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괴이한 소문으로 시작되었다.
사람의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는 괴이한 소문.
민심이 흉흉할수록 이상한 이야기들이 떠돌게 마련이다.
가뭄 탓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어린 벼가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각박할 수밖에 없었다.
먼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논바닥에 퍼부을 때만해도 곧 비가 내리겠지, 생각했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지면서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때는 장마가 시작될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장마철이 됐는데도 비는커녕 햇볕만 뜨거웠다.
“가뭄이라고 해도 이런 가뭄은 내 평생에 처음이네.”
황 영감은 가쁜 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함께 걷고 있던 박 영감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산나물이라도 뜯을 게 있나 싶어서 아침부터 둘은 산에 오르는 길이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황 영감은 아침에 며느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내려던 참이었다. 동틀 무렵 빨래터에 나갔던 며느리가 아침상을 물리면서 들려 준 이야기였다.
“이제 웬만한 이야기로는 꿈쩍도 안하네. 또 어디서 무슨 소릴 들은 겐가?”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지난해부터 믿기 어려운 이상한 이야기들이 마을에 떠돌았다. 한성부 어느 사대부집에 있는 연못이 아무 이유 없이 펄펄 끓었다는 이야기며, 강원도에서는 얼굴만 한 우박이 내렸다고 했다. 한강에서는 물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뒤집은 채 물 위로 떠올랐다고. 그 뿐인가 까투리가 장끼로 변했는가 하면, 다리가 다섯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대개 그런 이야기들이란 떠돌아다닐수록 점점 커지게 마련이고, 걷잡을 수 없이 덧붙여져 결국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 글쎄, 사람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는군.”
황 영감은 저절로 목소리가 작아졌다. 차마 입에 담기 끔찍한 일이라 행여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될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 소문은 이미 박 영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그 소문을 듣는 것처럼 황 영감에게 되물었다.
“아니, 사람 쓸개를 모은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건 사람을 죽여야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러게. 며칠 전에 성천사(聖泉寺) 탁발승이 절로 돌아가는 중에 풀 숲 속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는군. 손발이 묶인 채 버려져 있었대.”
“그 아이가 누군데?”
“이시(李蒔)의 종이었다는군.”
“외천에 사는 이조관의 아들 이시 말인가?”
박 영감은 이조관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렇다네. 발견할 당시만 해도 숨은 붙어 있었는데 곧 죽고만 모양이야.”
계곡 옆 바위에 자리를 잡고 박 영감이 먼저 앉았다. 좀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더 해괴한 건, 나중에 혹시나 하고 시신을 확인해봤는데 쓸개가 없었다는군.”
“그럼, 사람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단순히 과장된 소문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황 영감이 들은 이시의 종, 순심이의 죽음은 이러했다.
얼마 전, 외천(外川)에서 짠 맛이 나는 우물이 발견되었다. 한 아낙네가 바위틈에서 나온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짰다. 사람들은 ‘왕의 우물’이라는 초정(椒井)이 또 하나 발견된 것이라며 떠들었고, 그 우물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간에 가까운 고을로 퍼져나갔다.
이시의 아내는 아침 일찍 어린 종 순심이를 불렀다.
“온계(溫溪)에 좀 다녀와야겠다. 어머니께 외천 우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목욕하러 오시라고 전하거라.”
초정이 발견됐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이시의 아내는 오랫동안 종기로 시달리고 있는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오늘 말입니까?”
“하루라도 빨리 갔다오는 게 좋지 않겠느냐?”
순심이는 곧장 길을 나섰다. 온계까지는 그동안 마님의 심부름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한 적이 있었다. 온계의 마님 친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난 뒤였다. 초정에 대한 이야기며, 꼭 한번 목욕하러 오시라는 마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해지기 전 외천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했고, 순심이는 밥 한 술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길을 나섰다.
작은 고개를 오르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패랭이를 쓴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등에 큰 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 짐 탓인지 오르막을 오르는 걸음이 힘겨워 보였다. 남자는 손짓으로 순심이를 불러 세웠다.
“얘, 웬 걸음이 그리 빠른 게냐? 호랑이라도 쫓아오더냐?”
남자는 순심이에게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그렇게 말했다.
“생강장수시죠?”
“그걸 어찌 알았느냐?”
“개는 아니지만 이렇게 생강 냄새가 많이 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길이 외천으로 가는 길 맞냐?”
“외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이 길 뿐입니다요.”
이렇게 해서 생강 장수와 이시의 어린 종 순심이는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고개 마루를 거의 다 올라 둘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생강장수는 짐 속에서 주먹밥 두 덩이를 꺼내 하나는 순심이에게 건넸다. 마님의 친정집에서 밥을 먹었지만 허술한 보리밥이었다.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순심이에겐 생강장수가 준 밥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순심이가 그 주먹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었다. 생강장수는 부스럭거리며 짐을 뒤지더니 수건을 꺼냈다. 곧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눈치 채지 못하고 순심이는 아직 입안에 남은 주먹밥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다음 순간,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하던 생강장수가 갑자기 수건으로 순심이의 입을 막고, 허리끈을 풀어 발을 묶었다. 대님으로 손도 묶었다. 그리고는 순심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날 순심이는 외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풀숲에서 성천사 탁발승에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 몹쓸 생강장수는 그래 어찌 되었다고 하던가?”
풀숲에서 고통스럽게 하룻밤을 보냈을 어린 계집애를 생각하니 그 아이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박 영감의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졌다.
“그 계집종이 숨이 끊어지기 전에 스님에게 생강장수에 대해 말했다는군. 머리털은 반은 세었고, 패랭이를 포개 쓰고 있었다고.”
“그래 잡았다던가?”
“우리 현을 지나는 생강장수를 모두 잡아 가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의 머리털이 반쯤 세어 있었다는군. 그리고 그 자의 짐에서 말린 쓸개가 무더기로 나왔고.”
“흠…….”
“그런데 그 쓸개를 어디다 쓰려했는지 들으면 더 기가 막힐 걸세?”
“곰 쓸개를 약재로 쓴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람 쓸개는 대체 어디에 쓴단 말인가?”
“그 곰 쓸개 대신 약재상에 팔아먹는다는군.”
“허허.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박 영감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람의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는 끔찍한 소문이 사실일 줄을 몰랐다.
“이게 다 백성들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아전들 때문이 아닌가?”
황 영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뭄 탓에 올해 농사도 뻔한데 가을이면 관아에서 세금은 세금대로 거둬 갈 거고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뭔 짓인들 못 하겠나.”
날로 흉흉해지는 민심에 불안했지만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볼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산나물을 뜯으러 가는 것도 잊고 멀리 누렇게 변한 논을 내려다봤다.
바짝 타들어가는 어린 모가 풀숲에서 죽어가던 순심이처럼 보였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인심도, 인정도 금이 간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무심하게 하늘은 그날따라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이 글은 김령이 쓴 <계암일록>에 기록된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어떤 소문은 그 진원지가 모호하고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어떤 소문은 사실인 경우도 있다. ‘사람의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는 이 괴이한 소문은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사람의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과거시험이 이틀 후로 정해졌다는 잘못된 소문으로 수험생들이 시험장에 갔다가 헛걸음을 한 이야기, 다리가 다섯 달린 송아지가 태어난 이야기, 얼굴이 여섯인 물고기가 잡힌 이야기, 100년 동안 넘어져 있던 나무가 저절로 다시 살아난 이야기 등 그 당시에도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그 소문들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이런 괴이한 소문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고 백성들의 삶이 팍팍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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