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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소문, 그에 관한 오해와 진실

김용범

계절은 바야흐로 여름의 한복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장맛비가 걷히고 나면, 산천은 녹음이 시리도록 짙어질 것이고, 도시는 이글거리는 불볕더위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게 되겠지요. 이러한 계절 변화는 대체로 일정한 편이어서, 해마다 우리는 그 변화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도 하고 대비도 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의 인간 사회는 실로 변화무쌍하여, 예측하고 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에만 해도 멀리 유럽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하여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고,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극단적인 광신자들에 의한 테러 사건이 벌어져 사람들의 분노와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도 정치권과 경제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소동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의 이러한 변화 양상은 그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어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그 전달이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한 개인 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가 나오기도 전에 중요한 소식을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매스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의 전통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사회 변화의 소식이 대부분 구전(口傳)을 통해서, 다시 말해 입에서 입으로 말로 전달되는 ‘소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소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세상의 동향을 알 수 있었으며, 그에 입각해 앞으로 사회 환경이 어떻게 변화될지를 예측하고 또 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말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소문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과 오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소문과 관련하여 통용되는 일반적인 오해를 크게 두 가지 꼽자면, 하나는 소문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전파된다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소문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헛소문일 것이라는 통념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정보의 전달은 절친한 친구 관계에서보다 그냥 아는 지인 관계에서 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절친한 관계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요. 그러므로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소문의 내용은 놀랍게도 대부분 헛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신문과 방송 같은 오늘날의 신뢰할 만한 정보 전달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소식도 때로는 오보로 판명나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근거 자료 없이 이른바 소식통을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그러합니다. 전통 시대나 오늘날이나 시중의 소문에 근거 자료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외국의 어느 학자가 조사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업 집단에서 떠도는 소문의 경우 75% 이상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이 헛소문일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이 소문의 이러한 측면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리 테마파크 웹진 ‘담談’ 이번 호에서는 전통 시대의 정보 전달 과정인 소문을 주제로 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두 편의 커버스토리에서 먼저 표정훈 평론가는 당시 선비들의 일기에 기록된 소문의 내용과 그 시대적 의미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진 작가는 그 중 한 가지 기록을 스토리 소재로 활용하여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게 하는 작품으로 형상화해 주셨습니다.

이승훈․장순곤 작가는 연재만화 <요건 몰랐지>의 다섯 번째 ‘소문’ 편에서 1846년 프랑스 선박의 정박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을 만화로 풀어 주셨습니다. 이외숙 작가는 연재소설 <연풍신부>의 제5화 ‘검안서를 확인하다’를 이다 작가의 삽화와 함께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상호 박사의 해박한 지식과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선인의 일기로 보는 ‘그날’>의 5회째 칼럼이 계속됩니다.

한편 지난 5월 19일에는 해외에서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550점의 편액이 제7차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 총회를 통해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등재로 인해 한국은 세계 기록유산 13개, 아‧태 기록유산 1개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한국국학진흥원은 그 중 세계 기록유산(유교책판)과 아‧태 기록유산(편액)을 각각 1개씩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스토리 이슈>의 지면을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 얼굴이 여섯인 물고기가 잡히다 ”

정경운, 고대일록,
1606-06-20 ~
1606년 6월 20일, 황해도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잡혔는데, 몸에는 얼굴이 여섯 개 있고 눈은 마치 소의 눈과 같고, 길이가 10척쯤 되니, 장계(狀啓)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 흉흉한 괴소문, 사람의 쓸개를 모으는 자들이 있다! ”

김령, 계암일록,
1607-05-20 ~ 1607-07-23
1607년 5월 20일, 근래 서울과 지방에서 그릇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어리석은 백성들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람의 쓸개를 모은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5월 28일, 최근에 사람의 쓸개를 모은다는 헛된 소문이 파다하여 길을 갈 때는 반드시 무리를 이루어 가고, 한두 사람은 감히 길을 가지 못한다니 또한 괴이한 일이다.

“ 흥해군수가 환곡의 책임을 물어 양민 유부녀를 잡아들여 간통하고 죄를 덮어씌우다 ”

조재호, 영영일기,
1751-07-09 ~
1751년 7월 9일, 흥해군수(興海郡守) 이우평(李字平)이 지난 해 10월에 흥해군(興海郡)에 사는 전 도훈도(前都訓導) 서원석(徐元石)의 아내인 양민(良民) 잉질낭(芿叱娘)이 환곡(還穀)의 책임을 지고 흥해군청(興海群聽) 뜰에 잡혀 들어왔을 때 그 용모(容貌)에 반했다가 올해 4월 그녀의 남편이 출타(出他)한 때에 환자의 책임을 빌미로 잉질낭을 잡아들여 하옥(下獄)시키지 않고, 동헌(東軒) 옆에 있는 곳간에 가두어두고는 밤을 틈타서 남 몰래 간통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추악한 소문이 드러나자 그 흔적을 숨기고자 몰래 읍내(邑內)에 사는 심복(心腹) 의원(醫員) 김억세(金僚世)에게 부탁해서 잉질낭이 집에서 음란한 짓을 한 것처럼 이웃에 사는 눈먼 여인인 정소사(鄭召史)를 시켜서 관가(官家)에 고소하도록 하고 속공노비(屬公奴婢)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면서 동헌(東軒)에 유치(留置)하여 남편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개탄(慨歎)하여 원근(遠近)에 모두 전해지게 되었다. 이에 조재호가 원석(元石) 부부와 연루된 개개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와 친히 조사하고 심문하니 이우평이 겁을 주어 잉질낭을 간통한 사정이 평문(平問)에도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

“ 잘못된 소문, 맘 급한 수험생들을 헛걸음시키다! ”

김령, 계암일록,
1622-02-16
1622년 2월 16일, 과거시험이 이틀 후로 정해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을 믿은 수험생들은 허둥대며 행장을 갖추고, 풍기(豊基)의 시험장으로 갔다. 그러나 김령은 이 소문이 헛되고 망령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원래 2월 18일로 시험이 정해진 것은 맞았으나, 나라에 일이 많아 제대로 시행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험을 물린다는 명령 또한 내려오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잘못된 소문이 퍼져 젊은이와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같이 우스운 꼴이 되었다.

“ 별난 모양의 불란서 선박에 대해 떠도는 소문 ”

서찬규, 임재일기,
1845-08-03 ~ 1847-07-22
1845년 8월 3일, 서찬규는 제주와 통영의 접경에 별난 모양의 선박이 들어와 정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846년 7월 28일에는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지난 5월, 충청도 홍주 외연도에 별난 모양의 선박이 와서 정박하고 작은 궤를 하나 전했다고 한다. 그 배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더니 불란서에서 왔다고 했다 한다.
궤의 길이는 8촌 남짓으로, 장식은 없고 흰 당지로 바깥면을 발랐는데, 거기에다 전서체로 ‘고려보상대인고폐(高麗輔相大人高陛)’라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묻고 답한 것이 많았다고 한다.
서찬규는 1847년 7월 22일에도 불란서 배와 관련된 소식을 들었다. 호남에서 영남 감영에 보낸 문서에, 6월 그믐에 돛 세 개를 단 유별난 모양의 배 두 척이 표류하다가 부안현에 도착했는데, 불란서 배라고 했다.
또 도착한 문서에 의하면, 그 이상한 모양의 배는 풍랑에 파손되어 죽은 사람이 많고 산 사람도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남은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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