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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가 조선 왕들의 재위 기간을 묻다
1720년 10월 9일, 이이명(李頤命)은 회동관(會同館)의 제독(提督) 상숭탄(尙崇坦)과 개시관(開市官)인 마씨 관료 등을 만났다. 숙종 임금의 부고를 알리고 새 왕의 책봉을 청하기 위하여 북경에 온 이이명은, 예부 관리들의 노골적인 뇌물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참이었다.
예부 관원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일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것을 청나라 황제가 어찌 알았는지 직접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상숭탄이란 사람은 이이명에게 만주어로 쓰여진 작은 종이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우리 청나라 황제의 칙지입니다. 황제께서 이를 예부에 내리지 않고 내각의 신료들에게 내려서 서둘러 속히 물어 아뢰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명령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이명 등을 방 밖에 세워두고 대답을 재촉하였다. 그 작은 종이에 써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죽은 선왕이 조선 왕이 된 지 몇 년이 되었는가? 내가 묻노니 여기 사신으로 온 당신 나라의 왕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왕으로 재위한 자가 또 있었는가?”
이이명은 기억을 더듬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선왕께서는 강희 13년(1674)에 왕으로 책봉을 받았고 올해 돌아가셨으니 강희 14년부터 계산하면 올해까지 총 46년 동안 재위에 계셨습니다. 우리 조선의 선대 왕들 가운데에서는
소경왕(昭敬王, 선조)
께서 재위에 있은 지 가장 오래되셨습니다.
명나라 목종황제 2년인 1568년에 책봉을 받으시고 명나라 신종황제의 재위 때인 1608년에 돌아가셨으니 재위 기간이 40년이셨습니다. 지금 돌아가신 임금에게는 5대조 선조가 되십니다.”
이에 상숭탄이란 사람은 서리로 하여금 이이명이 대답한 내용을 글로 적게 하고는 서둘러 보고를 위해 떠났다. 이이명은 다소 뜬금없는 황제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어쩌면 이를 계기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였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연행잡지(燕行雜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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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이명(李頤命)
주제 : 황제와의 문답
시기 : 1720-10-09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중국 북경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이이명, 상숭탄, 마씨 관료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20호
◆ 조선 왕들의 재위기간
이 이야기는 청나라 황제가 숙종의 재위기간이 길었다는 것을 말하고, 아울러 이전의 조선 임금 중에서도 그토록 오래 왕위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묻는 장면이다. 조선은 모두 27명의 왕이 약 500년간 재위하였는데, 각 왕들의 재위기간은 모두 제각각이었고 어떤 왕은 50년 넘게, 어떤 왕은 채 1년도 안되어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럼 조선에서 가장 장수하며 오랜 기간 왕 노릇을 한 임금은 누구였을까. 바로 탕평책과 균역법을 시행하였던 영조가 53년간 재위하면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하였다. 영조는 31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83세로 사망할 때까지 왕으로 재위하면서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다음으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숙종이 47년간 재위하였다. 특히 숙종은 14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왕위에 오르자마자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을 쫓아내고 남인들을 등용하는 과감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숙종은 재위기간동안 총 4명의 왕비를 두기도 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26대 고종이 45년간 재위하였다. 고종은 최초 13년간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였는데, 섭정 기간을 제외하고 친정을 한 기간만 따져도 30년이 넘는 기간이었다. 그 외에 중종이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고 40년간 재위하기도 하였다. 반면 왕위에 가장 짧게 있었던 왕은 12대 왕인 인종 임금이었다. 인종은 1544년 12월에 왕위에 올랐다가 다음해 9월에 사망하였다. 재위기간을 모두 합하면 10개월 정도였다. 이 때문에 다음 왕인 인종의 동생 명종은 전전대 왕인 중종과 전대 왕인 인종의 국상을 동시에 치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짧았던 왕은 예종으로 약 1년 2개월간 재위하였다. 예종은 19살의 나이로 성년이 되어 왕위에 올랐는데, 갑자기 1년 만에 사망하였다. 이 밖에도 문종이 3년간 재위하였고, 왕자의 난으로 재위에 올랐던 2대 임금 정종 역시 약 2년 남짓한 기간만 재위하고 동생 태종에게 양위하였다. 보통 왕이 오랜 기간 생존할 경우 국정은 안정되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조선의 문물이 발전한 시대는 보통 오랜 기간을 재위한 왕이 있던 시기였다. 가장 성대한 발전을 이루었던 세종대왕 역시 32년간을 국왕으로 재위하였다. 반면 국왕의 재위가 짧을 경우 많은 정치적인 격변을 몰고 오기도 하였다.
◆ 원문 번역
1720년 10월 9일 회동관 제독(會同館提督)인 상숭탄(尙崇坦)과 개시관(開市官)인 마■■ 등이 급하게 와서 청나라 글자로 쓴 작은 종이를 보여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 청나라 황제의 교지입니다. 예부에 내리지 않고 각로(閣老)에게 내려서 그로 하여금 서둘러 속히 물어서 아뢰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을 방 밖에 세워두고 대답을 재촉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선왕이 조선의 왕이 된 지가 몇 년이 되었습니까? 내가 묻노니 여기 사신으로 온 당신들, 당신 나라에 왕이 된 지가 이렇게 오래된 자가 또 있습니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 조선의 선왕께서는 강희 13년(1674)에 봉작을 받았고 올해 돌아가셨으니, 14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올해까지 46년 동안 재위에 계셨습니다. 우리 조선의 선대 가운데 소경왕(昭敬王, 선조)께서 재위에 있은 지가 가장 오래되셨습니다. 명나라 목종황제 융경(隆慶) 2년인 1568년에 봉작을 받고 신종황제 만력 36년인 1608년에 돌아가셨으니 재위 기간이 40년이셨습니다. 지금 돌아가신 임금에게는 5대 선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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