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존애원을 설립하다
정경세(鄭經世)와 성람(成覽)은 의국(醫局, 의료원)을 세워 각기 약재의 수급과 진료를 맡았다. 우선 정경세는 약재의 수급을 맡았다. 다행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들은 이른바 낙사계(洛社契)의 사람들이었다. 낙사계란 명망 있는 선비들의 모임이다. 정경세는 낙사계를 위한 글을 쓰기도 하였다. 낙사계에 모인 사람은 거의 서른 명이나 되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정경세가 의국을 세워 백성들을 구제하겠다는 뜻에 모두 동의하였다. 그들은 각기 쌀과 포를 내었다. 이것이 의국을 운영하는 기본 자금이 되었다.
정경세는 이를 이용하여 우선 노는 일손부터 모았다. 정경세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들을 채집하게 하였다. 정경세는 또한 중국 약재를 구할 방안을 마련하였다. 중국 약재는 무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정경세는 쌀과 포로 중국과 무역을 하여 이를 마련코자 하였다. 일은 순조로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약재는 물론 중국의 약재까지 마련되었다.
약재가 그럭저럭 마련되자 이를 보관하고 출납할 장소가 필요하였다. 정경세는 낙사계로부터 모은 종자돈으로 약재 보관 창고를 지었다. 그리고 성람은 병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의국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퍼져 진료 받으려는 병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찾아오는 병자들이 북적였지만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정경세는 그들을 위해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이 완성되자 이곳은 병사(病舍, 병자들이 머물며 치료를 받는 병동)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성람은 꾸준히 병자들을 진료하였다.
또한 약재를 구할 길 없었던 백성들도 약재를 찾아 이곳으로 찾아왔다.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이라면 약을 그냥 줄 수도 있었지만, 운영상 어쩔 수 없이 의국에서는 약재 판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선 약재는 원래 약의 값대로 팔기로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정말 약값대로 받는다면 의국은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었다. 이에 운영경비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조금의 이윤을 붙이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면 원금은 보존하면서도 이윤을 불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윤으로 다시 약재 창고를 채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약재를 곧장 대어 줄 수 있게 하였다. 민간에 이 의국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정경세는 이 의국에 대해 이름을 붙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애초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포를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명도(程明道)의 ‘남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둔다[存心於愛物]’는 말을 취하여 이를 ‘존애원(存愛院)’이라 하였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