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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덤의 세계:
공연의 기억을 간직하는 방법

덕후, 그리고 팬(Fan)의 세계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다양한 행위를 내포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감각이지만, 이를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행위의 수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더 ‘좋아하기’ 위해 발생하는 실천의 영역에 가깝다. 당신은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 위해 어디까지 해봤는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행동하게 되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에, 열정적으로 어느 한 곳에 사로잡혀 이러한 실천적인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걸 덕후, 전문 용어로는 팬(fan)이라고 부른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팬’을 찾아보면 “특정 활동이나 공연자에게 헌신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팬은 다양한 개인이나 집단을 가리키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범주로 포괄하기 힘든 특징을 갖는다. 관객일 수도 있고, 마니아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브랜드 소비자라고도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좋아하는 행위의 범주를 꾸준히 실천하고 넓혀나간다는 점이다. 특히 적극적인 팬 실천을 수행하는 층위에서 그들은 소비자이거나 네트워크를 활용자, 수집가, 늘 이동하는 주체이자, 큐레이터이고 (2차 혹은 더 다수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진 팬의 수행성은 어디까지인가. 다른 건 몰라도 팬들의 세계는 한 번쯤 경험해(봤거나) 볼만한 것임은 틀림없다.




팬은 실천이다


그렇다면 팬의 탄생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기본적으로 적극적인 팬 수행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가 모토다. 미디어의 발달로 말미암아 기술적인 측면에서 콘텐츠 제작이 일반인들에게 용이해지면서,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셀럽의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한 팬 활동 목록에 다양한 것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것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것 또한 팬 실천의 일부이다. 심지어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다양한 활동의 가이드라인과 정보를 제공하고, 직접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을 제일 잘 아는 집단 중 하나가 ‘팬 커뮤니티’다. 그들은 하나의 전략가로 자신을 위치 짓는다. 팬으로서의 주체성은 ‘내 셀럽 혹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위한 자신의 행위 하나하나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심지어 유튜브에 올라오는 팬 대상의 영상 스트리밍 수 하나, 인스타그램의 하트 찍는 것 하나, X(트위터)의 리트윗 개수 하나도 전부 수치화되어 인기의 척도로 활용된다. 팬들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팬 대상의 대중적 인기 척도에 수치화되어 카운트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주최하는 ‘신진 스토리 작가 육성 지원 사업’ 쇼케이스의 한 장면〉 (출처: otr.co.kr)


이 덕분에, 팬들은 자신이 후원하거나 열광하는 셀럽 혹은 콘텐츠가 어떤 식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케이팝 아이돌의 경우 앨범 판매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공연이나 쇼 케이스 홍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기획사보다 팬들이 먼저 고민하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팬들은 그들의 구상을 디자인하고 시각화하는데 기획사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을 보이기도 한다. 팬들은 홍보 동영상이나 소셜 미디어 노출을 위한 해쉬태그 이행을 꾸준히 실천하며 점차 팬 대상의 사회적 명성 획득에 전략적인 참여를 보인다. 여기서 이용되는 영상이나 이미지는 기존 방송 콘텐츠일 가능성도 있지만 팬들이 직접 찍거나 제작한 것도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전략들은 꾸준히 팬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 차를 보이며 노이즈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팬 문화가 한국에서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팬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하나의 미디어 전략가이자 2차 생산의 크리에이터로 주체화하고 이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팬 활동에 있어 윤리적 가이드를 정하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셀럽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거리 두기를 지속한다던가, 팬덤 내부에서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유사연애대상으로서의 행위를 저지하고 금지하는 것도 팬들 자신이다. 팬 활동에 대한 의견차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서로 논의되며 성장하는 과정은 사회의 단면을 압축시켜 보는 것 같다.

『컨버전스 시대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유명한 미디어 연구가 젠킨스도 자신의 저서인 『스프레더블 미디어』 (Jenkins, H., Ford, S., & Green, J. (2013). Spreadable media: Creating value and meaning in a networked culture. NYU press.) 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팬 커뮤니티와 정치적·종교적 집단은 서로 유사한 형식으로 자신의 아젠다를 전도한다고. 팬덤은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소멸되기도 하고, 다시 부활하기도 하며, 어느 순간 크게 성장하여 스스로를 주체화하기도 한다.




뮤지컬 팬덤의 세계 : 휘발하고 사라지는 무대를 붙잡는 힘



〈연극·뮤지컬 관람을 즐기는 덕후를 뜻하는 ‘연뮤덕’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위의 그림처럼 ‘덕질력’을
확인할 수 있는 빙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출처: 구글 ‘연뮤덕’ 검색 결과)


세상에는 다양한 팬 대상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케이팝 아이돌의 팬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팬이라는 용어가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케이팝 아이돌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덤의 세계는 넓고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뮤지컬 마니아, 즉 뮤지컬 공연 팬덤은 독특한 팬 문화 영역을 소유하고 있다.

공연은 라이브니스, 즉 실황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번의 공연이 완벽하게 반복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온라인 중계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공연의 라이브니스를 향유하는 뮤지컬 팬들의 경험은 매개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이 때문에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은 미디어 기술로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서 ‘복제가 되지 않는’ 팬 대상을 갖고 있다는 문화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반복적인 공연 관람 경험을 시도하는 독특한 집단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뮤지컬 산업에서 같은 공연을 반복적으로 관람하는 이용자는 팬 문화 생산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그들은 공연을 보기 위하여 반드시 극장 안으로 이동을 해야 하며, 그 무대를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휘발되는 공연 기억의 소환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은 팬들에게 적극적인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며 팬 대상과 팬덤의 관계를 조율한다. 이들은 그날 본 공연들을 적극적으로 텍스트로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이 때문에 그들에게 ‘기록’과 ‘수집’은 중요한 팬 문화의 요소가 되었다.

하나의 공연을 여러 배우의 캐스팅으로, 여러 시즌에 걸쳐 진행하는 뮤지컬 산업은 재관람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관객들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재관람 혜택으로 주어지는 보상으로는 횟수에 따라 티켓 할인권이나 공연과 관련된 굿즈로 나뉘게 되는데, 횟수가 높을수록 혜택 또한 그 가치가 높아진다. 특히 재관람 혜택 중 하나인 폴라로이드 수집은 복제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일한 물질적 보상의 성격을 지닌다.




폴라로이드 사진 : 팬 수집과 유물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와 뮤지컬 《팬레터》의 폴라로이드 증정 이벤트〉
(출처: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 콘텐츠제작사 라이브)


뮤지컬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것으로 언급되는 재관람의 확산을 위하여 공연 제작사가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혜택 중 하나인 폴라로이드 증정은 겉으로 봤을 땐 아이돌 팬덤 문화, 특히 피지컬 앨범 구매에서 관찰되는 ‘포토카드’ 제공과도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복제가 가능하고 복수로 존재하는 포토카드와 달리 폴라로이드는 단 한 장뿐이라는 유일성을 가지며, 무엇보다 뮤지컬에서 제공되는 폴라로이드는 그 공연의 인물을 재현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이는 뮤지컬 공연이 갖는 즉각성, 현장성, 일회성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맞물려 그 의미를 극대화한다. 그러므로 뮤지컬 공연과 이를 관람하는 관람객의 폴라로이드 수집은 단순히 개인적인 의미가 아닌 뮤지컬 장르의 정체성이 반영된 관람문화의 일부로 분석될 수 있다.

마크 더핏(Mark Duffet, 2013/2016) (Duffett, M. (2013). Understanding fandom: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edia fan culture. Bloomsbury Publishing USA, 김수정 외역(2016). 〈팬덤 이해하기〉. 서울: 한울아카데미.) 은 “수집이라고 하는 것이 팬덤의 세계를 넘어서는 취미활동(269쪽)”이라고 언급하면서 최소 세 가지로 팬 수집품을 구분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첫 번째는 공연자체를 기록한 앨범, 두 번째는 원래의 텍스트와 작가, 가수와 관련된 대량생산된 물품, 마지막으로는 관심 대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독특하고 개인적인 자료라는 것이다. 특히 더핏은 수집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이”들이나 “경제적 투자 동기”를 가진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언급하고 있다(269쪽).

뮤지컬 팬들에게 폴라로이드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다. 배우가 극 중 캐릭터로 분장해 찍은 이 특별한 굿즈는, 팬들에게 작품의 순간과 감정을 간직하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이다. 폴라로이드는 배우 개인의 모습이 아닌, 작품 속 캐릭터로 분장한 배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들에게 이 폴라로이드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와 작품을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이 때문에 뮤지컬 팬들은 폴라로이드 굿즈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과 소통하고, 휘발되어 사라진 기억을 붙잡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복구가 불가능한 과거의 공연 경험을 폴라로이드를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 그 속에서 전혀 다른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게 되는 것이다.




팬의 의미 : 사랑의 힘



〈뮤지컬 《브라더스 까르마조프》의 폴라로이드〉 (출처: 저자 개인소장)


이처럼 팬들의 다양화된 경험은 소음을 이끌어내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어나간다. 팬들은 다른 사람들도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팬 대상을 위한 전도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생산과 수용의 통역사 역할을 맡게 된다. 젠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팬들을 다양하게 의미화한다. 팬은 기존의 의미에 ‘새로운 가치를 증대시키는 사람’이며 수많은 후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 내는 탁월한 ‘감정사’이면서 문화적이고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숨겨져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큐레이터’이자, 세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 가치 있는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 대중들에게 알리는 ‘대중적인 범세계주의자’이기도 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성경이 각기 다른 해석을 갖는 것처럼 팬들도 아티스트에 대해 각기 다른 애정의 깊이와 해석을 갖는다. 하나로 뭉칠 수 없지만, 팬심, 그 하나로 단결되는 그들의 실천은 오늘, 이 시간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필자 소개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 『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아버지께서 문언박의 기영회를 흉내내시다”

『기영회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엄경수, 부재일기, 1708년 3월 10일

1708년 윤3월 10일.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함께 필곡에 있는 임감사 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시고는 식후에 가마를 타고 갑산부사 성숙 영공 어르신께 함께 가셨다. 얼핏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 송나라 명재상이었던 문언박이 부필과 함께 모의하여 개최했던 낙사기영회를 흉내내어 나이가 지긋한 친구분들과 함께 잔치하시려는 모양이었다. 문언박의 기영회에서는 모두가 당대의 명사가 모였었다.

오늘 아버지의 기영회에 모신 분은 참판 남필성, 판결사 임당, 참의 임윤원, 감사 임순원, 참판 강선, 판서 강현 어르신이었다. 이분들이 처음 기로회를 결성하시고자 하였는데, 다만 문제가 있었다. 성숙 어르신과 강대감, 임씨 형제분들은 이제 겨우 60세를 넘었거나 아직 60세가 되지 못하신 분들이었다. 기영회를 흉내내는데 옛 규례에 어긋나는 점이 있어 다소 아쉬웠다.

모이신 분들은 서로 규례를 정하고 자리 순서를 정하느라 분주하셨다. 서로 나이나 관직으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나이가 적은 어른들은 서로 말석을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이처럼 예로 서로 모여 유흥을 즐기니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산 속의 연포회 - 따끈한 두부탕과 술, 그리고 벗이 읊조리는 시”

김령, 계암일록, 1603년 9월 28일~1619년 10월 4일

1603년 9월 28일, 김령은 오시에 평보 형을 보러 갔다. 저녁에 상주 형, 평보 형과 함께 도목촌(道木村)으로 배 한림(裴翰林)을 보러 갔다. 오래전에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림이 집에 있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서 명암사(鳴巖寺)로 가서 두부를 해 먹고 함께 자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늦은 밤, 정언(正言) 금업(琴(忄 業))이 가구(佳邱)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와서 도목촌에서 자게 되었는데, 배 한림이 그의 아들 숙전(淑全)을 보내어 함께 자도록 했다고 말했다.

1618년 1월 28일에는 아침에 연포(軟泡)를 차렸다.

김령이 지팡이를 짚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서설암(棲雪庵)에 도착해서 보니, 암자의 편액이 바로 장인어른의 글씨였다.

이튿날 효중이 율시 한 수를 써서 김령도 그에 화답했다.

밥 먹는 데 다시 연포를 차렸다. 절문을 나서는데 여전히 미련이 남았으나 눈을 맞으며 춘양에 도착했다. 공보의 아내가 다시 술을 보내와서 잠시 머무르면서 마셨다. 말 위에서 효중이 시를 읊조리는데 흥이 여간 아니었다.

날이 저물자 눈이 개었다. 김령은 닭실[酉谷]에 도착해서 머무르다 효중과 같이 잤다. 계집 종 청심(淸心)이 선성(宣城 : 예안) 집에서 왔는데 편지를 가져왔다. 김령 집사람이 술을 보내왔다.

1619년 9월 4일, 김령이 아침에 들으니, 덕여가 급히 도산 서원에 갔다고 했다. 초두 무리가 서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연포(軟泡 : 두부)를 해 내놓으라고 했다. 부끄럼도 없이 이 모양새로 기세를 부리고 있다. 그 무리 20여 명이 모두 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9월 26일, 아침에 참이 와서 연포(軟泡)를 만들어 반찬으로 나누어 주었다. 아침을 먹은 뒤 김시량(金時亮)이 와서 여러 사람들과 놀며 이야기했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 이운(李芸)과 서원의 사람[院人]이 왔는데, 서원에서 김령의 사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정장(呈狀)을 되돌려 주었다. 김령 일행은 이날도 유숙했다.

1619년 10월 4일, 김령은 밥 먹을 때 연포(軟泡)를 만들어 북대(北臺)에 올라가 둘러보았다. 다시 강물을 건너 노천을 둘러보았는데, 새로 큰 집을 지어놓았으니,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할 만했다. 운암(雲巖) 앞 천석(泉石)을 거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개와 이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차례로 방문했다.

숙경.자개와 함께 이지의 집에서 잤다. 숙경이 온 것은 본래 김령 무리를 찾아보고 또 도산 서원에 가기 위함이었는데, 청량산을 본 적이 없다 하자 김령이 충동해서 가게 했다. 숙경이 산행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도 함께 가자고 하였다. 나는 짐짓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하고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숙경이 심하게 졸랐다.

“끈끈한 과거급제 동기 모임”

금난수, 성재일기, 1580년 1월 13일~1580년 4월 24일

1561년에 사마시에 합격했던 금난수는 그 해에 함께 입격한 여러 동기들과 서로 도와가며 친밀하게 지내 왔다. 1580년 새해에도 생원시 동기인 구효연(具孝淵)을 찾아가 함께 눈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밤이 되어 떠나려는 금난수를 자리에 다시 앉힌 것은 김복일(金復一)과 이교(李㝯)였다. 김복일은 이황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이고, 이교는 이황의 조카였다.

손에 손마다 술을 들고 찾아오니 이날 밤은 일찍 자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함께 어울렸다.

금난수가 다시 사마시 동기와의 연을 생각하게 된 것은 4월에 개성에 갔을 때였다. 문충공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둘째 아들 금업을 만나고, 서원에서 유숙하기로 하였다. 금난수가 서원에 아들을 맡겨놓은 이유 중 하나는 서원의 원장이 곧 금난수의 사마시 동기인 김지(金漬)의 아우인 김유(金濡)였기 때문이었다. 개성뿐 아니라 금난수의 동기들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금난수가 봉화에 갔을 때에는 그곳에 사는 박대임(朴大任)을 잊지 않고 찾아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비단 금난수와 그 동기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과거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끼리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에 일종의 동기 모임인 동기계를 만들어 소속감을 가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물론 이러한 계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것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팍한 관직생활 속에서 동기라는 의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형제와도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봄날의 낚시 모임 - 노천에서 회와 어탕을 즐기다”

김령, 계암일록, 1621년 4월 22일~1621년 4월 29일

1621년 4월 22일, 봄이 한창이었다. 김령은 벗들과 물고기를 잡기로 약속을 하였다. 일부는 어정(漁丁)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였고, 김령은 남은 몇몇 지인들과 침락서당(枕洛書堂)에 들렀다가 합류했다. 사람들은 느즈막 할 때까지 잡은 고기로, 회를 치기도 하고 끓이기도 했다. 술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이 낚시 모임은 일주일 후인 29일에도 열렸다. 여희와 덕여가 어정을 데리고 일찌감치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고, 김령은 정오 즈음해서 나아갔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은 물가의 돌 옆 땅바닥에 앉아서 끓인 물고기와 회를 부족함 없이 먹었다. 이들은 날이 저물어서야 서로 헤어졌다.

“취미생활, 매사냥을 즐기다”

권별, 죽소부군일기, 1625년 1월 27일~1625년 12월 2일

1625년 1월 27일, 권별이 키우는 수지니(길들인 매나 새매)가 묶어 놓은 것을 풀고 날아 가버려서 종일 쫓았으나 팔에 내려앉지를 않았다. 날이 저문 뒤에 사불랑 촌에서 팔에 내려앉았다.

1625년 9월 2일, 맑음. 수지니를 놓아서 1마리를 잡았다.

1625년 10월 26일, 이봉(以奉) 형제와 더불어 구계(鷗溪)에 가서 매사냥하는 것을 보았다.

1625년 11월 29일, 맑음. 이른 새벽에 화장(花莊)으로 갔다. 기운이 몹시 편치 않았다. 수지니를 잃어버린 지 2개월쯤 만에 노비의 팔에 내려앉아 간신히 도로 찾았다 하였다.

1625년 12월 2일, 화장에 머물렀다. 의숙(義叔)이 같이 잤다. 이술(而述)은 매사냥하는 일로 들어와서 그와 더불어 같이 잤다. 새 매가 날아 가버려서 잡지 못하였다.

“소년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먹으며 시회를 열다”

고기 바구니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년 6월 20일

1617년 6월 20일, 맑고 몹시 더운 날이었다. 김택룡이 역정에 나가는데 아들 김숙과 생질 정득이 따라왔다. 유사 김개일 · 상사 김회일 · 권전룡 등도 역정에 왔다. 그리고 물고기 회식을 벌였는데, 소년들을 모아 나누어 보내어 물고기를 잡아오게 하고 각기 보리밥을 하고 물고기를 끓여 사람들을 먹였다.

모인 사람 모두는 김택룡의 두 아재인 심신과 심지 · 생질 정득 · 아들 김숙 · 권취중 · 박선윤 · 황유문 · 심학해 · 이춘발 · 손흥선 · 심수해 · 심이달 그리고 관동[丱童, 어린 아이] 6, 7명이었다. 김택룡이 촌료주(村醪酒) 한 동이를 구해서 대접하였다. 그리고 김회일로 하여금 운(韻)을 부르게 하여 김택룡이 정(亭), 병(屛), 정(酲) 자 세 자로 『역정절구(櫟亭絶句)』를 지었는데, 아들 김숙과 그 곳에 모인 여러 공들이 김택룡의 시에 화답했다.

날이 저물어 시회를 파하고 헤어졌다. 김회일은 지장리(紙匠里)로 가고, 김개일은 심 봉사 집에서 잤다. 숙도 김회일 공을 따라 지장리에 가서 잤다.

“딸의 만류로 문중 모임에 늦어버리다”

1631년에 태어난 관리의 친목모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최흥원, 역중일기, 1759년 9월 30일

1759년 9월 30일. 최흥원은 아침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최근 며칠 최흥원은 석전 마을에 있는 딸의 집에 머물렀다. 인근 지인의 상가를 조문하는 길에 들렀다가 딸의 집에서 며칠 묵게 된 것이다. 이제 제법 큰 외손자도 만나보는데, 제법 아이의 품성이 착하고 아름다워 마음이 흐뭇하였다. 사위가 다소 잔병이 있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딸의 집안은 대체로 큰일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본래 문중의 모임이 있는 날이라, 최흥원은 본래 어제 길을 나서 문중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쉬이 놓아 보내주고 싶지 않은 딸이 최흥원을 간절하게 울며 붙잡는 것이 아닌가. 어미를 일찍 여의고 부모라고 살아있는 사람은 애비인 최흥원뿐이니, 최흥원은 새삼 딸의 만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결국 하루를 더 묵고 오늘 아침 일찍 길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임 장소까지는 역시 먼 길이어서, 이미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다행히 문중의 모임은 끝나지 않았는데, 최흥원을 보자 사람들이 모두 꾸짖으며 역정을 내었다. 최흥원이 늦은 것도 문제였지만, 집안의 동생 중 아무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안한 마음에 얼굴이 벌게진 최흥원은 사람들에게 거듭 사과를 하였다. 문중에서 재사를 지을 일을 의논하여 정하였는데, 무안해진 최흥원은 마음속으로 빨리 회의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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