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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들의 계모임과 싸움,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사건을 조작하다
1607년 5월 22일, 우리 집 종들이 계모임을 만들어 환난을 당했을 때 서로 돌보아 주곤 했다. 지난 달 그믐쯤에 이동이 그의 계집 상을 당했다. 이동은 오랫동안 호적에 들어 있어서 종과 다름없기 때문에 그도 계에 들었다.
그들은 계모임에서 각자 힘을 보태 서로를 도와주었는데, 장례를 치른 후 무명이 남아 그것을 술로 바꾸기로 하여 모이게 되었다. 모인 자들은 모두 계원이라 다른 사람은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에 봉춘네 집에서 모였는데, 국룡이라는 자가 이웃에 사는 안월의 서방을 불러 모임에 참여하도록 했다. 안월의 서방 줏동이라는 자는 평소에 술주정이 있었는데, 이날 밤에 역시 취해서는 갑자기 옷을 벗어 한귀동에게 던지면서 둘이 싸움이 붙었다. 싸움이 붙자 줏동의 계집이 또한 좇아오는 둥 형세가 아주 요란스러워졌다.
우리 집 종들 중 몇 명이 뜯어 말리니 그 자는 더욱 난폭해졌다. 어젯밤의 시끄러운 소리는 바로 이 사건이었다.
이날 아침에 안월의 아비라며 수천이란 자가 와서, “어젯밤에 수년이 등 4명이 우리 사위를 마구 두들겨 패는 바람에 내 딸의 6개월 된 태아가 낙태되었다.”고 했다. “그 낙태된 아이가 이미 아들인지 딸인지 구별이 가능할 정도여서, 장차 관에 고소하고 동네에 고발할 것이다.”라고 했다.
김령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수년은 실제로 뜯어말려 구해 준 자였고, ‘마구 두들겨 팼다’는 말도 모두 거짓으로 꾸며낸 말이었다. 또 한 가지 사실을 들으니 더욱 한심했다. 그의 딸 안월이, “나는 본래 아이를 밴 적도 없는데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소?”라고 말했다. 아니, 갖지도 않은 아이가 낙태가 된단 말인가? 무고하여 살인 사건을 만들고, 이웃을 심하게 해치려 했으니 그가 꾸민 계책이 참으로 참혹하기 짝이 없다.
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건만 이처럼 놀라운 일을 뻔뻔스럽게도 조작하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 걸까.
윤 6월 2일, 아침에 지난번 술주정으로 서로 싸운 일 때문에 잇달아 사람을 보내 유사를 재촉해서 동네 사람들이
사첨(士瞻)
의 집에 모이게 되었다. 수년과 청산을 각각 볼기 50대를 치고, 묵은 감정 때문에 진수를 곤장 치려고 제천 표숙에게 극렬하게 간청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자 저들이 또 헛된 말로 무고하기를, 진수가 멀쩡한 소를 죽였다고 했다.
제천 표숙이 전에 동네 상것들이 사사로이 소를 잡고도 양반에게 알리지도 않으면 반드시 벌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빙자해서 계책을 꾸며 기어코 죄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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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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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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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신분, 노비 계모임, 사건 조작
시기 : 1607-05-22 ~ 1607-06-02 (윤)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령, 수천, 이동, 봉춘, 국룡, 안월, 줏동, 한귀동, 수년, 청산, 진수, 제천 표숙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87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 계
계(契)는 우리 나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였던 협동단체이다. 계는 농촌주민의 필요에 따라 예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 유지된 집단인데, 두레·품앗이보다 보편적이고 활발한 것이었다. 계는 그 기원이 불확실하고 종류가 다양하며 기능도 복잡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된다는 점에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계는 공동의 목적과 존립을 위하여 식리(殖利)를 하지만, 식리계를 제외하고는 식리 자체가 목적인 예는 드물었다. 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계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이익집단 내지 기능집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계는 촌락이나 도시와 같은 지역사회 자체가 아니라, 지역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한 이해 또는 여러 가지 이해를 공동으로 추구하기 위하여 조직된 하나의 집단인 기능집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계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을 만큼 많았다. 1938년의 조사에 따르면 명칭이 다른 것만 하여도 480종류나 있었다. 계의 분류는 조직 목적, 외적 형태, 기능 등을 기준으로 하였다. 특히 기능에 따랐던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계가 동시에 여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 하면, 같은 명칭의 계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계의 기능을 엄정하게 분류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면 오락이나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계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모두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여러 분류를 종합하면, ① 생산·식리·공동구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집단:농계(農契)·보계(洑契)·식리계·구우계(購牛契) ② 동리의 공공비용의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집단:동계(洞契)·보안계(保安契) ③ 계원의 복리 및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적 집단:혼상계(婚喪契)·혼구계(婚具契) ④ 조상의 제사 혹은 동제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집단:종계(宗契)·문중계·동제계 ⑤ 계원 자제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적 집단:학계(學契)·서당계 ⑥ 계원의 친목과 오락 등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오락 집단:시계(詩契)·문우계(文友契)·동갑계·유산계(遊山契) 와 같이 경제·정치·복지·종교·교육·오락의 여섯 개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계의 발생시기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삼국 이전에 성립하였다는 설, 신라시대 성립설, 고려시대 성립설, 조선시대 성립설 등 시대설정이 다양하게 주장되고 있어 추정하기 어렵다. 특히, 조선시대 이전의 자료는 드물기 때문에 계의 기원에 대한 학설이 더욱 분분하다. 조선시대의 계첩(契帖)을 보면 크게 나누어 서(序)·입의(立議)·좌목(座目)·발(跋)로 구성되어 있다. 서는 완의(完議)라고도 하는데, 계를 설립한 유래·목적·역사·효과 등을 적었다. 입의는 절목(節目)·계헌(契憲)·범례·조약·규약 등으로도 불렸는데, 준수해야 할 항목들을 나열한 것이다. 이에는 감독 규정, 임원의 선출, 임원에의 예의 등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좌목은 계원의 명부로, 계원의 신분이 양반인 경우는 생년의 간지·호·본관 등을 기재하였다. 발은 계 성립의 전말 등을 기입한 것으로, 대개는 양반들의 계일 경우에 작성된다. 이 밖에도 계첩에는 계 재산의 수지(收支), 재산목록과 소유전답 등의 기록이 있는 것도 있다. 민족항일기에는 계의 규약이 ‘장(章)’과 ‘조(條)’로 나누어지고, 그 내용을 상세히 규정하는 등 근대적인 회칙 내지 정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현대의 규약도 이와 비슷하다. 이와 같은 계첩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조선시대 계 조직의 범위는 대개 한 마을을 넘지 않지만, 그보다 넓은 범위의 거주자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계원의 자격은 한정되는 경우와 한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계원자격에 어떤 한정이 없는 경우는 대부분 주거지에 따라 계원이 되었던 것 같다. 계원의 수는 최하 2명부터 최고 수백 명까지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대체로 송계·동계·학계 등은 구성원수가 크지만, 상호부조나 금융을 목적으로 하는 계는 그 구성원수가 적다. 한편 구성원수의 다소와는 상관없이 그 수가 한정·불변인 경우와 한정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상계나 교유계는 계원수를 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계에는 계장(契長)·유사 또는 도가(都家)·장재(掌財)·서기 등이 있었다. 계장은 계를 대표하여 내외에 업무상의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연장자로 재산과 신망이 있는 자가 선출되었고, 임기나 보수가 따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유사는 실제로 계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역시 계원 중에서 뽑는다. 계의 업무는 대개 유사의 집에서 집행되며, 유사는 약간의 수당을 받고 1∼2년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계의 사무소를 도가라고 하였는데, 유사를 도가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 장재는 재산의 보관과 현금의 출납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서기는 장부·문서 및 기타 잡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계원이 선출하기도 하고 계장이나 유사가 촉탁하기도 하였으며, 대개는 유급(有給)이었다. 한편 계의 규모에 따라 유사가 장재와 서기를 겸하기도 하고, 장재와 서기를 따로 두기도 하며, 또는 장재가 서기를 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원의 직무와 권한은 계 목적의 수행이나 기금의 대출에 그치지 않고, 규약상 벌칙을 범한 계원을 처벌하는 데까지 미쳤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정미년(1607, 선조40) 5월 22일 맑음. 우리 집 종들이 계모임을 하여 환난을 당했을 때 서로 돌보아 주곤 했다. 지난 달 그믐쯤에 이동(李同)이 그의 계집 상(喪)을 당했다.―이동은 오랫동안 호적에 들어 있어서 종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또한 계에 들었다.― 그들이 계모임에서 각자 힘을 보태어 도와주었는데, 장례를 치른 뒤 남은 무명을 술로 바꾸기로 하여 모이게 되었다. 모인 자들은 모두 계원이라 다른 사람은 참여할 수도 없었다. 어젯밤에 봉춘(奉春)네 집에서 모였는데, 국룡(國龍)이라는 자가 이웃에 사는 안월(安月)의 서방을 불러 모임에 참여하도록 했다. 안월의 서방 줏동(㗟同)이라는 자는 평소에 술주정이 있었는데, 이날 밤에 췻김에 갑자기 옷을 벗어 한귀동(韓貴同)이에게 던져 둘이 싸움이 붙었다. 싸움이 붙자 그의 계집이 또한 좇아오고 형세가 아주 요란스러워졌다. 우리 집 종들 중 몇 명이 뜯어 말리니 그자가 더욱 난폭해졌다. 어젯밤의 시끄러운 소리는 바로 이 사건이었다. 이날 아침에 수천(守千)―안월의 아비―이라는 자가 와서, “어젯밤에 수년(守年)이 등 4명이 우리 사위를 마구 두들겨 패는 중에 내 딸의 6개월 된 태아가 낙태되었다.”고 하면서 “그 낙태 된 아이가 이미 아들인지 딸인지 구별이 가능할 정도여서, 장차 관에 고소하고 동네에 고발할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말하기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즉 수년은 실제로 뜯어 말려 구해 주었고, ‘마구 두들겨 팼다’라는 말은 모두가 거짓으로 꾸며낸 말이며, 그의 딸도 본래 아이를 배지 않았었다. 배지도 않은 아이가 어찌하여 낙태가 되겠는가? 곧 이와 같이 운운했다. ……(결문), 무고하여 살인 사건으로 만들어 반드시 심하게 해치려 했을 터이니, 그가 꾸민 계책은 참혹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사실을 들으니 더욱 한심했다. 그의 딸이, “나는 본래 아이를 밴 적도 없는데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소?”라고 했다. 아! 이와 같이 두렵고 놀라운 일이 결국 조작되기에 이르렀으니 뻔뻔스럽기도 할 뿐더러 하늘이 내려다 볼 것이로다. 저녁에 이지가 들렀다. 밥을 먹은 뒤 배가 더부룩하고 가래 꿀꺽거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몹시 고통스러웠다.
정미년(1607, 선조40) 윤6월 2일 새벽에 담기(痰氣)가 올라오며 가래소리가 났다. 아침에 지난번 술주정으로 서로 싸운 일 때문에 잇달아 사람을 보내 유사를 재촉하여 동네 사람들이 사첨(士瞻)의 집에 모이게 되었다. 수년(守年)과 청산(靑山)을 각각 볼기 50대를 치고, 묵은 감정 때문에 진수(眞守)를 곤장치려고 제천 표숙에게 극렬하게 간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자, 저들이 또 헛된 말로 무고하기를, 진수가 멀쩡한 소를 죽였다고 했다. 대개 제천 표숙이 동네 상것들이 사사로이 소를 잡고도 양반에게 알리지도 않으면 반드시 벌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빙자하여 계책을 꾸며 기어코 죄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결문), 그의 아들 진동(眞同)이 ……이라 하니, 믿을 수 있겠는가. 이날 날이 매우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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