤의 병이 차도가 없다. 3월 13일 새벽에 계윤이 땀을 흘리고 병이 덜하였다. 3월 16일 총춘대에 꽃을 심었다. 아이 경憬이 밤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3월 19일 아이 경憬의 병이 심하여 며느리가 들어가 살펴보려고 하기에 못하게 하였다. 3월 20일 경憬의 병이 차도가 없어서 그의 아내가 들어가 병세를 살폈다. 3월 21일 오후에 땀을 내고 경憬의 병이 덜하였다. 경의 아내가 무생戊生 집에 나가서 임시로 거처한다. 계윤季胤의 몸이 좋지 않다. 3월 25일 밤에 계윤이 땀을 흘리고 병이 덜하였다. 3월 30일 아이 경憬의 몸이 좋지 않다. 4월 5일 새벽에 계윤季胤은 몸이 좋지 않았으나 경憬의 병은 덜하였다. 4월 8일 계윤의 병이 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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