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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여학당이 나타났다고 한다
1898년 8월, 박주대는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비로소 여학당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독립협회가 연설회를 개최해 일반인들도 정치에 관해 연설을 할 수 있다는 소식도 놀라웠는데, 이제 여자들도 학문을 배우기 위해 학당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세상이 놀랍게 변해가고 있었다.
여학당의 당수는 완화군의 어머니인 이상궁이라고 한다. 그녀들은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고 대궐 문밖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에 임금께서 이들의 상소를 들어주겠다 비답을 내리셨다 하는데 당원이 무려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천하에 이와 같이 기괴하고 또 기괴한 일이 만고에 있었겠는가!
그 뒤에 여학당의 수가 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며, 그 형세가 매우 융성해졌다고 한다. 한편 그들이 올렸다는 상소를 뒤에 구하여 읽어보니, 첫째 여성에게도 관직의 길을 열어 줄 것, 둘째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쓰개치마를 없애 줄 것, 셋째 내외를 나누는 법을 없애줄 것, 넷째 남편이 고질병으로 신음할 때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가도록 허락해 줄 것 등이라고 한다.
아! 이 상소문을 읽어보니 세상의 말세가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앞의 세 항목이야 천 번 만 번 양보하여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마지막 고질병인 남편을 두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에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세상에 남편 된 자로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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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저상일월(渚上日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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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한광(朴漢光), 박득녕(朴得寧), 박주대(朴周大), 박면진(朴冕鎭), 박희수(朴熙洙), 박영래(朴榮來)
주제 : ( 미분류 )
시기 : ( 미상 )
장소 : 경상북도 예천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박주대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62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박주대
◆ 한국 최초의 여성운동단체 찬양회
이 이야기는 서울에 최초로 여학당이 생긴다는 말을 박주대가 전해들은 내용이다. 이 여학당 설립을 주도한 이들은 찬양회라는 단체로서, 양성원(養成院) 또는 순성회(順成會) 라고도 불리었다. 찬양회는 한국 최초의 여성운동 단체라 할 수 있는데,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 사는 양반집 부인 400여 명의 통문 발표로 시작되었다. 이들이 내세운 주장은 ‘신체, 수족, 이목이 남녀간에 다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여자는 병신모양으로 평생을 심규(深閨, 여자가 거처하는 깊숙한 집안)에 처하여 남자의 절제를 받는가? 여학교를 세워 남녀평등을 이룩하자’ 였다.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권 및 정치참여권을 내용으로 한 찬양회의 통문은 천부인권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은 이 같은 통문을 발표한 뒤 9월 12일 찬양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에서는 여학교 설립운동과 여성의 계발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여학교 설립운동은 관립학교 설립에 대해 상소하고, 1899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순수사립여학교인 순성여학교(順成女學校)를 설립·후원했다.
그러나 이 단체에서 추진한 공립여학교 설립사업은 고종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재정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찬양회는 여학교 설립운동 이외에도 독립협회가 이끈 만민공동회의 자유민권운동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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