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찾아올 때마다 뜨거움을 안겨줬던 여름이 내년을 기약하며 우리 곁은 떠나갑니다. 그리고 개구쟁이 같던 여름이 떠난 자리에 가을이 찾아듭니다. 가을. 참 곱고 예쁜 단어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기분 좋은 가을이란 말이 살며시 데리고 온, 오랜 친구가 바로 ‘추석’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우리 조상들은 삼국 시대부터 ‘가배(嘉俳)’라고 하여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춤과 노래 및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만, 무엇보다 추석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건, ‘가족’ 아닐까요? ‘추석’에 가족이 모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요, 이번 선인의 일기, 한 편의 영화를 만나다 에서는 가족의 의미를 다룬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김택룡의 조성당일기(1616-08-14~1617-08-15)에 기록된 일기를 살펴보면, 노학자가 바라본 추석의 풍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성묘와 벌초, 그리고 제사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일기 속엔 이런 일상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1617년 8월 15일, 김택룡은 외조부모 제사를 상방(上房)에서 지냈고, 수록동(水綠洞)에서 벌초를 생질 정득 · 조카 김형 ·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洞)에 올라가 선조 무덤에 잔을 올려 절하고, 또 제물을 나누어 영해 장인 산소에도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제물을 요절한 손자, 손녀 무덤에도 뿌렸으며, 술과 과일은 같이 간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해질 무렵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기의 주된 내용을 외조부모 제사에 관한 이야기이나, 그 이야기 속엔 생질과 조카, 손자 그리고 가족들이 제사와 성묘를 지내기 위해 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사와 성묘는 가족을 모으게 만드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사와 성묘라는 우리 전통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가족이 있다면, 참으로 대척점에 있는 오묘함이 가득한 현대의 한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두 가족의 이야기 중, 첫 번째 가족인 미라의 가족들이죠. 짧은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러합니다.
미라의 동생 형철은 5년 동안 소식 없다 불현듯 20살 연상녀 무신을 데리고 누나 미라를 찾아옵니다. 미라는 동생 형철과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 무신과의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얼마 후 무신의 전 남편과 딸이 나타나고, 미라와 무신과 무신 전 남편의 딸이 한 집에 같이 살게 되지요. 그리고 미라는 남동생을 통해 알게 된 세 명의 여자들과 가족이 됩니다. 남동생을 제외한 채... 마지막 장면에, 그 남동생, 형철이 다시 10년 만에 누나 집에 찾아오는데, 미라는 그 남동생을 쫓아냅니다. 그녀에게는 피를 나눈 남동생이 아니라,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무신씨, 또 무신과는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딸아이, 채연이가 그녀의 가족입니다.
두 번째 가족은 선경의 가족입니다. 선경의 어머니는 어떤 유부남과 오랜 불륜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는데요. 그런 어머니와 사이가 나쁜, 집을 나와 사는, 선경은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녀의 애인사이에서 낳은 남동생과 남은 인생을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라의 가족 중, 얼굴도 예쁘고 맘도 예쁜 채현과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 경석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얽히고설킨 일곱 명의 ‘가족 관계’가 드러나면서 이들은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을 하는 순간이지요.
현대에 가족의 의미는 혈연적 관계보다 경제적 관계로 변질되거나, 사회적 관계처럼 서로를 소외시키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도 종종 상실되고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한 핏줄을 나누고 있다고 해서 가족의 온전한 의미를 다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혈연관계에서 벗어나 입양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동거의 형태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생겨나는 새로운 모습을 통해 ‘가족’ 혹은 ‘가정’이란 것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족의 탄생’은 해체된 가족이 또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재창조 되어가는 ‘대안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속된 말로 ‘콩가루 가족’처럼 여겨지는 이들은 어느 ‘정상적’인 가족보다 더 가족의 필수적인 요소, 즉 ‘사랑’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가 상실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는 시점에서 회복해야 할 가족의 가치는 무엇이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접근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집합이며, 혼자 살건 둘이 살건 혹은 핏줄로 얽혀 있던 그렇지 않던 가족의 의미를 충실히 수행하면, 그것이 최고임을 일깨워줍니다. 조선의 대가족, 그리고 현대의 대안 가족. 모두 사랑이 바탕이 된 가족입니다.
1621년 8월 15일. 밤이 깊어지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닦아놓은 것 같았는데 거울처럼 달빛이 교교하였다. 인간세상의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것 또한 어찌 이와 같지 못할까.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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