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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잡게 해달라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다
1599년 9월 12일, 얼마 전 오희문은 매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쳐 두었다. 매사냥으로 집에 반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함도 있고, 여기저기서 매를 구하는 친구들의 부탁을 매번 거절하기도 어려워 매를 잡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리하여 그물을 쳐 두고, 미끼로 닭을 한 마리 묶어 두었다. 이제 매가 잡히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매 그물에 두어둔 닭을 지난밤에 여우와 살쾡이들이 물어간 모양이었다. 들으니 판관 최응진은 그물을 쳐서 큰 매를 잡았다고 하던데, 오희문은 계속해서 닭만 잃고 겨우 토끼 한 마리를 잡은 것 외에는 거의 20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것은 비록 사람이 부지런하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오희문의 생각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 일로 오희문이 무척 상심해 있자, 주변 사람들이 와서 요령을 일러주었다. 정성스럽게 술과 반찬을 차려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가 허망한 것임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희문은 춘금이로 하여금 술과 반찬을 가지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제 제사도 지냈으니 얼마나 큰 매가 잡히는지 기다려 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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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쇄미록(𤨏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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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희문(吳希文)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599-09-1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강원도 평강군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오희문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90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오희문
◆ 조선시대 매사냥
매를 날려 보내어 꿩이나 토끼 따위의 짐승을 잡는 수렵활동으로, 옛날 기록에는 방응(放鷹)이라고 하였다. 길들인 매로 사냥을 하는 것은 활이나 총으로 짐승을 잡는 수렵 행위보다는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아득한 고대부터 매사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은 성품이 호매하여 매사냥을 좋아했으며, 법왕 1년(599) 12월에는 살생을 금지하여 집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전부 놓아 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유사≫ 영취사에는 어떤 사람이 매를 놓아서 꿩을 쫓게 하였는데, 그 매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가 매에 달아 놓은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했는데, 충렬왕은 매사냥에 열중하여 민간에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충목왕 때는 응방을 폐지했는데, 공민왕이 매를 사랑하여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응방이 있고 응방군까지 있어서 매사냥이 한층 성행하였음을 알려 준다. 조선시대의 태종은 매사냥을 자주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 때는 일부 폐지하였으나 민간에서 행하는 매사냥은 금지하지 않았다.
김창업(金昌業)은 매사냥의 호쾌한 기개를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자 넘은 보라매를 엊그제 갓 손 떼어 빼짓체 방울 달아 석양에 받고 나니/장부의 평생 득의는 이뿐인가 하노라.”
김창업은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파묻혀 살면서 농사짓고 매사냥이나 즐기며 유유자적 학문에만 열중한 큰 학자였다. ‘빼짓체’란 ‘빼깃이’라고 해서 매의 꽁지 위에 표하기 위해 덧꽂아 맨 새의 깃을 말하는데, 이 깃에 맑은 소리가 나는 청동방울을 달아 놓아 매가 움직이는 대로 방울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꿩을 쫓아 날아간 매를 방울 소리로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하며, 새끼를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를 보라매라고 하고, 보라매를 해동청(海東靑)이라고도 부른다. 산에서 제풀로 자란 매를 산지니라고 하는데, 이 산지니는 길이 들지 않아서 먹이를 뜯어 먹고 배가 부르면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사냥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사냥매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잡아서 사람 손으로 길들인 매라야 한다. 이렇게 길들인 매를 보라매 외에 육지니·수지니·수진개·수진매라고도 한다. 보라매도 1년 이내 것은 초지니 또는 갈지개라고 하고, 1년에서 2년까지는 재지니, 2년에서 3년까지는 삼지니라고 부르는데, 사냥하기에는 초지니가 날렵하고 용맹무쌍하여 가장 좋으며, 재지니·삼지니쯤 되면 동작이 느려서 별로 신통치 못하다.
매 중에서도 백송고리는 성질이 굳세고 날쌔어 해동청 가운데 아주 귀하게 아끼는 종류이며, 도롱태·황조롱이·새호리기 같은 것은 육지니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기르지 않는다. 새매의 수컷인 난추니는 깃이 예리하여 새를 후려쳐서 잡고, 암컷인 익더귀는 독수리를 닮아 능히 호랑이를 잡는다고 한다.
매사냥은 보라매를 중심으로 행한다. 매의 발톱이 날카롭기 때문에 보라매를 받아드는 매꾼은 팔뚝에 두툼한 토시를 끼고, 그 토시 위에 매를 받아들고 사방이 잘 내다보이는 산마루에 오른다. 몰이꾼과 털이꾼들이 ‘우·우·’ 소리를 내면서 산줄기 나무숲을 훑어서 꿩을 퉁긴다. 어디서 꿩이 날아오르면 산마루에서 목을 지키고 있던 매꾼은 보라매가 날아가는 꿩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하고 나서 매를 떠나 보낸다.
‘매나간다’고 매꾼이 소리 지르면 몰이꾼들은 방울 소리를 듣고 매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간다. 험준한 산줄기를 타고 넘고 골짜기를 허겁지겁 건너 질러 쫓아가다가 방향을 모르게 되면 잠시 귀기울여 보라매의 방울 소리를 찾아 듣는다. 이때는 아무리 숨이 가빠도 쉴 여유가 없다. 일각이라도 속히 매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가 꿩을 잡았을 때는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꿩 등 위에 올라타고 앉아서 표독한 주둥이로 꿩의 머리를 쪼거나 눈을 뽑아내는데, 그럴 적마다 꿩이 고통에 못 이겨 꿈틀거리면 매의 빼깃에 달린 방울이 가볍게 울리곤 한다. 사냥꾼이 일찌감치 도착하면 매의 발 밑에 깔려 꼼짝달싹 못하고 살아 있는 꿩을 그대로 빼앗아 낼 수 있지만, 웬만큼 늦어지면 벌써 꿩은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깨져서 죽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아주 늦으면 아무리 길들인 육지니라도 잡은 꿩을 포식하고 제멋대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기 때문에 매가 꿩을 먹기 전에 찾아내야만 한다. 꿩을 덮친 매를 발견하면 매꾼은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 속에서 닭의 넓적다리를 꺼내어 매에게 먹이면서 잡은 꿩을 가로채 낸다. 그리고 다시 보라매를 토시 위에 받아 올려 한쪽 다리목에 잡아맨 짧은 끈을 감아쥐고는 닭고기를 더 먹이지 않는다. 매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안하거나 달아나 버리기 때문에 항상 허기지게 먹이를 많이 먹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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