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의 담화 22
작가소개
- 정용연
- 68년생.
작가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그린 "정가네소사" 1,2,3 권이 있고
현재는 고려말 제주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다룬 "목호"출간 준비중
“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하다”
황사우, 재영남일기, 1519-03-04 ~ 1519-11-15
1519년 3월 4일, 상산. 조정에서 경상도에 황산곡(黃山谷) 문집을 반질(頒帙) 간행하게 하였다. 도호부인 상주·대구·안동·진주 네 곳을 선정하고, 아울러 차사원을 정해 친히 교정하게 하였다. 관할 각 관청의 각수들에게 맡겨 시행하도록 하였다.
1519년 8월 30일, 상주. 전 감사 한세환에게 편지를 써서 예방을 통해 부치고 『태평통재』 1건(件) 41책을 보냈다. 또 최경앙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주례(周禮) 1건 6책을 보냈다. 역시 예방을 통해 부쳤으니, 답장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책 상자와 띠 상자는 감영에 남겨두었다.
“세상을 떠난 어진 학자,
남겨진 자들이 그 흔적을 모으다”
김령, 계암일록, 1621-02-26 (윤) ~ 1624-11-27
1621년 윤2월 26일, 비가 내렸다. 김령은 친지들과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안동으로 갔다. 김령의 여러 벗들이 향교 재사에 모여있었는데, 한강(寒岡)의 편지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평생을 학문연구에 전념하였고, 1617년에는 인목대비를 서인(庶人)으로 쫓아내지 말 것을 주장하였던 그는 1620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향중 선비들이 그를 기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강의 편지를 모으는 작업은 6월까지도 계속되었고, 이듬해 7월에도 모은 편지를 편집하고 베껴쓰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서적의 개인 출판을 권유받다”
문해구,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1803-03-27 ~
1803년 3월 27일, 문해구(文海龜)는 해인사에서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선배인 정국채(鄭國采)와 만났다.
대화의 내용은 자연스레 학문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정국채는 문해구에게 서적 간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국채는 개인적으로 비용을 조달하여 『전심록(傳心錄)』 간행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국채는 『전심록(傳心錄)』을 간행하여 성균관(成均館), 혹은 향교(鄕校)의 선비들의 공부하는 데 쓸 교재로 제공하려고자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