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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관이 되기를 바라다
권상일이 바라는 관직인 중앙관청의 경관직이 아닌 지방직이었다. 특히 셋째 아내가 사망한 이후에는 더더욱 지방관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뜻처럼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초입사를 승문원에서 보냈다.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저작, 박사에 올랐다. 박사는 정7품이었으므로 이제 6품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여기가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6품은 지방관의 가장 낮은 직급은 현감이 될 수 있는 품계였다. 그러므로 6품인 참상관이 되었을 때 지방관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중앙관청에서 참상관(參上官)이 되느냐가 결정될 수 있었다.

1718년 권상일도 참상관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받은 관직은 정6품직인 성균관(成均館) 전적이었다. 결국 그는 지방관이 아닌 중앙관청으로 관직이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의 바램인 171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해에 세 번째 아내가 사망한 해여서 집안에 안주인이 아무도 없었다. 부친을 돌볼 사람이 집안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부친을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방법은 지방관뿐이었다.

1719년 5월 정기 인사가 진행되었다. 그도 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정5품직인 성균관 직강에 수망으로 올라 낙점되고 말았다. 그는 승진을 했지만 실상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지방관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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