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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성대함을 보고 반고의 ‘양도부’를 떠올리다
1720년경 이이명(李頤命)은 숙종의 부고를 알리는 사행이 되어 북경에 도착하였다. 아들인 이기지가 동행하였는데, 아직 어린 나이어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이 많았다. 매번 이이명에게 물을 길어온다고 핑계를 대고는 여러 번 나가서 돌더니, 객관으로 돌아올 때마다 자기가 본 것을 이이명에게 늘어놓는 것이었다.
성과 궁궐, 시장의 위치가 좋고, 거리마다 물건들이 번화하여서 볼만하다고 칭찬하면서 청나라 강희제가 나라를 새롭게 만든 점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이이명은 문득 내가 읽었던 『양도부』란 글 중에 「서도부의 내용이 떠올랐다.

드넓은 금성을 세우고 주지(周池)를 파서 넓은 연못을 이루었다네.
3개의 넓은 도로를 만들고 성과 통하는 12개의 문을 세웠다네.
안으로는 거리가 사방으로 통하고 일반인이 사는 집이 열에 아홉이라네.
시장은 항상 열리고 물건은 종류별로 파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네.
사람과 수레가 많아서 사람들은 제대로 돌아볼 수 없고, 수레를 돌릴 수가 없다네.
수도의 곁으로 흐르는 많은 강물들이 성을 감싸고 먼지가 사방에서 합해져 안개와 구름이 서로 이어져있다네

라는 구절이었는데, 아들 앞에서 이 시를 읊고는 물어보았다.
“이곳의 풍경이 이 글의 내용과 같으냐?”
그러자 아들 기지가 대답하였다.
“정말 그 시가 자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이명은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성조가 북경에 수도로 세운 것은 영연히 갈 좋은 계획은 아닌 것 같구나. 반고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어서 한스러울 뿐이다. 누가 이 성대함을 기억하여 훗날 『양경부』 같은 작품을 지을 것이며, 또 지은다 한들 누구를 위해 풍자하겠느냐? 이 때문에 개탄스럽구나.”

아들 기지는 이이명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듯하였다. 오랑캐가 세운 나라는 오래갈 리가 없으니, 강희제의 수도 건설은 오래지 않아 헛된 꿈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반고처럼 글을 잘 쓰는 이가 없으니, 한때 번성한 지금의 북경을 누가 상세히 옮겨 전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가 나타나 글을 쓴다 해도 어차피 오랑캐의 수도인 것을 누가 관심 있게 보겠는가? 하물며 북경의 성대함은 조선의 근심이기도 하니, 어찌 북경의 성대함을 보고 감탄만 할 수 있겠는가...이이명의 생각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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