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모임 속에서 살아간다. 동창회·동호회·향우회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모임의 일원으로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기념사진을 남기고 명단을 만들며 단체 메시지를 공유한다. 너와 나를 연결하는 동일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공통점은 관계의 시작이 된다. 운동 동호회나, 북클럽, 팬덤이나 커뮤니티 그룹, 직장인이 걸고 다니는 회사의 명찰이나 대학생의 과잠까지, 모두 자신이 소속된 집단, ‘우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함께할 때 안도감을 느끼며, 그 집단 속에서 ‘나’를 다시금 확인한다.
우리는 왜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어 할까? 타인과 같은 집단에 머물며, 어딘가 소속된 것에 안도를 느끼는 이 성향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0)에서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다정하게 행동하는 존재’로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읽고 유대를 맺으며, 심지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련의 행동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 사회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낯선 개체를 만나도 그가 ‘우리 편’이라고 느껴지면 기꺼이 도우려고 하는데, 이는 ‘우리’라는 범주를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사헌부 감찰관원의 계회를 기념하여 기록한 《이십삼상대회도(二十三霜臺會圖)》.
현존 계회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출처: 경기도박물관)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러했다. 서로를 ‘우리’로 호명하고자 했던 흔적은 ‘계회(契會)’라는 문화적 양식을 통해 발견되며, 다양한 이름으로 구체화되었다. 같은 해에 태어나면 동경(同庚), 과거에 급제한 연도가 같으면 동년(同年), 고향이나 거주지가 같으면 동향(同鄕), 같은 관청에서 일하면 동관(同官)이라고 부르며 모임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통점을 통해 조성된 계회는 주로 야외에서 술과 시 짓기를 동반한 회합을 가지며 관계의 지속을 꾀했다. 또한 모임의 장면을 화폭에 담아 기념하였는데, 이 그림의 하단에는 계회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 함께 수록되었다. 경우에 따라 계회를 기념하는 시나 글이 부기되기도 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계회는 너와 나의 공동 인자를 발견하고, 이것이 유발하는 유대와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적 장치였으며, 동시에 관계의 윤리를 공고하게 만드는 문화의 장(場)으로 작동했다.
〈이색 초상〉 (출처: 국가유산청)
계회의 흔적은 고려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동년(同年)이라는 개념은 원나라에서 유입된 문화로 추정된다. 원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곡(李穀)과 아들 이색(李穡)의 문집을 살펴보면 원나라의 동년들과 주고받은 상당한 양의 시문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들과 맺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색이 전하는 아래의 일화에서 우리는, 동년이라는 집단이 대를 이어 전해질만큼 지속성이 있는 강력한 우호 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관례를 치른 다음 해에 벽옹(璧雍: 원나라 국자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주역(周易)』은 우리 집의 가학이었음에도 미처 배우지 못했었다. 그때 마침 돌아가신 아버지의 동년(同年)인 우문자정(宇文子貞: 우문공량) 선생이 학관으로 벽옹에 부임하였다. 이에 내가 곧장 찾아뵈고 나아가 스스로 청하였다. “저는 고려 이가정(李稼亭: 이곡의 호)의 불초자식입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중보(中甫: 이곡의 호)야말로 『주역』에 밝은 사람으로, 내가 경외하는 이라네. 자네는 아직 어리니 자네 부친이 미처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일테지. 동년의 아들은 나의 아들과 같으니, 내가 자네를 가르치지 않으리라는 걱정은 말게.”
-이색, 「박자허정재기(朴子虛貞齋記)」, 『목은문고(牧隱文藁)』-
이를 통해 보면 동년은 단순한 과거 급제 동기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혈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후기에는 이와 유사한 사회적 혈연관계가 또 하나 존재했는데, 바로 과거제도를 통해 형성된 은문(恩門) 관계이다. 고려시대에 과거급제자는 자신을 선발해 준 지공거(知貢擧)를 좌주(座主)라고 부르며 그의 문생을 자처했으며, 문생이 좌주를 대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으로, 같은 지공거를 둔 문생은 형제 관계에 비유하며 끈끈한 연대를 자랑했다. 이렇게 형성된 좌주와 문생의 관계는 사적 유대에 그치지 않고 왕명에 우선할 만큼 정치와 사회 구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요인이 되며,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야기되었다.
조선은 고려로부터 계회의 전통을 물려받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달랐다. 태종은 고려의 동년계나 은문관계가 사적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정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로, 이를 경계하기보다 영리하게 활용하였다. 정안대군 시절 태종은 자신과 나이가 같은 신진 관료 20여 명과 ‘정미갑계(丁未甲契)’라는 동경계를 조직하고 삶과 죽음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맹세를 하며 이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과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1392년에는 왕륜동에서 충효계를, 1401년에는 좌명공신과, 1404년에는 삼공신과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계회를 조직한다. 이때 서술되는 계회는 유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학문 및 정치 공동체로, 여기에서 조성된 연대의 방향은 국가와 군주를 향해 있었다. 즉 사회적 혈연으로 조직되었던 고려의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차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지금 계를 만드는 뜻이 어찌 단지 편안히 놀고 연회나 즐김을 말하겠는가? 장차 위로는 군주를 돕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구하여 신하의 직분을 힘써 다하고자 할 뿐이다. 이에 태어난 일시에 따라 좌차(坐次)를 정한다. 무릇 동계(同契)는 덕행을 면려하고 과실을 바로잡으며 신의를 돈독히 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 것이니, 꿈속에서조차 먼저 베풀어 혹여 친우를 뒤로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첨(李詹), 「병오갑계문(丙午甲契文)」, 『쌍매당집(雙梅堂集)』-
〈김준근이 그린 신참례 모습〉 (출처: 우리역사넷)
조선 건국 이후 가장 활발하게 조성되었던 계회는 동관(同官), 즉 각 관청에서 열린 계회이다. 관청 계회는 16세기까지 성행했는데 초기에는 사헌부의 감찰과 육조(六曹)의 낭관을 주축으로 하는 계회가 주로 시행되었다. 관청마다 계회의 조성 이유에는 층차가 있지만 하급 관원이 주참여자인 계회는 대개 신입 관료에 대한 신참례(新參禮)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신입 관료들은 신귀(新鬼)라고 불리며 다소 가학적인 절차를 어렵게 거치고서야 해당 관서의 식구로 받아들여졌는데, 정식으로 신귀에서 벗어났음을 인증하는 자리인 면신례(免新禮)에서 계회가 조성되었다. 신입 관료들은 마지막 절차로 선배 관원과 한강 변과 같은 야외에서 주연을 가지며 긴장을 이완하고, 계회의 정경을 그림에 담아 계회도를 만들어 선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591년 제작된 《총마계회도》. 하단에서 참여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국가부여박물관)
그림의 하단에는 계회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과 간단한 신상정보를 부기하여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해당 관청의 장을 맡고 있거나 역임했던 사람에게 해당 계회도를 보여주며 이를 기념하는 시나 글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후배이자 후임 관료들을 향한 격려와 응원의 언사가 담겨있다. 이로 보면 관청의 계회와 계회도의 제작은 개인에게 집단으로의 소속감을 부여하고 관청의 정체성을 체현하게 하는 과정으로, 가문·지역· 학맥과 같은 사적인 요소를 벗어나 국가가 부여한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의 자아와 여기에서 파생된 관계를 실감하게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계회시는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의 자아를 일련의 상징물로 표상하고, 정서적인 분위기를 환기하며 계회 구성원들 사이의 공감을 조성하였다.
당대의 스물넷 대관들은一時二十四臺官
빙설 같은 얼굴에 철석같은 심장을 가졌다네氷雪容顔鐵石肝
알리노니 조신들은 모름지기 일찍 피해야 하리爲報朝臣須早避
총마 탄 어사 환전의 후예이니乘驄御史後身桓
여러분이 담소 나눌 때는 기세가 천둥 같고諸君談笑氣如雷
신귀 부르는 소리는 어사대를 울리네呼鬼聲高動柏臺
절로 우습구나 예전의 늙은 대사헌인 나는自哂舊時老憲長
그림 펴고 나도 모르게 거듭 눈을 닦노라披圖不覺眼重揩
-서거정(徐居正), 「제총마계축(題驄馬契軸)」, 『사가시집(四佳詩集)』-
15세기 서울의 중앙 관서를 중심으로 성행하던 관청 계회는 16세기에 이르면 사옹원·사복시· 관상감·상의원·평시서·활인서 등과 같은 하급 관서 및 지방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며 문화적 전범으로 확립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이자 공적인 공동체로 기능하던 관청 계회는 임진왜란 이후 점차 그 실효성을 잃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계회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 형태 또한 변화를 맞는다. 계회의 주체는 점차 관청이라는 공적 연대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자발성과 감정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사적 모임으로 옮겨 간다. 17세기 이후 등장하는 시사(詩社)나 아회(雅會)의 등장은 더 이상 나이나 과거급제, 관직 같은 사회에서 부여한 외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정서의 동질성을 중심으로 계회가 조성되던 경향을 보여준다.
〈이안눌의 문집에 기록된 「사동계회도(四同契會圖)」〉 (출처: 디지털 장서각)
17세기의 문인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의 「사동계회도(四同契會圖)」의 서문에서 이러한 계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남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사인 동악시단(東岳詩壇)의 주축이기도 했던 이안눌은 계원의 생년·급제 시기·급제 등수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에 급제했다는 4가지 공통점을 언급하며 계회 조성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이 곧바로 진정한 연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금 이 세 사람은 우연히 4가지가 같았기에, 이를 계(契)의 근거로 삼아 ‘사동(四同)’이라 이름 붙였다. 같은 점이 4가지이니, 같다고 하면 분명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음은 내가 같다고 여기는 바가 아니다. 내가 같다고 여기는 바가 같지 않다면, 내가 같다고 여기는 바가 아닌 것으로 인한 같음을 과연 진정한 같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내가 같다고 여기는 바’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 먼저 같아진 이후에야 그 4가지 같음 또한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바라나니, 그대들은 각자 그 자신을 자신답게 하면서 그 같음을 같게 할지어다!
-이안눌, 「사동계회도(四同契會圖)」, 『동악집(東岳集)』-
이안눌에게 중요한 것은 우연에 의해 조성된 공통분모가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를 지키며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마음을 함께하는 태도였다. 그는 집단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적인 인식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동체에 임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계(契)’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우리’라는 말이 갖는 연대는 조건의 동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동일성과 상호 존중 위에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안눌의 말은 오늘날 우리가 맺고 있는 ‘함께함’의 형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하려는 성향은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의 아이는 가장 먼저 상대의 눈빛과 손짓을 읽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진화했다. 이처럼 구성된 집단은 나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안전한 둥지가 되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순간 반드시 우리가 아닌 타자가 생겨난다. 집단성에 매몰되는 순간, 우리는 협력과 연대가 아닌 집단의 부속으로 휘둘리며 타인을 향한 혐오와 배제를 손쉽게 정당화하게 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외부 집단을 향한 공격성과 비인간화가 갈등을 촉발하고 격화시키며 결국엔 인간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그 대안으로 접촉에 의한 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접촉이란 결국 그곳에도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채고, 그 존재에 마음을 기울이는 행위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안눌의 말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답게, 그리고 같음은 같음대로. 느슨하지만 다정한 연대. 그런 점에서 최근 광장을 수놓았던 응원봉의 물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폭력과 욕설 대신 반짝거리는 응원봉을 쥐고 저마다 다른 ‘나’들이 손을 잡고 연대했던 순간들. 배제 없는 ‘우리’의 가능성을, 그 안에서 새롭게 희망해본다. 함께 한다는 것은 결국 너에 기대어 나의 체온을 나눈다는 것이므로. 인간은 그렇게 다정함으로 살아남아 왔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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