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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길에서 중국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1617년 10월 5일, 이상길(李尙吉)은 요동땅 요령에 있었다. 지난달 이상길은 명나라 동지에 하례를 올리러 가는 사신으로 뽑혔다. 동지인 11월에 명나라에 도착하기 위하여 9월 말 일찍 서둘러 사행을 출발하였다. 중국으로 가는 첫 관문인 요령에 들어서자, 이상길은 본인이 사행을 간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요령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는 시내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요령의 숭문각(崇文閣)과 망경루(望京樓)를 찾아 들어가 관우를 모신 사당을 보았다. 겹겹이 쌓인 문과 우뚝한 누각이 조선의 그것들보다 훨씬 크고 장대하였다. 백탑사란 절에 들렀는데, 거기 백탑은 탑의 높이가 13층으로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 듯하였다. 불전 역시 큰 규모에 3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뒤로 다시 불전이 있는데 거기에는 5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맨 뒤에는 책을 보관하는 장경각이 있었다. 백탑의 층층계단을 부여잡고 정상에 올라 서남쪽을 바라보니 시야가 아득하니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실로 요동 일대의 풍경이 모두 눈에 잡힐 듯하였다. 누각을 내려와 중문으로 나오니 스님 한 분이 차와 과일을 대접해 주었다.

절에서 나와 성으로 들어가 시내를 구경하였다. 성 내에는 인구가 넘실대고 장마다 가게가 늘어서 있었으며 주택가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시장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가 이상길의 일행을 보고는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질하면서 놀려대는데 모두 ‘고~~려라~~네!’, ‘고~~려라~~네!’ 하고 외쳤다.

조선에서는 2품 이상의 고위 관원으로 임금에게도 깍듯한 대우를 받았던 이상길은 중국에서 겨우 시장의 아이들에게 이런 놀림을 당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것이 모두 조선이란 조그만 나라에 태어난 죄일 것이다. 이상길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성 북쪽으로 나와 한종공의 시골 별장을 방문하였다. 한종공은 임진왜란 때 명에서 파견한 장수 이여송의 사촌 매부인 사람이었다. 한종공의 저택은 매우 큰 규모에 어떤 곳에는 벽에 금을 칠하기도 하고, 그 앞에 돌을 쌓아 가짜 산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는데 그 가짜 산이란 것이 수십 명이 올라앉아도 될 만큼 컸다. 집 안의 화단이며 연못이며 모두 맑고 깨끗하였다. 임금의 거처도 아닌, 일개 관원의 거처가 이런 규모라 하니, 이상길은 명나라가 큰 나라인 것을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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