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일기
서울에 여학당이 나타났다고 한다
삽화 정용연
1898년 8월, 박주대는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비로소 여학당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독립협회가 연설회를 개최해 일반인들도 정치에 관해 연설을 할 수 있다는 소식도 놀라웠는데, 이제 여자들도 학문을 배우기 위해 학당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세상이 놀랍게 변해가고 있었다.
여학당의 당수는 완화군의 어머니인 이상궁이라고 한다. 그녀들은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고 대궐 문 밖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에 임금께서 이들의 상소를 들어주겠다 비답을 내리셨다 하는데 당원이 무려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천하에 이와 같이 기괴하고 또 기괴한 일이 만고에 있었겠는가!
그 뒤에 여학당의 수가 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며, 그 형세가 매우 융성해졌다고 한다. 한편 그들이 올렸다는 상소를 뒤에 구하여 읽어보니, 첫째 여성에게도 관직의 길을 열어 줄 것, 둘째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쓰개치마를 없애 줄 것, 셋째 내외를 나누는 법을 없애줄 것, 넷째 남편이 고질병으로 신음할 때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가도록 허락해 줄 것 등이라고 한다.
아! 이 상소문을 읽어보니 세상의 말세가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앞의 세 항목이야 천 번 만 번 양보하여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마지막 고질병인 남편을 두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에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세상에 남편 된 자로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서울에 여학당이 나타났다고 한다
- 출전 : 저상일월(渚上日月)
『저상일월(渚上日月)』은 1834년(순조 34) 박한광이 시필한 함양박씨(咸陽朴氏) 6대의 한문초서일기이다. 그 뒤 박한광의 차남 박득녕(朴得寧, 1808∼1886)이 일기를 이어 썼으며, 『나암수록(羅巖隨錄)』의 저자인 아들 박주대(朴周大, 1836∼1912)를 거쳐 손자 박면진(朴冕鎭), 증손 박희수(朴熙洙), 그리고 현손 박영래(朴榮來)가 계속 쓰다가 6·25가 발발한 1950년으로 끝나 있다. 박주대가 1895년(고종 32) 쓴 일기의 서문에는 꼭 기록해야 할 사목(事目) 일곱 가지가 있다. ① 천기(天氣)의 음청(陰晴), 즉 날씨, ② 세시(歲時)의 풍흉(豊凶), 즉 작황, ③ 자가(自家)의 출입, 즉 손님의 출입, ④ 농사의 경작과 수확, ⑤ 계절의 길흉과 이변, ⑥ 인리(隣里)와 향토의 사건, ⑦ 조정(朝廷)·시중(市中) 및 포구·항구에서 일어난 사건 등 아무리 자질구레한 일이라도 직접 보고 들은 것은 모두 적으라고 당부하고 있다. 『저상일월(渚上日月)』은 『나암수록』·『당시고취(唐詩鼓吹)』·『당조책림(唐朝策林)』·『만국전도(萬國全圖)』·『통감(通鑑)』·『저상일용』등과 더불어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咸陽朴氏 正郞公派 門中典籍)」으로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8월 1일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되었다.
- 저자 : 박한광(朴漢光), 박득녕(朴得寧), 박주대(朴周大), 박면진(朴冕鎭), 박희수(朴熙洙), 박영래(朴榮來)
작가 소개
- 삽화 : 정용연
- 주요 작품으로 가족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그린 "정가네소사" 1,2,3 권과 고려말 제주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다룬 "목호의 난1374 제주"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